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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파와 인상여

사기 : 열전(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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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파(廉頗)는 조(趙)나라의 훌륭한 장수이다. 조(趙) 혜문왕(惠文王) 16년, 염파는 조나라의 장수가 되어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대파하고 양진(陽晉)을 취함으로써 상경(上卿)이 되니 그 용기가 제후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인상여(藺相如)도 조나라 사람으로 조나라의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의 사인(舍人)이었다.

조 혜문왕 때 초나라의 화씨벽을 얻었다. 진 소왕이 그 소식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조왕에게 편지를 보내 15개의 성으로 벽과 바꾸길 원한다고 했다. 조왕은 대장군 염파와 여러 대신들과 상의했다. 진나라에 주자니 진나라의 성은 얻지 못하고 그냥 속을 것 같고, 주지 않자니 진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이 걱정이 되어 대책을 결정하지 못했다. 사람을 찾아 진나라로 보내려고 했으나 사람을 찾지 못했다. 환자령 무현이 “신의 사인인 인상여라면 보낼 만합니다.”라고 했다. 왕이 “그것을 어찌 아는가?”라고 물었다. 무현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일찍이 (왕께) 죄를 지어 몰래 연(燕)나라로 도망갈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신의 사인 인상여가 신을 말리며 ‘군께서 어떻게 연왕을 알게 되었습니까?’라고 묻기에 신은 ‘전에 대왕을 수행하여 연왕과의 변경 회의에 갔는데 연왕이 조용히 내 손을 쥐면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 알게 되어서 가려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인상여는 신에게 ‘대저 조나라는 강하고 연나라는 약합니다. 그리고 군께서는 조왕의 총애를 받고 계시기에 연왕이 군과 사귀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 군께서 조나라에서 도망쳐 연나라로 간다면 형세상 군을 감히 머물러 있게 하지 못하고 군을 묶어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이 분명합니다. 군께서는 웃통을 벗고 형틀을 짊어진 채 (왕께) 죄를 청하느니만 못합니다. 그러면 요행히 죄를 면할지도 모르지요.’라고 했습니다. 신이 그 생각을 따랐고 대왕께도 신을 용서해주셨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그 사람이 용기가 있고 지혜도 있어 보낼 만합니다.”

이에 왕이 불러 인상여에게 “진왕이 15개의 성으로 과인의 벽옥과 바꾸길 원하니 주어야 하오 아니오?”라고 물었다. 인상여는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왕이 “내 벽옥만 갖고 성은 주지 않으면 어찌 하오?”라고 했다. 상여는 “진나라가 성을 가지고 벽옥을 얻으려는데 조나라가 주지 않으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습니다. 조나라가 벽옥을 주었는데 진나라가 조나라에게 성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게 있습니다. 두 대책을 비교해보면 받아들여서 잘못의 책임을 진이 지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라고 했다.

왕이 “누구를 사신으로 보낼 수 있겠소?”라고 하자 상여는 “왕께 사람이 없다면 신이 벽옥을 가지고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성이 조나라로 들어오면 벽옥을 진나라에 두고,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이 벽옥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되가지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조왕이 이에 상여에게 벽옥을 들고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게 했다.

진왕은 장대(章臺)에 앉아 상여를 만났다. 상여가 벽옥을 받들어 진왕에게 올렸다. 진왕은 몹시 기뻐하며 미인과 좌우 신하들에게 돌려 보게 했고, 모두가 만세를 외쳤다. 상여가 보니 진왕은 성을 조나라에 줄 생각이 없었다. 이에 앞으로 나아가 “벽옥에 하자(瑕疵)가 있어 왕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진왕이 벽옥을 주자 상여는 벽옥을 쥔 채 물러나 기둥에 기대어 섰는데 화가 나서 머리카락이 관을 들썩거리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진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 벽옥을 얻고자 하시어 사신을 통해 조왕께 서신을 보내셨고, 조왕께서는 신하들을 모두 모아 상의하니 모두들 ‘진나라는 욕심이 많고 그 힘만 믿고 빈말로 벽옥을 구한다는 것이니 보상으로 주겠다는 성은 얻을 수 없다.’라며 진나라에게 벽옥을 주지 말자고 했습니다. 신은 ‘보통 사람들의 사귐에서도 서로를 속이지 않거늘 하물며 큰 나라가?’라며 ‘벽옥 하나 때문에 강한 진나라의 기쁨을 거스를 수 없다.’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조왕께서는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시고 신에게 벽옥을 받들게 하고 삼가 국서를 진나라의 조정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큰 나라의 위엄을 생각하여 경의를 나타낸 것입니다. 지금 신이 이르자 대왕께서는 신을 궁전 한편에서 접견하시면서 예절이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벽옥을 받자 미인들에게 돌려보게 하며 신을 희롱하셨습니다. 신이 보니 대왕께서는 조왕께 성읍으로 보상할 뜻이 없기에 신이 다시 벽옥을 돌려받은 것입니다. 대왕께서 기어코 신을 핍박하시겠다면 신은 벽옥과 함께 머리를 기둥에 박아 박살을 낼 것입니다!”

