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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거란(契丹)의 위치 및 풍속에 대한 설명

  • 국가
    거란(契丹)
거란(契丹) 주 001
각주 001)
契丹: 지금의 遼河 상류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목축활동을 했으며 북위 시대 스스로를 契丹이라 하였다. 4~10세기 이 지역에서 庫莫奚와 함께 양대 세력을 형성하였다. 풍속의 대부분은 突厥과 비슷했고, 唐代에는 八部로 나뉘어 있었는데, 唐末 迭剌部의 우두머리인 阿保機가 부락을 통일하고 916년 遼를 건국했으며, 北宋 宣和 7년(1125) 女眞이 세운 金나라에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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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潢水) 주 002
각주 002)
潢水: 湟水라고도 쓰는데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 및 하류의 西遼河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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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남쪽, 황룡(黃龍) 주 003
각주 003)
黃龍: 遼에서 설치한 縣의 이름으로 치소는 지금의 吉林省 農安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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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북쪽에 살았는데, [이 곳은] 선비(鮮卑) 주 004
각주 004)
鮮卑: 북아시아의 유목민으로 東胡의 支派이다. 처음에 鮮卑山 부근에 모여 살아 “鮮卑”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 呼倫池 부근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陰山 일대로 이동하여 다른 種族과 접촉하였다. 檀石槐가 鮮卑의 각 부족을 통합하고, 과거 匈奴에 필적하는 유목제국을 세웠다. 檀石槐 사후 잠시 분열되었으나, 軻比能이 다시 鮮卑 각 부족을 규합하였다. 魏 靑龍 3년(235) 軻比能이 魏의 자객에게 살해되면서 분열했다가 이후 兩晉 · 南北朝時代에 慕容部가 前燕 · 後燕 · 西燕 · 南燕을, 乞伏部가 西秦을, 禿跋部가 南涼을, 그리고 拓跋部가 北魏를 세웠다. 宇文部는 北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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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옛 땅으로 [의] 경성(京城)에서는 동북으로 오천삼백 리 [떨어져] 있다.주 005
각주 005)
원문은 “在京城東北五千三百里”인데 『新唐書』에는 “地直京師東北五千里而贏”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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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으로는 고려(高麗) 주 006
각주 006)
高麗(전37년경~668):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약 700여 년 동안 지배했던 우리나라의 古代國家의 하나이다. 長壽王 때 이후 국호를 高麗로도 불렀으나, 대체로 高句麗로 알려져 있다. 高離 · 句麗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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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웃하였고 서로는 해국(奚國) 주 007
각주 007)
奚國: 남북조시대에는 庫莫奚라 불렀던 종족이다. 東胡의 하나로 饒樂水(지금의 시라무렌강) 유역에 살았고, 유목과 사냥을 겸했다. 北魏時代 종족이 점차 번성하여 辱紇主 · 莫賀弗 · 契箇 · 木昆 · 室得 등 五部로 나뉘었고, 점차 契丹에 同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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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접했고 남으로는 [의] 영주(營州)에[까지] 도달하고 북으로는 실위(室韋)에 도달했다. 냉형산(冷陘山) 주 008
각주 008)
冷陘山: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扎魯特旗 남쪽의 奎屯山을 말한다. “奎屯”은 몽골어로 “冷”의 뜻이다. 산이 높고 서늘해 거란인들은 한 여름이면 이 곳에서 더위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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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그 나라의 남쪽에 있었는데 서산(西山)과 서로 [이어져 있어] 산길이 험준하였고 [그 길이 지나는] 지방은 이천 리였다.
[그들은 가축을] 쫓아 사냥하고 왕래하여 거처는 정해진 곳이 없었다. 그[들의] 군장(君長)의 성씨[姓]는 대하씨(大賀氏)주 009
각주 009)
大賀氏: 과거 거란의 종족명 중 하나이다. 당초 거란은 시라무렌강 · 老哈河 일대에서 흥기하여 부락연맹을 형성했다. 대하씨는 부락연맹의 우두머리를 역임했고 八部를 지배했다. 원래는 돌궐에 신속했는데 당 武德 初(618~625) 使者를 보내 조공하였다. 이후 당과 돌궐에 의탁하거나 반기를 드는 등의 행위를 반복하다 마침내 돌궐에 의탁했다. 이로써 부락연맹의 통치권은 遙輦氏에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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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그들에게는] 뛰어난 병사[勝兵]가 사만삼천 명 있었는데 나누어 팔부(八部)로 삼았고 만약 징발(徵發)이 있으면 여러 부락이 모두 모름지기 모일 것을 의논했고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사냥을 할 때는 부[락으로 단위]를 나누었으나 전투를 할 때는 함께 움직였다. 본래 돌궐(突厥)에 신속(臣屬)하고 와는 전투하기를 즐겼는데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청산(靑山)선비산(鮮卑山) 주 010
각주 010)
鮮卑山: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대략 다음의 세 가지이다. ① 鮮卑人들이 이 산에 거처하여 鮮卑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선비가 이동함에 따라 鮮卑山의 명칭도 달라졌다고 했다. ② 현재의 大興安嶺 북단을 말한다. 현재의 內蒙古自治區 鄂倫春自治縣 阿里河鎭 서북의 戛仙洞에서 북위의 鮮卑石室이 발견되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③ 현재의 內蒙古自治區 科爾沁右翼中旗의 서쪽이다. 현재 사람들은 이 곳을 蒙格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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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달아나 의지하였다.
그들의 풍속에는 죽은 자[를 위해서]는 무덤[塚墓]을 만들지 않았고, 말[이 끄는] 수레로 [시체를 실고] 대산(大山)에 들어가 시체를 나무 위에 놓았으며 또한 상복을 입지[服紀] 않았다. 자손이 죽으면 부모가 아침저녁으로 곡을 했으나 부모가 죽으면 자손은 곡을 하지 않았다. 그 나머지 풍속은 돌궐(突厥)과 같았다.

