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의 金春秋를 人質로 함
이 해 …… 신라가 上臣 大阿湌
金春秋 등을 보내고註 001
博士 小德 高向黑麻呂·小山中 中臣連押熊을 보내 와서, 孔雀 1쌍과 鸚鵡 1쌍을 바쳤다. 그리고 春秋를 인질로 삼았다.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談笑를 잘하였다. ……
신라는 642년(선덕왕 11, 義慈王 2) 7월에 백제에게 서쪽 변경의 40여 성을 빼앗기고, 8월에는 大耶城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김춘추의 사위였던 都督 伊湌 品釋이 사망하였다. 이에 신라는 그 해 겨울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구원병을 청했으나, 고구려가 竹嶺 西北의 땅을 돌려주기를 요구하였으므로 실패하였다. 한편 『三國史記』에는 648년(眞德王 2) 김춘추가 당에 사신으로 가 구원을 청해 태종이 허락한 일은 전하고 있으나, 일본에 간 사실은 전하지 않는다. 이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신라는 관산성 싸움 이후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고구려·백제의 협공을 받고 있었으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에 김춘추를 파견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註) 001
신라는 642년(선덕왕 11, 義慈王 2) 7월에 백제에게 서쪽 변경의 40여 성을 빼앗기고, 8월에는 大耶城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김춘추의 사위였던 都督 伊湌 品釋이 사망하였다. 이에 신라는 그 해 겨울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구원병을 청했으나, 고구려가 竹嶺 西北의 땅을 돌려주기를 요구하였으므로 실패하였다. 한편 『三國史記』에는 648년(眞德王 2) 김춘추가 당에 사신으로 가 구원을 청해 태종이 허락한 일은 전하고 있으나, 일본에 간 사실은 전하지 않는다. 이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신라는 관산성 싸움 이후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고구려·백제의 협공을 받고 있었으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에 김춘추를 파견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명
- 신라(新羅)
주제분류
- 정치>외교>사신>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