집안 통구 12호분 ( )

선사문화
유적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대왕촌(大王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능. 횡혈식석실분.
이칭
이칭
마조총, 통구십이호분
정의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대왕촌(大王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능. 횡혈식석실분.
개설

통구평야 동부 우산(禹山) 남록의 평탄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묘실 내에 그려진 벽화 중 마굿간그림이 있어 발견 당시에는 ‘마조총(馬槽塚)’이라 불렸으나 본래 명칭은 ‘통구 12호분’이다.

1939년 일본인 구로다(黑田源次)에 의해 도굴되어 부장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1962년 중국 길림성박물관 집안고고조사반(集安考古調査班)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어 1964년 발굴보고서가 간행되었다.

이 고분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통구 4호분, 5호분을 비롯해 산연화총(散蓮花塚) 등 다수의 고구려 봉토분과 방단적석묘(方壇積石墓)가 산재해 있다. 그 외형이 모두 12호분보다는 작다.

내용

봉토는 황색점토를 썼으며, 현재 높이 4.6m, 둘레 90m 가량이다. 봉분의 둘레에는 장군총이나 태왕릉의 호석(護石)을 연상시키는 9개의 거석(巨石)을 둘렀다. 묘는 남북 2개의 독립된 묘실이 한 봉토 내에 나란히 놓인 채 묘도 입구에서 연결되는 특이한 형태를 하였다.

북실은 용도(甬道)의 북벽에 하나의 감실(龕室)이 딸린 구조로 되어 있으며 천장은 사아식(四阿式)이다. 남실은 13층의 평행굄 위에 뚜껑돌을 덮은 궁륭식천장을 하였고 용도 남북벽에 각기 하나씩의 감실이 덧붙여져 있는 구조이다. 묘실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를 쌓고 그 위에 석회를 입히고 다시 그 위에 아교성 물질을 바른 뒤 벽화를 그려 장식하였다.

벽화는 주(朱)·자(柴)·백(白)·흑(黑)·녹(綠)색을 주조로 해 묘실·감실·용도 등 묘실 내부 전면에 걸쳐 그려졌다. 그러나 석회면이 많이 박락되었고 남은 부분도 심하게 퇴색되어 모호한 부분이 많다.

남실 후벽에는 청기와로 지붕을 덮은 기와집 한 채가 그려져 있고, 가옥 내부에는 묘주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부부가 앉아 있다. 좌우 양벽에는 마차 행렬도를 그렸으나 우벽 가운데의 마차만이 형태가 남았을 뿐이다. 전벽 묘실 문 좌우 양측에는 무악(舞樂)장면과 문지기 개를 그렸다.

후벽 상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홍·흑색 연꽃 7송이를 그렸다. 꽃심에 둥근 구멍이 있고 그 안에 쇠녹의 흔적이 있어 못을 박고 휘장을 걸기 위한 자리였던 듯하다. 용도 오른편 감실의 후벽과 좌벽에는 청기와지붕의 마굿간이 그려져 있다. 용도 양벽에는 수렵도가 그려졌으나 대부분 박락되었다.

묘실 벽면과 천장부와의 경계에는 붉은 색 대들보를 그려 위아래를 구분한 뒤, 위는 능형(菱形)구름무늬 및 각종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묘실 벽면 네 모서리에서 시작된 붉은 색 기둥이 천장돌에까지 이르러 초기 인물풍속도 벽화의 전통적 수법을 계승하고 있다.

북실 후벽에도 남실과 같이 부부대좌도가 그려졌으나 흔적만 남아 있다. 우벽의 수렵도도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 좌벽에는 전투장면의 일부가 남았는데, 한 갑주무사가 칼을 높이 쳐들고 쓰러진 적의 무사를 목베려는 장면이다.

전벽 왼편 아래에는 머리를 용도로 향한 채 엎드려 있는 문지기 개가 그려졌다. 용도 왼편 감실의 후벽과 우벽에는 각종 취사기구가 그려져 있다. 묘실의 천장부에는 남실과 같이 붉은 대들보 위로 각종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벽화고분은 독립된 2개의 묘실에 각기 부부대좌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친족관계에 있는 2사람의 묘주인이 묘실을 별도로 하면서 한 봉분 안에 매장된 경우이다. 벽화는 묘주인의 생전생활을 재현하는 내용이 위주인 인물풍속도계열로 당시의 고구려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연대는 벽화의 색채가 풍부하고 필선이 세련된 것으로 보아 고구려 전성기인 5세기 중엽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고구려(高句麗)의 고고문물(考古文物)』(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吉林輯安通溝第十二號高句麗壁畵墓」(王承禮·韓淑華, 『考古』 1964年 2期)
집필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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