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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08-22 합병조약안 토의
한일합병 조약안에 대하여 국무 대신 외에 황족 대표자 및 문무 원로의 대표자들이 회동하여 어전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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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08-22 일한병합조약(日韓倂合條約)
병합 조약(倂合條約) 한국 황제 폐하 및 일본국 황제 폐하는 양국간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 만한 것이 없음을 확신하여 이에 양국 간에 병합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위원에 임명한다. 위의 전권위원은 회동하여 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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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08-22 합병조약안 결정
"짐이 동양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 일 양국의 친밀한 관계로 피차 통합하여 한 집으로 만드는 것은 상호 만세의 행복을 도모하는 까닭임을 생각하였다. 이에 한국 통치를 들어서 이를 짐이 극히 신뢰하는 대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기로 결정하고 이어서 필요한 조장을 규정하여 장래 우리 황실의 영구 안녕과 생민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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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08-22 합병조약안 결정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전권위원을 임명하고 대일본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회동하여 상의해서 협정하게 하는 것이니 제신 또한 짐의 결단을 체득하여 봉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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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08-22_ 한일합방의 책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우리는 나라를 잃은 민족의 치욕을 둘러싸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꾸짖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의 정세, 국내적인 단결, 국력의 약함 등 자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또 1982년 광복절 기념식전에서도 “이민족 지배의 고통과 모욕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보장은, 우리를 지배한 나라보다 살기 좋은 나라, 보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내는 길 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한일합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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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08-22_ 한일합방의 책임
한국의 통치를 일본에 넘기기로 한 것은 이씨왕조의 조정에서 결정된 것이고 이완용은 그 실무적인 협상을 했을 뿐이다. 왕국의 주인은 왕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완용은 이후 고종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이것도 그가 고종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한일합방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이씨왕조에게 물어야 한다. 일한병합조약문을 읽어보면 그 주요 내용이 이씨왕가의 신분보장과 금전지급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이씨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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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 한 자리에 모인 친일파의 수괴들
왼쪽으로부터 이은, 순종 그리고 고종이다. 오른쪽 끝은 덕혜옹주라고 한다. 왕국의 주인은 왕이다. 그 왕국의 통치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일본으로부터 돈이 왕에게 넘어왔다. 그러면 나라를 판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 모인 사람 중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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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 이은이 살았던 동경의 저택
체제 질서를 주도하고 그 반대 급부로 특권을 누린 계층은, 그 체제가 붕괴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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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해방 이후 최악의 친일로 비판받는 김대중 협정
한국민족민주전선은 이것을 두고 '우리 조국강토인 독도 영유권이 일본 침략자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은 일조시대의 친일로 범위를 국한했기 때문에 김대중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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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2000 미군 위안부 피살사건
미군 위안부가 참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은 김대중 정부 시기인 1999년에 2건 그리고 2000년에 1건 발생하였는데, 모두 가해 미군을 잡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현재 진행형인 미군 위안부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본군 위안부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급한 문제인가? 친일청산과 미군철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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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친일인명사전
http://qindex.info/i.php?f=1775#3259
 
 2009 만주국군 중위 박정희 등재
박정희는 한일합방되고 7년이 지난 1917년에 태어났다. 구미보통학교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에 문경보통학교의 교사로 취임했다. 어릴 때부터 나폴레옹을 흠모하고 군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나이 제한에 걸리게 된다. 그러자 결연한 의지를 담은 편지와 혈서를 보내며 재차 응모하여 합격하게 된다. 그 편지내용을 보면 박정희는 당시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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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일본 제1항공사령관 이은 미등재
이은은 1897년에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동생으로 태어나 1907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20년에 일본 황족과 결혼하였고 그 해에 일본 육군대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에 졸업하였다. 1926년에 순종이 위독해지자 귀국하여 왕위를 계승하였다. 1940년에는 일본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였고 1943년에는 일본 제1항공군 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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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일본 제1항공사령관 이은 미등재 이유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은을 친일인명사전에서 뺀 핑계로 그가 사실상 볼모였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볼모라는 부분만 놓고 보면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백제의 볼모는 어릴 때 왜에 보내어져 그곳에서 성장하다 왕이 죽으면 귀국하여 왕위를 잇는 방식이었다. 이은의 사례도 백제의 볼모와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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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친일인명사전 비판 1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4,389명의 인물들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다.  이 사전에는 일조시대 하급장교부터 각종 사회단체의 주동자까지 광범위한 한국인들을 친일인사로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전에서처럼 만주국군 소위를 친일로 규정해 놓으면 그런 장교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도 모두 내면적 친일이 되어 버린다. 또 조선미술가협회와 같은 단체의 간부들을 친일로 규정해 놓으면 그 협회의 나머지 회원들도 모두 미미하나마 친일이 되어 버린 ...
http://qindex.info/i.php?f=1775#2604
 
