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을 좋아했던 고종과 민비 - 매천야록
by Silla on 2020-02-09
조선말기에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이씨조선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당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왕과 왕비가 직접 돈을 받고 관직을 파는 모습은 이씨왕조가 거의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매천야록에는 그러한 매관매직이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후 고종과 민비가 돈 쓰는 것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관매직의 발단
원자가 탄생한 이후 궁중의 기양은 절도가 없어 그 행사가 팔도의 명산까지 미치고, 고종도 마음대로 유연을 즐겨 상을 줄 경비가 모자랐다. 양전이 하루에 천금을 소모하여 내수사에 있는 물량으로는 지탱할 수 없으므로 호조와 선혜청의 공금을 공공연히 가져다 썼으나 재정을 관장하는 사람이 감히 거절을 할 수 없어, 1년도 안되어 대원군이 10년 동안 쌓아 둔 저축미가 다 동이 났다. 이로부터 매관매직의 폐단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감사와 수령은 관직을 받는 대가로 왕에게 진상할 물목을 바쳤는데 그 물목을 받아 본 고종은 매우 적나라하게 반응하였다.

감사의 진상물
고종의 탄생일에 감사와 수령들은 전례에 따라 진상을 하였는데, 그들은 왕가의 친척을 통하여 궁중으로 보냈다.  
정해년(1887) 7월에 민영소와 민영환이 입시할 때 김규홍은 전라감사, 김명진은 경상감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민영환은 먼저 김명진의 물목을 바쳤다. 그 물목은 일본 명주 50필과 황저포 50필뿐이었다. 고종이 얼굴을 붉히며 그 물목을 용상 밑으로 던져 버리자 민영환은 황급히 물목을 주워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후 민영소가 김규홍의 물목을 바쳤다. 그의 물목은 춘주 500필, 갑초 500필, 백동 5합, 바리 50개였고, 기타 물건도 이와 같이 많았다. 고종의 얼굴은 희색이 감돌며, “번신의 예가 당연히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규홍은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민영환은 그 즉시 나가서 자기 돈 2만냥을 보태 물건을 사가지고 바쳤다. 민영환은 김명진의 사위이기 때문이다.

민비 또한 매관매직에 가담하였다.

명성왕후의 수령직 매매
명성왕후는 비용이 부족한 것을 염려하여 수령 자리를 팔기로 마음먹고 민규호에게 그 정가를 적어 올리도록 하였다. 민규호는 근민관의 관직을 팔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응모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그 가격이 1만꾸러미라면 2만꾸러미로 정하였다. 그러나 그 응모자들은 더욱 경쟁이 심하였고, 그들이 관직을 받으면 백성들에게 착취를 강요하여 백성들은 더욱 궁핍하게 되었으므로 민규호는 후회하였다.

그러한 매관매직의 폐단은 결국 백성들이 부담해야 했다.
이씨왕조는 마침내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주고 만다.
한일합방조약이 반포되던 1910년 8월 3일,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아편을 복용하고 이튿날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매천야록에는 민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았다.

17. 고종의 밤나들이
그 뜨락 밑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팔뚝을 걷어붙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북을 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부른 잡가는, “오는 길 가는 길 만난 정 깊이 들어 죽으면 죽었지 헤어지기 어렵다”는 가사였다. 이렇듯 음탕하고 비루한 가사를 들은 사람들은 얼굴을 돌릴 정도였지만, 명성왕후는 무릎을 치며 “그렇지, 그렇지” 하고 좋아하였다.

20. 고종의 후사 거론과 상궁 장씨
명성왕후는 그가 가여운 생각이 들어 칼을 던져 버리고 웃으며 “과연 대전의 사랑을 받을 만하구나. 지금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만 다시는 궁중에서 거처할 수 없다”고 한 후 力士를 불러 그를 포박하게 하였다. 그러고 그의 XXX의 살을 도려낸 후 그를 낭가에 실어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그 후 장씨는 그의 형제들에게 10년 동안 의지하고 살다가 그 상처로 인하여 죽고 말았다.

21. 황주 기생의 처형
황주의 기생이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大內로 들어왔는데, 고종은 그녀를 좋아하여 남몰래 불러다가 동침을 하고 鄭洛鎔에게 명하여 그에게 금가락지 1쌍과 화장품 값 3천냥을 하사하였다. 명성왕후는 이 소문을 듣고 크게 노하여 즉시 그녀를 포도청으로 데려가 죽이라고 하고, 정낙용도 심히 꾸짖어 비상한 처분을 내릴 것같이 하였다.

12. 명성왕후의 대원군 저격
명성왕후는 끝까지 그를 꺼려하여 남모르게 자객을 시켜 그를 해치려고 하였다. 하룻밤에는 대원군이 정신이 황홀하여 혼자 자기가 싫었다. 그는 베개와 이불을 내려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을 해 놓고 밀실로 가서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후 문 여는 소리가 나 그곳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때 비수 하나가 베개에 꽂혀 있고 侍者들은 실색을 하고 있었다.

* 매천야록은 정사가 아닌 야사다.
저자 황현은 이조말기의 선비였기 때문에 매천야록은 유학자의 정치적 관점에서 기술되었다.
그리고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그대로 싣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