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과 진한이 각각 백제와 신라로 성장한 반면 변한은 미처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전에 왜(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왜(倭)는 391년에 백제의 협력을 받아 한반도 남부지역을 점령하였는데, 그 범위는 금강 이남 낙동강 서쪽이었다. 이를 임나라 한다.
임나에는 가라국(加羅國), 안라국(安羅國), 다라국(多羅國) 등 모두 열 나라가 있었다. 그들은 여느 왕국과 다름없이 자신들의 영토보전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왜(倭)는 우월적 힘을 바탕으로 이들 임나의 여러 소국과 주변의 왕국 사이에서 질서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임나와 왜(倭)는 바다로 갈라져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임나에 왜인이 상주하는 기관을 두기도 하고 때로는 왜군을 주둔시키기도 하였다.
475년 고려가 백제를 침공하여 한강 유역을 빼앗기자 왜(倭)는 임나의 구마나리(공주)를 떼어 백제에게 주고 재건을 도와주었다. 이즈음 왜(倭)는 영산강 유역에 왜군을 주둔시켜 힘의 균형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512년 왜(倭)는 백제의 요청에 따라 임나의 상치리·하다리·사타·모루(上哆唎·下多唎·娑陀·牟婁)의 4현을 백제에게 주었다. 또 513년에는 백제와 반파국(伴跛國) 사이에 기문(己汶)을 놓고 분쟁이 벌어지자 백제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에 반발하는 반파국과 백제, 신라 그리고 왜(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529년에는 다시 백제의 요청에 의해 다사진(多沙津)을 백제에게 주었는데, 가라가 이에 반발하여 신라에 접근하였다.
임나는 점차 왜(倭)의 신임을 받은 백제에 종속되어 갔는데 551년에는 백제와 함께 고려를 침공하는 일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552년 백제와 협력관계에 있던 신라가 고려와 우호관계를 맺자 한반도는 신라-고려의 축과 백제-임나-왜(倭)의 축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리고 강성해진 신라에 의해 마침내 562년 임나의 남은 지역은 모두 신라에 병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