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다음 달 15일 발효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 일동 명의로 '한미 FTA 발효 중지 및 전면적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냈다. 민주당은 결의안에서 "정부의 한미 FTA 발효 선언은 무효"라며 "발효 선언을 즉각 취소하고 재협상에 착수하라"고 했다. 민주당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미 FTA 발효 중지' 쟁점화

민주당은 이날 결의안에서 미국에 대해 "미래 지향적인 한미 동맹의 발전을 위해 FTA 발효를 연기하고 독소 조항 폐기를 위한 재협상에 즉각 나서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정부가 국민과 야당의 뜻을 무시하고 발효를 강행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즉각적인 전면 재협상 투쟁에 나서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한미 FTA 발효 중지'를 4월 총선은 물론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외교·안보 이슈로 끌고 갈 태세여서 올해 내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의총에서 "우리 당론은 재협상을 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FTA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을 때 재협상이 용이하도록 발효 절차를 중지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전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당권(黨權) 후보가 일제히 '한미 FTA 폐기'를 주장했다가, 최근 노무현 정권 시절 자신들이 FTA 필요성을 역설했던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이 나오고, 중도층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일단 '한미 FTA 재재협상→협상 실패 시 폐기'로 방향을 약간 튼 상태다.

"盧 정권 때 한미 FTA 시작한 것 사과하자"

정동영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노무현 정부가) FTA를 시작한 원죄(原罪)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 대놓고 사과하고 가자. 털고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모바일로 결집한 80만 봉기 대군이 흔들리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세를 역공을 통해 부숴내고 정권 심판론으로 가야지 여기서 우물쭈물하는 것은 죽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변수는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연대 대상으로 꼽고 있는 통합진보당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는 22일 공동 대표단, 시도당 위원장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을 향해 "한미 FTA 폐기는 야권 연대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전제가 돼야 한다"며 "분명한 협정 폐기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현재 통합진보당과 전국적 차원에서 공동 후보를 내는 총선 연대 방안을 협의 중이다.

총선 연대를 위해 불가피하다면 민주당은 언제든지 전략적으로 강경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미 FTA 반대 여론이 소폭 늘어난 것도 이런 관측을 낳고 있다.

복잡한 새누리당 사정

새누리당은 한미 FTA 발효에 대해 환영 성명을 냈다. 그리고 야권 지도부의 '말 바꾸기' 문제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FTA 문제를 선거전 전면에 내세우기는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강하다. 농어촌과 20~30대에서 FTA 반대표가 결집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이날 "FTA를 선거 쟁점화하는 것은 새누리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발효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다음 달 15일 한미 FTA가 발효되고, 국민이 FTA의 효과를 느끼게 되면 야당의 한미 FTA 재재협상 주장은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미 FTA가 개시되면 한·EU FTA, 한·칠레 FTA 등과 유사한 효과를 낼 텐데 유독 한미 FTA만 잘못됐다고 하거나 폐기하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2월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 내년 2월 25일 취임한 후 한미 FTA 폐기 방침을 미국에 통보하면 6개월 후에 한미 FTA는 효력이 없어지게 된다.

이런 정치 상황 때문에 한미 FTA는 다음 달 15일 발효되더라도 내년에는 어떤 운명을 겪게 될지 점치기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