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의 역사는 조선(朝鮮)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선은 중국의 전국시대에 연(燕)에 병합되었는데, 서기전 221년 진(秦)이 연(燕)을 포함한 중국을 통일하자 조선은 다시 진(秦)에 복속하였다. 진(秦)은 이내 망하고 서기전 202년 한(漢)이 다시 중국을 통일하게 되는데, 이때 조선은 한(漢)의 영역에서 빠졌다. 그러자 서기전 195년경 한(漢)의 제후국이 된 연(燕)의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했다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 위만조선은 3대를 이어갔다.
서기전 108년 한(漢)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 진번군 그리고 임둔군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예맥지역에 현도군도 설치하였다.
서기전 82년 한(漢)은 진번군을 폐지하고 소속 15개 현 가운데 7개 현만 낙랑군에 소속시켰다. 낙랑군은 남부도위를 설치하여 이 7개 현을 관리하였는데 204년 이 7개 현은 별도의 대방군이 되었다.
진번군이 폐지되던 해에 임둔군도 폐지되었는데 임둔은 현도군에 소속되었다. 서기전 75년 현도군이 요동으로 옮겨가자 소속 15개 현 가운데 7개 현만 낙랑군에 편입되었다. 낙랑군은 동부도위를 설치하여 이 지역을 관할하였는데 이마저 30년에는 모두 철폐하였다.
복잡한 변천과정을 거쳐갔던 이들 군(郡)들을 통틀어 동방변군(東方邊郡)이라 칭하기도 한다. 한(漢)이 망한 이후 동방변군은 공손씨, 위(魏), 진(晋) 등에 소속되었다.
고려(高麗)는 예맥지역의 다섯 부족 연맹체에서 출발하였다.
한사군을 설치하며 요동을 장악했던 중국의 통제력은 점차 약화되었는데, 고려는 그러한 틈을 타 동방변군을 밀어내고 주변의 여러 종족들을 통합하면서 성장하였다. 진(晋)이 망할 즈음인 313년과 314년에는 각각 낙랑과 대방까지 병합하였다. 475년에는 백제로부터 한강유역을 빼앗기도 했지만 551년 백제, 신라, 임나 등이 합세하여 쳐들어오자 다시 내주었다.
중국과는 요하를 경계로 맞섰으나 589년 이후 통일 제국이 들어서자 그들의 침략을 받게 되는데, 668년 신라의 협력을 받은 당(唐)의 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이후 요동사의 중심은 대동강 유역에서 만주로 옮겨갔다.
고려가 망한 자리에는 고려의 유민 대조영이 698년에 세운 발해가 들어섰는데 발해는 200여 년 간 존속하였다.
한편, 중국대륙이 당(唐)의 멸망 이후 5대10국의 혼란기에 빠지자 거란족의 야율아보기가 부족을 통합하고 916년에 요(遼)를 세웠다.
요(遼)는 926년에 발해를 병합하였는데, 이때 발해왕 대인선을 비롯한 발해의 지배세력들을 요(遼)로 데려가 지배체제에 편입시켰으며 일반 백성들도 다수 요(遼)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옛 발해의 땅에는 동단국(東丹國)을 세워 요(遼)의 세자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요(遼)는 여러 차례 왕고도 침공하여 복종을 받아내었다.
요(遼)는 200여 년 간 존속하였다.
한편, 말갈에 대한 요(遼)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틈을 타 아골타가 부족을 통합하고 요(遼)를 격파한 후 1115년에 금(金)을 세웠다.
이후 금(金)은 1125년에 요(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조송(趙宋)마저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중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왕조가 오래가지는 못하고 1234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망하였다.
금(金)이 망한 후 요동은 몽골족이 세운 원(元)의 통치를 받았다. 원(元)은 1368년에 세워진 명(明)에 의해 중원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이즈음 여진도 원(元)의 통치에서 벗어났다. 이후 여진은 명(明)의 회유와 견제를 받게 되는데, 통합되어 있지 못하고 야인여진(野人女眞), 해서여진(海西女眞) 그리고 건주여진(建洲女眞)으로 나뉘어 있었다.
1592년 일본이 이조를 침략하자 명(明)은 원병을 보내어 이조를 도왔는데 이때 국력을 많이 소진하였다. 이 틈을 타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부족을 통합하고 1616년에 후금(後金)을 세웠다. 1619년 명(明)과 이조가 침공해 오자 이를 격퇴하였고 1627년에는 이조를 침공하여 복종을 받아내었다.
1636년 후금(後金)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이조를 재차 침공하여 복종을 받아 내었다. 이후 청(淸)은 명(明)을 멸망시키고 중국사의 계통을 잇게 된다. 1911년 청(淸) 왕조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자 이듬해에 왕조가 해체되었다.
이후 요동은 중화민국 군벌에 의해 장악되었는데 1932년 일본이 들어와 이 지역의 군벌을 몰아내고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국은 청(淸)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로 내세운 입헌군주제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본 관동군에 의해 지탱되는 일본의 괴뢰국이었다.
만주국은 만주족과 한족(漢族)이 토대가 되었으나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이주하여 다민족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자 만주국은 중국으로 귀속되고 일본과 한국에서 온 이주민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갔다. 지금의 중국 조선족은 그때 잔류한 한국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