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日本史)
by Silla on 2020-02-09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왜(倭)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 야마대국(邪馬臺國)이 가장 컸는데 7만 여 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왜(倭)의 대부분을 통치했다. 야마대국은 238년에 대방을 통해 위(魏)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기도 했다.
391년 왜(倭)는 백제의 협력을 받아 한반도 남부의 임나를 점령하고 통치기관을 두었다. 이후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는데, 주로 고려의 남하에 대처하는 백제의 노력에 군사적 지원을 해 주고 백제로부터는 중국의 문화를 수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475년 백제가 한강유역을 고려에 빼앗겼을 때는 임나의 일부를 떼어주어 재기를 도우기도 했다. 그러나 신라가 고려와 손을 잡고 강성해지자 562년에 임나를 신라에 빼앗기고 한반도의 거점을 잃었다.
660년 백제가 당(唐)과 신라에 망하자 663년에 대규모 구원군을 파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즈음 왜(倭)는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으로 바꾸고 군주의 호칭도 왕(王)에서 천황(天皇)으로 바꾸었으며 720년에는 일본서기를 편찬하여 왕조를 미화하였다.
한반도와의 연결이 단절된 이후 일본은 국가 간의 전쟁을 치르는 정규군이 필요없게 되었다. 정규군이 사라진 힘의 공백은 사병들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들을 사무라이라고 한다.
한편, 세습되는 군주와 별도로 무력을 지닌 군벌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는 독특한 통치 방식이 생겨났는데 이런 군벌을 막부라 한다.
1274년과 1281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원(元)과 왕고의 침공을 받았는데 막부를 중심으로 이에 대비하였고 훗날 카미카제(神風)라고 불리게 되는 태풍에 원정군이 휩쓸려가는 바람에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막부의 통치는 때로 군벌 사이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는데 특히 1493년 이후의 혼란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100여 년에 걸친 이 혼란을 평정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이조를 침공하였다. 일본군은 이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나 명(明)이 구원군을 보내자 점차 밀려나 1598년에 모두 물러갔다.
서양의 동양진출 시기를 맞아서는 막부가 오랫동안 항구를 열어주지 않다가 1854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항구를 열어주었다. 이후 차례로 서양의 여러 나라에게 항구를 열어주었는데, 이 개항을 빌미로 막부통치에 대한 불만이 커져 마침내 1868년 막부통치가 무너지고 천황이 통치를 회복하였다.


이후 급속히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은 1876년에 이조를 굴복시켜 강화도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열게 하였고 1879년에는 유구국을 합쳤다.
1894년 이조에서 동학난이 발생하자 군대를 보내어 이를 진압하고 같이 들어온 청(淸)의 군대와 이듬해까지 전쟁을 벌여 굴복시켰는데, 이때 체결한 세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을 얻었다.
1904년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는데 이듬해까지 지속된 이 전쟁에서 일본은 승리하고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확인한 일본은 1910년에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여 이씨조선을 합쳤다.
만주로 진출한 일본은 그곳의 군벌을 몰아내고 1932년에 만주국을 세웠는데 1937년부터는 중국 본토에 대한 침략전쟁까지 시작하였다.
1941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는데 1945년 미국이 원자탄을 투하하고 소련까지 미국과 한편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자 항복하였다. 이 항복으로 일본은 만주, 한국, 대만 등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