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경주에 있던 진한의 한 소국 사로(斯盧)가 발전한 나라다.
초기부터 신라는 왜(倭)의 침공을 자주 받았는데 특히 300년 경에는 큰 타격을 입고 복종하였다. 391년에는 왜(倭)가 백제의 협력을 얻어 임나를 점령하자 다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듬해 신라는 실성을 고려에 볼모로 보내어 보호를 요청하였고 고려는 400년에 5만의 군대를 보내어 신라에 침입한 왜(倭)를 임나까지 쫓아내었다. 이후 신라는 주로 고려에 기대어 왜(倭)를 견제하였지만 가끔 그 반대로 왜(倭)를 이용하여 고려를 견제하기도 했다.
512년 왜(倭)는 임나의 4현을 백제에게 주었는데 이후에도 왜(倭)는 백제를 편애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에 임나의 일부가 신라에 가까워지게 되었고 신라는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임나를 잠식하였다. 551년 신라는 백제가 임나와 함께 고려를 침공할 때 동참하였는데 일이 끝나자 오히려 고려와 손을 잡았다. 위기에 처한 백제는 한강 유역을 바로 포기하였고 그래서 한강 유역은 신라의 차지가 되었다. 554년 백제는 왜(倭)의 지원을 받아 신라를 침공하였으나 오히려 성왕이 전사하는 바람에 크게 패하고 말았다. 신라는 562년에 임나의 남은 부분마저 병합해 버렸다. 568년에 세워진 마운령비와 황초령비는 이 시기에 신라가 함흥평야까지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