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상·정치부

8세 여자 어린이를 무참히 성폭행한 범인에게 법원이 징역 12년형을 선고하자,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여론이 끓고 있다. '나영이 사건'이다. 정치권은 1일 "법을 바꿔서라도 무거운 형벌을 내리자" "법원이 그동안 너무 관대했다"며 뒤늦게 난리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불만이 폭주하자 대통령까지 "참담하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곳이 있다. 4년 전 '전자팔찌법' 도입을 반대했던 일부 '인권' 단체들이다. 이 침묵에는 사연이 있다.

2005년 4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상습 성폭력범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자"고 제안했다. 성폭력의 심각성은 모두 인식하고 있었지만, 당시엔 생소했던 '전자팔찌'가 등장하자 논란이 벌어졌다. 반대 여론을 주도했던 이들은 '범죄자에 대한 인권 침해다' '이중처벌이다'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참여연대 박원석 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형기를 마친 자에게 '주홍글씨'를 씌우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헌이다. 시류에 영합한 법안이다"라고 했다. 그는 "성범죄 근본대책은 양형기준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법안 서명 의원 95명 모두가 한나라당 소속"이라며 법안의 정파성도 부각시켰다. 참여연대 차원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냈다. 인권실천시민연대도 "전자팔찌는 파시즘적 발상"이라고 했다.

범죄자 인권도 물론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이 법안을 박 전 대표가 아닌 그들의 우군(友軍)이 추진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당시 법안을 실무적으로 추진했던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정파적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보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전자팔찌 정도에 성범죄자의 인권 보호를 걱정했던 사람들이다. "징역 12년은 너무 약하다"고 분노하며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청원에 찬성 댓글을 단 국민 수십만명을 "파시즘 같은 여론재판"이라고 앞장서 비판해야 앞뒤가 맞을 것이다. '나영이 사건'을 보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