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조선

檀君朝鮮

국역 동국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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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서지 동국통감 외기(東國通鑑外紀)

동방(東方)에는 최초에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國人)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 서기 전 2333)이었다. 처음에는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으로 도읍을 옮겼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서기 전 1317) 을미(乙未)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다.

[신등은 살펴보건대,]
“고기(古紀)에 이르기를, ‘단군이 요(堯)와 더불어 무진년(戊辰年)에 함께 즉위하여, 우(虞)나라와 하(夏)나라를 지나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乙未)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1천 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살펴보건대, 요 임금이 즉위한 것은 상원 갑자(上元甲子)인 갑진년(甲辰年; 서기 전 2357)에 있었는데, 단군의 즉위가 그 후 25년 무진년에 있었다면 ‘요와 더불어 함께 즉위하였다’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당(唐)나라와 우나라로부터 하나라와 상나라에 이르러서는 세상 인정이 점점 야박해져서 인군(人君)이 나라를 오래도록 향유한 자가 5,60년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단군만이 홀로 1천 48년의 수명으로 한 나라를 향유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이 꾸며낸 것임을 알겠습니다. 전배(前輩)가 이르기를, ‘그 1천 48년이라고 한 것은 곧 단씨(檀氏)가 대(代)로 전하여 지나온 햇수이고, 단군의 수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근세(近世)에 권근(權近)이 천정(天庭, 명나라)에 들어가 뵈니,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권근에게 단군을 시제(詩題)로 하여 시(詩)를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권근의 시에 이르기를, ‘세대(世代)를 전한 것은 얼마인지 모르나 역년(歷年)은 일찍이 천년(千年)을 지났다.[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라고 하니, 황제가 보고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논에서도 권근의 말한 것이 옳다고 하였으므로, 우선 보존하여 뒷날의 참고에 대비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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