  • 각주 001)
    契丹: 지금의 遼河 상류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목축활동을 했으며 북위 시대 스스로를 契丹이라 하였다. 4~10세기 이 지역에서 庫莫奚와 함께 양대 세력을 형성하였다. 풍속의 대부분은 突厥과 비슷했고, 唐代에는 八部로 나뉘어 있었는데, 唐末 迭剌部의 우두머리인 阿保機가 부락을 통일하고 916년 遼를 건국했으며, 北宋 宣和 7년(1125) 女眞이 세운 金나라에 멸망당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潢水: 湟水라고도 쓰는데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 및 하류의 西遼河를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黃龍: 遼에서 설치한 縣의 이름으로 치소는 지금의 吉林省 農安縣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鮮卑: 북아시아의 유목민으로 東胡의 支派이다. 처음에 鮮卑山 부근에 모여 살아 “鮮卑”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 呼倫池 부근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陰山 일대로 이동하여 다른 種族과 접촉하였다. 檀石槐가 鮮卑의 각 부족을 통합하고, 과거 匈奴에 필적하는 유목제국을 세웠다. 檀石槐 사후 잠시 분열되었으나, 軻比能이 다시 鮮卑 각 부족을 규합하였다. 魏 靑龍 3년(235) 軻比能이 魏의 자객에게 살해되면서 분열했다가 이후 兩晉 · 南北朝時代에 慕容部가 前燕 · 後燕 · 西燕 · 南燕을, 乞伏部가 西秦을, 禿跋部가 南涼을, 그리고 拓跋部가 北魏를 세웠다. 宇文部는 北周를 세웠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원문은 “在京城東北五千三百里”인데 『新唐書』에는 “地直京師東北五千里而贏”이라고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高麗(전37년경~668):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약 700여 년 동안 지배했던 우리나라의 古代國家의 하나이다. 長壽王 때 이후 국호를 高麗로도 불렀으나, 대체로 高句麗로 알려져 있다. 高離 · 句麗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奚國: 남북조시대에는 庫莫奚라 불렀던 종족이다. 東胡의 하나로 饒樂水(지금의 시라무렌강) 유역에 살았고, 유목과 사냥을 겸했다. 北魏時代 종족이 점차 번성하여 辱紇主 · 莫賀弗 · 契箇 · 木昆 · 室得 등 五部로 나뉘었고, 점차 契丹에 同化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8)
    冷陘山: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扎魯特旗 남쪽의 奎屯山을 말한다. “奎屯”은 몽골어로 “冷”의 뜻이다. 산이 높고 서늘해 거란인들은 한 여름이면 이 곳에서 더위를 피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9)
    大賀氏: 과거 거란의 종족명 중 하나이다. 당초 거란은 시라무렌강 · 老哈河 일대에서 흥기하여 부락연맹을 형성했다. 대하씨는 부락연맹의 우두머리를 역임했고 八部를 지배했다. 원래는 돌궐에 신속했는데 당 武德 初(618~625) 使者를 보내 조공하였다. 이후 당과 돌궐에 의탁하거나 반기를 드는 등의 행위를 반복하다 마침내 돌궐에 의탁했다. 이로써 부락연맹의 통치권은 遙輦氏에게로 넘어갔다.  바로가기
  • 각주 010)
    鮮卑山: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대략 다음의 세 가지이다. ① 鮮卑人들이 이 산에 거처하여 鮮卑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선비가 이동함에 따라 鮮卑山의 명칭도 달라졌다고 했다. ② 현재의 大興安嶺 북단을 말한다. 현재의 內蒙古自治區 鄂倫春自治縣 阿里河鎭 서북의 戛仙洞에서 북위의 鮮卑石室이 발견되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③ 현재의 內蒙古自治區 科爾沁右翼中旗의 서쪽이다. 현재 사람들은 이 곳을 蒙格이라 부른다.  바로가기

색인어
지명
거란(契丹), 황수(潢水), 황룡(黃龍), 선비(鮮卑), , 경성(京城), 고려(高麗), 해국(奚國), , 영주(營州), 실위(室韋), 냉형산(冷陘山), , 서산(西山), 팔부(八部), 돌궐(突厥), , 청산(靑山), 선비산(鮮卑山), 대산(大山), 돌궐(突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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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契丹)의 위치 및 풍속에 대한 설명 자료번호 : jo.k_0016_0199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