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商)은 중국 최초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황하 유역에서 번성하였고 거북의 뱃가죽뼈나 소의 어깨뼈에 글자를 새겨 남겼다. 이 글자가 바로 한자의 시작이다.
주(周)는 원래 상(商)의 제후국이었는데 서기전 1000년경 오히려 상(商) 왕조를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주(周)는 서융(西戎)의 침공을 받아 서기전 770년에 도읍을 서안(西安)에서 낙양(洛陽)으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제후들이 주(周)의 왕실을 받들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는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제(齊), 진(晉), 초(楚), 오(吳), 월(越)의 다섯 나라가 유명하다. 서기전 403년 진(晉)의 대부 조(趙), 위(魏), 한(韓) 세 가문이 주(周)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공인받은 이후부터는 나라 사이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졌는데 이를 전국시대라 한다. 진(秦),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의 일곱 나라가 유명하다.
진(秦)은 서기전 221년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망했다. 중국의 영문명 China는 이 진(秦)에서 유래하였다.
한(漢)의 유방은 진(秦)이 망한 뒤 초(楚)의 항우와 경쟁해서 이기고 서기전 206년에 다시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인을 가리키는 한족(漢族)이라는 말은 이 한(漢)에서 비롯되었다.
위(魏)의 조비는 220년에 한(漢)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았는데, 이후 촉(蜀) 및 오(吳)와 다툼을 벌였다.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촉(蜀)과 오(吳)는 각각 264년과 280년에 위(魏)와 진(晉)에게 망했다.
진(晉)은 사마염이 위(魏)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아 265년에 세운 왕조인데 오래 가지 못하고 316년에 흉노에게 망했다. 이후 북중국에서는 북방계의 다섯 민족이 세운 16개의 나라가 흥망을 거듭했고 남중국에서는 사마예가 317년에 다시 세운 진(晉)이 유송(劉宋), 소제(蕭齊), 양(梁), 진(陳)으로 차례로 교체되었는데 이 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수(隋)는 북중국에 세워졌던 나라로 589년에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618년에 당(唐)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다.
당(唐)은 660년에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는 역시 신라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신라마저 병합하려던 시도는 실패하여 한국에서 물러났다. 당(唐)은 907년에 망했는데 이후 중국은 5개의 큰 나라와 10개의 작은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는 오대십국 시대가 되었다.
조송(趙宋)은 960년에 세워져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 이후 조송(趙宋)은 1127년에 금(金)의 침략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금(金)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황제의 동생이 남중국으로 도망가 왕조를 계속 이었다.
원(元)은 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분열된 제국 내에서 자신의 통치력이 미치는 영역을 묶어 1271년에 세운 나라로 1279년까지는 조송(趙宋)을 완전히 병합하였다. 동쪽으로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왕고와 함께 일본을 침공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명(明)은 1368년 남중국에서 세워진 왕조로 원(元)을 몽골로 몰아내고 북중국까지 차지하였다. 1592년 일본이 이조를 침략하자 원병을 보내어 도와주었는데 이때 국력을 많이 소모한 탓에 1616년에 요동에서 후금(後金)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명(明)은 1619년 이조의 지원군과 함께 후금(後金)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청(淸)은 1636년에 바뀐 후금(後金)의 국호인데, 명(明)의 마지막 황제가 반란세력에 포위되어 1644년에 자살하자 북경을 점령하고 이어 중국을 차지하였다. 러시아가 팽창해 오자 청(淸)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흑룡강을 경계로 삼았다. 서양의 동양진출 시기를 맞아서는, 영국이 1840년에 걸어온 아편전쟁에서 청(淸)은 패하여 1842년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였다. 청(淸)은 영국 및 프랑스가 1856년에 걸어온 2차 아편전쟁에서도 패하여 1858년 텐진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조약에 대한 반발이 일자 영국과 프랑스는 1860년에 더 많은 군함을 끌고와 북경을 점령하였다. 이에 청(淸)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북경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텐진 조약의 이행은 물론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주는 등 더 많은 이권을 내어주었다. 청(淸)은 1888년에 마카오도 포르투칼에 넘겨주었다. 1894년 이조에서 동학난이 발생하자 이조의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주었는데, 이때 같이 들어온 일본군과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듬해까지 계속된 이 전쟁에서 청(淸)은 패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어 대만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청(淸) 왕조는 1911년 왕조해체를 요구하는 봉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이듬해에 해체되었다.
중화민국은 1912년 청(淸) 왕조가 해체되고 만들어진 공화정 체제인데 초기에는 안정을 이루지 못하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갈등을 빚었고 각지의 군벌은 중화민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한때 협력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1927년 북방의 군벌을 꺾은 후엔 다시 분열하였다. 1937년 일본의 중국침략이 본격화되자 다시 협력관계를 맺어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속하였다. 1946년부터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내전을 벌였는데 1949년에 와서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가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50년 한국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많은 군대를 보내어 김조를 도와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