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에는 광주세무서를 방화, 전소케하면서 평소의 원념을 발산하는 난동으로 CBS방송국과 차량을 탈취, 방화하였고 방산 업체인 아세아자동차공장을 습격, 군에 납품할 장갑차를 비롯한 군용차량과 민수용 차량 2백 여대를 탈취하여 분배, 시내를 고속으로 질주 하는가하면 도청을 점거한 후 무기를 탈취하여 전주·화순방면으로 진출하면서 TNT·총기를 닥치는 대로 약탈, 완전히 무장 폭도화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특이 이날 계엄폭도들은 간첩 및 좌익수1백 70여명이 내포된 2천7백 여명의 복역죄수가 수용되어있는 광주교도소를 5회에 걸쳐 습격하여 이들을 탈소시켜서 폭도에 가담시키기 위해 교도소를 지키고 있는 계엄군과 교전, 양측에 사상자를 내게 하는 폭거를 자행하였으며 시내에서 흉기를 난사하면서 약탈·파괴행위로 무법천지의 공포도시화하였다.
더우기 시민의 봉기를 선동하는 가두방송 외에도 용의주도하게 만들어진 전단과 심지어는 지하신문(18일부터 26일간 9호까지 발행)까지 발행하면서 계엄군 섬멸을 구호로 외치는 외에 연행된 김대중석방을 요구, 주장하였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날 신현환 전 국무총리 사임과 전 각료 사퇴를 계기로 『우리들의 항쟁으로 신 총리 이하 전 각료가 굴복, 퇴진하였다.』 『최 대통령은 곧 하야하게 되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폭도들을 고무하였고 시민들을 현혹시킨 바 있다.
군은 무장폭도들과의 충돌로 무고한 시민의 생명과 재산에 손상을 입히는 불행한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21일 밤 외곽지대로 철수, 시내와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봉쇄하는 한편 여타지역에서의 난동을 진압하는데 주력하였으며, 계엄군에 일체 발포치 않도록 엄중히 시달, 최소한의 자위권 발동마저도 자제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