 2009 친일인명사전 비판 2
체제교체에 따른 청산작업의 바람직한 원칙을 생각해 본다. 첫째, 구체제의 질서를 주도하고 그로부터 특권을 누린 지배세력에 대해서는 실패한 체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일조시대에 대한 책임도 그 당시의 지배세력이라 할 수 있는 이씨왕족이나 고관들이 져야 한다. 이 책임은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이다. 일조체제의 질서를 주도하고 그로부터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니 그 체제가 붕괴하였다면 마땅히 자신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둘째, ...
http://qindex.info/i.php?f=1775#2915
 
 2009 친일인명사전 비판 3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워지게 된 계기를 만든 사람은 임종국이다. 그가 쓴 유명한 ‘친일문학론’에는 저자 자신에 대해 쓴 자화상이란 글이 있는데 거기서 임종국은 자신이 17세였을 때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내용을 소개해 놓고 있다. 하루는 친구 놈한테서 김구 선생님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 김구 선생이라는 이가 중국 사람이래!" "그래? 중국 사람이 뭘 하러 조선엘 오지?" "임마 것두 몰라! 정치하러 온대." "정치? 그럼 우린 중국한테 멕히니?" 한국 ...
http://qindex.info/i.php?f=1775#2938
 
 2010-01-06 저도 반민족행위자였습니다
경남 진주시 이현동에 사는 86세 우수용의 글. 일조시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을 무모하게 매도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다.
http://qindex.info/i.php?f=1775#25020
 
 2012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
이 동영상을 보고 이승만의 괴뢰반동학살 범죄를 알 수 있을까? 이승만의 진짜 범죄를 가리려는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http://qindex.info/i.php?f=1775#2344
 
 민족문제연구소
구한말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을 편찬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775#25023
 
 민족문제연구소 비판 1
일본 통치에 대해서는 충분한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국전후에 있었던 민중학살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실상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월남자 수가 월북자 수를 압도하는 지금, 남북간의 국가정당성 경쟁은 끝이 났고 괴뢰반동학살이라는 대한민국 건국의 원죄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사의 지층에 피의 한 겹을 쌓은 이 비극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고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았다.
http://qindex.info/i.php?f=1775#2913
 
 민족문제연구소 비판 2
현재 한민족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미군의 주둔이다. 일본의 통치는 지나간 과거라 돌이킬 수 없지만 미군의 주둔은 냉전의 해체 이후 우리의 의지로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보다 미래의 출발이 되는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민족문제연구소가 미군철수 자주화를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과거의 모순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돌려 현재의 모순을 덮는 결과만 낳고 있다.
http://qindex.info/i.php?f=1775#2912
 
 은사금을 받은 사람들
친일재산조사위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은사금을 받은 친일파는 궁내부 대신 이재면이다. 당시 병합조약 체결에 참가해 83만엔을 받았다. 우리돈으로 166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순종의 장인인 후작 윤택영은 50만4000엔(100억8000만원)을, 신궁봉경회 총재로 활동한 이준용은 16만3000엔(32억6000만원)을 받았다.
http://qindex.info/i.php?f=1775#31273
 
 일제 강점기의 훈기장
일제 강점기의 훈기장은 러일 전쟁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이 조선인에게 수여한 훈장과 기장이다. 일본의 훈장은 최고 등급의 훈장인 국화장(菊花章 ), 남자에게 주는 욱일장(旭日章), 여자에게 주는 보관장(寶冠章), 남녀 모두가 받을 수 있는 서보장(瑞寶章), 무공훈장 금치훈장(金鵄勳章), 일반인에게 수여되는 문화훈장(文化勳章) 등이 있다. 욱일장, 보관장, 서보장은 등급을 나누어 훈등을 매겼다.
http://qindex.info/i.php?f=1775#31810
 
 조선귀족
조선귀족은 귀족제도의 일종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 정부가 조선인에게 수여한 신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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