상여가 벽옥을 쥐고 기둥을 노려보더니 기둥에 부딪치려 했다. 진왕은 벽옥이 깨어질까 겁이 나서 거듭 사과하는 한편 담당 관리를 불러 지도를 가지고 오게 해서는 지도를 가리키면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15개 성을 조나라에게 주겠다고 했다. 상여는 진왕이 그저 거짓으로 조나라에게 성을 주려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고는 진왕에게 “화씨벽옥은 천하가 공인하는 보물입니다만 조왕께서 겁이 나서 감히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왕께서 벽옥을 보내시면서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셨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도 당연히 닷새 동안 목욕재계한 뒤 조정에 구빈(九賓)의 예를 세워 놓으셔야만 신이 벽옥을 바칠 것입니다.”

진왕이 생각해보니 강제로는 빼앗을 수 없어서 마침내 닷새 동안의 목욕재계를 받아들이고 인상여를 광성전(廣成傳)에 묵게 했다. 상여는 진왕이 재계를 하더라도 성을 주겠다는 약속은 저버릴 것이라고 판단하여 바로 수행원에게 거친 옷을 입혀 벽옥을 품고 샛길로 도망쳐 벽옥을 조나라로 도로 가져가게 했다.

완벽귀조
인상여의 이름을 떨치게 한 사건

진왕은 닷새 동안 재계한 다음 구빈의 조정에 구빈의 예를 갖추어 조나라의 사신 인상여를 안내했다. 상여가 와서는 진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목공(繆公) 이래 20여 군주들 모두 약속을 분명하게 지킨 적이 없습니다. 신이 왕에게 속아 조나라를 저버릴 것이 정말 두려워 사람을 시켜 벽옥을 돌려보냈습니다. 아마 지금쯤 조나라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리고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니 대왕께서 보잘 것 없는 사신 한 사람만 조나라로 보내도 조나라는 즉각 벽옥을 받들고 나올 것입니다. 지금 강한 진나라가 먼저 성 15개를 떼어 조나라에 준다면 조나라가 어찌 감히 벽옥을 내놓지 않으면서 대왕께 죄를 짓겠습니까? 신이 대왕을 속인 죄 죽어 마땅한 줄 알고 있으니 끓는 솥에라도 들어갈 것입니다. 다만 대왕께서 신하들과 심사숙고 상의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진왕과 신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놀랐다. 좌우들 중 누구는 상여를 끌어내고자 했지만 진왕은 “지금 상여를 죽여도 벽옥은 끝내 얻지 못할 것이고 조나라와 진나라의 좋은 관계만 끊어질 뿐이오. 이참에 잘 대접해서 조나라로 돌려보내느니만 못할 것이오. 조왕이 벽옥 하나 때문에 진나라를 속이기야 하겠소.”라고 했다.

이에 인상여를 조정에서 접견하여 예를 잘 차려서 돌려보냈다.

상여가 돌아오자 조왕은 (상여가) 현명하게 제후들 사이에서 모욕을 당하지 않게 했다고 여겨서 상여를 상대부에 임명했다. 진나라는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았고, 조나라 역시 끝내 벽옥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

그 뒤 진나라는 조나라를 정벌하여 석성(石城)을 빼앗았다.

이듬해,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여 2만 명을 죽였다.

진왕은 사신을 조왕에게 보내 조왕과 서하(西河) 바깥 민지(澠池)에서 평화 회담을 하고 싶다고 알렸다. 조왕은 진나라가 겁이 나서 가지 않으려 했다. 염파와 인상여가 상의하여 “왕께서 가지 않으시면 조나라가 약하고 겁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왕은 결국 떠났고 상여가 수행했다. 염파는 국경까지 전송하여 왕과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왕의 이번 행차는 거리와 회담을 끝내시고 돌아오기까지를 따져보면 30일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30일이 지나도록 안 돌아오시면 태자를 왕으로 옹립하여 진나라의 기대를 끊도록 해주십시오.”

왕은 이를 허락하고 드디어 민지에서 진왕과 만났다. 진왕은 술자리가 무르익자 “과인이 가만히 듣자 하니 조왕께서 음악을 좋아한다 하니 거문고를 연주를 청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조왕이 거문고를 연주했다. 진나라의 어사(御史)가 앞으로 나오다니 “모년 모월 모일, 진왕께서 조왕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조왕에게 거문고를 연주하도록 명했다.”라고 적었다.

인상여가 앞으로 나서더니 “조왕께서는 진왕께서 진나라의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진왕에게 분부(盆缶, 장구)를 드려 함께 즐기십사 청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진왕이 성을 내며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인상여는 앞으로 나가 분부를 바치며 무릎을 꿇고 진왕에게 요청했다. 진왕은 분부를 두드리려 하지 않았다. 상여는 “다섯 걸음 안이라면 이 상여가 목의 피로 대왕을 적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라고 했다. 좌우에서 나서 상여를 죽이려 했으나 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지르자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이에 진왕은 마지못해 분부를 한 번 두드렸다. 상여는 고개를 돌려 조나라의 어사를 불러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이 조왕을 위하여 분부를 두드렸다.”라 쓰게 했다.

진나라의 신하들이 “조나라의 성 열다섯 개로 진왕의 장수를 빌었으면 합니다.”라고 하자 인상여 역시 “진나라의 함양으로 조왕의 장수를 빌었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진왕이 술자리를 마치도록 끝내 조나라를 제압할 수가 없었다. 조나라 역시 병사를 제대로 배치하여 진나라에 대비함으로써 진나라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민지회맹
조나라 왕의 체면을 살린 회맹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상여의 공이 컸으므로 상경에 임명하니 자리가 염파보다 위였다. 염파는 “내가 조나라의 장수로서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그저 혀를 놀리는 일로 자리가 나보다 높다. 그리고 상여는 본디 천한 사람이니 내가 부끄러워 차마 그 아래에 있을 수 없다.”라 하고는 “내가 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욕을 보이리라.”라고 선언했다.

상여가 이 말을 듣고는 (염파와) 부딪치지 않으려 했다. 상여는 입조할 때마다 늘 병을 핑계 댔고, 염파와 자리를 다투려 하지 않았다. 그 뒤 상여가 외출을 하다가 멀리서 염파가 보이자 상여는 마차를 끌고 피하여 숨었다. 그러자 사인들이 모여 이렇게 간했다.

“신들이 친척을 떠나 군을 모신 것은 오로지 군의 고상한 의리를 흠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께서는 염파와 같은 반열인데 염파는 대놓고 나쁜 말을 하고 군께서는 그를 두려워하며 피하시니 두려워하시는 것이 너무 심합니다. 이는 보통 사람도 부끄러워하거늘 하물며 장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못난 신들은 떠나길 원합니다.”

인상여는 한사코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공들은 염장군과 진왕 중 누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시오?”

“(염장군이) 못하지요.”

“그 진왕의 위세 앞에서 이 상여는 그 조정에서 호통을 쳤고 그 신하들을 욕보였습니다. 상여가 아무리 못났어도 염 장군을 겁내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에 대해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는 까닭은 오직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한데 어울려 싸우면 그 기세상 모두 살아남지 못합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기 때문입니다.”

염파가 이를 듣고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진 채 빈객을 통해 인상여의 집 문에 이르러 사죄하며 “이 비천한 자가 장군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소이다.”라고 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게 되어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우정을 나누었다.

염파(육단부형)
인상여의 진심을 알고 사죄하는 염파

이 해, 염파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여 그 군대 하나를 격파했다.

2년 뒤, 염파는 다시 제나라의 기읍(幾邑)을 정벌해 함락시켰다.

3년 뒤, 위(魏)나라의 방릉(防陵), 안양(安陽)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 뒤 4년, 인상여가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평읍(平邑)에 이르렀다가 철수했다.

그 이듬해, 조사(趙奢)가 진나라의 군대를 연여(閼與) 부근에서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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