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변경을 살펴 군현을 두다
(
748년
08월
)
아찬 정절(貞節)註 001 등을 보내 북쪽 변경을 점검하여 살피게 하고, 처음으로 대곡성(大谷城)註 002 등 14개의 군과 현을 두었다.註 003
대곡성(大谷城): 본서 권제37 잡지제6 지리(地理)4 고구려(高句麗)조에 한산주(漢山州)에 소속된 군현으로 대곡군(大谷郡)이 보인다. 고구려 때 다지홀(多知忽)로 불렸으며, 신라에서 여기에 대곡군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 16년(757)에 영풍군(永豐郡)으로 개칭하였다. 대곡군은 지금의 황해도 평산군(북한의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으로 비정된다. 성덕왕(聖德王) 34년(735)에 당으로부터 패강(浿江), 곧 대동강 이남의 땅을 할양받은 후 이때 군현을 설치하여 본격적인 지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선덕왕(宣德王) 3년(782) 대곡성을 중심으로 패강진(浿江鎭)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였다.
14개의 군과 현을 두었다: 대곡성과 함께 설치된 14개 군·현은 본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한주조에 보이는 예성강 이북의 군현, 즉 영풍군(永豊郡; 황해도 평산)과 영현(領縣) 2개, 해고군(海皐郡; 황해도 연백)과 영현 1개, 오관군(五關郡; 황해도 서흥)과 영현 1개, 취성군(取城郡; 황해도 황주)과 영현 3개, 폭지군(瀑池郡; 황해도 해주), 중반군(重盤郡; 평남 안주), 서암군(栖嵒郡; 황해도 봉산)의 숫자 14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 일시에 설치된 것이 아니고, 경덕왕 7년(748)에는 예성강 유역에 대곡군(大谷郡), 수곡성현(水谷城縣), 해고군, 도납현(刀臘縣)의 4개 군·현을, 경덕왕 21년(762)에 황해도 중심부에 오곡(五谷), 휴암(鵂嵒), 한성(漢城), 장새(獐塞), 지성(池城), 덕곡(德谷)의 6성(城), 즉 6군을, 다시 헌덕왕대인 809~826년에 대동강 남안에 취성군, 토산현(土山縣), 당악현(唐嶽縣), 송현현(松峴縣)의 4개 군현을 순차적으로 설치하였다고 보인다. 예성강 유역으로부터 북상하면서 북방 영역을 개척했으며, 이를 경덕왕 7년 8월조에 몰아서 기록한 것이라 여겨진다(이기동, 1984, 213~216쪽 ; 전덕재, 2013). 한편 14군현이 경덕왕 7년에 모두 설치되었으며, 이는 황해도 중·동부의 6군 4현과 해구군(海口郡;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구성되었다는 반론(강봉룡, 1997, 197~216쪽)이 제기된 바 있다.
〈참고문헌〉
이기동, 1984, 「신라 하대의 패강진 -고려왕조의 성립과 관련하여-」,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강봉룡, 1997,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운영-주군현제의 확대와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 11
전덕재, 2013,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그 성격」, 『대구사학』 113
〈참고문헌〉
이기동, 1984, 「신라 하대의 패강진 -고려왕조의 성립과 관련하여-」,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강봉룡, 1997,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운영-주군현제의 확대와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 11
전덕재, 2013,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그 성격」, 『대구사학』 113
註) 002
대곡성(大谷城): 본서 권제37 잡지제6 지리(地理)4 고구려(高句麗)조에 한산주(漢山州)에 소속된 군현으로 대곡군(大谷郡)이 보인다. 고구려 때 다지홀(多知忽)로 불렸으며, 신라에서 여기에 대곡군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 16년(757)에 영풍군(永豐郡)으로 개칭하였다. 대곡군은 지금의 황해도 평산군(북한의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으로 비정된다. 성덕왕(聖德王) 34년(735)에 당으로부터 패강(浿江), 곧 대동강 이남의 땅을 할양받은 후 이때 군현을 설치하여 본격적인 지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선덕왕(宣德王) 3년(782) 대곡성을 중심으로 패강진(浿江鎭)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였다.
註) 003
14개의 군과 현을 두었다: 대곡성과 함께 설치된 14개 군·현은 본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한주조에 보이는 예성강 이북의 군현, 즉 영풍군(永豊郡; 황해도 평산)과 영현(領縣) 2개, 해고군(海皐郡; 황해도 연백)과 영현 1개, 오관군(五關郡; 황해도 서흥)과 영현 1개, 취성군(取城郡; 황해도 황주)과 영현 3개, 폭지군(瀑池郡; 황해도 해주), 중반군(重盤郡; 평남 안주), 서암군(栖嵒郡; 황해도 봉산)의 숫자 14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 일시에 설치된 것이 아니고, 경덕왕 7년(748)에는 예성강 유역에 대곡군(大谷郡), 수곡성현(水谷城縣), 해고군, 도납현(刀臘縣)의 4개 군·현을, 경덕왕 21년(762)에 황해도 중심부에 오곡(五谷), 휴암(鵂嵒), 한성(漢城), 장새(獐塞), 지성(池城), 덕곡(德谷)의 6성(城), 즉 6군을, 다시 헌덕왕대인 809~826년에 대동강 남안에 취성군, 토산현(土山縣), 당악현(唐嶽縣), 송현현(松峴縣)의 4개 군현을 순차적으로 설치하였다고 보인다. 예성강 유역으로부터 북상하면서 북방 영역을 개척했으며, 이를 경덕왕 7년 8월조에 몰아서 기록한 것이라 여겨진다(이기동, 1984, 213~216쪽 ; 전덕재, 2013). 한편 14군현이 경덕왕 7년에 모두 설치되었으며, 이는 황해도 중·동부의 6군 4현과 해구군(海口郡;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구성되었다는 반론(강봉룡, 1997, 197~216쪽)이 제기된 바 있다.
〈참고문헌〉
이기동, 1984, 「신라 하대의 패강진 -고려왕조의 성립과 관련하여-」,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강봉룡, 1997,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운영-주군현제의 확대와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 11
전덕재, 2013,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그 성격」, 『대구사학』 113
〈참고문헌〉
이기동, 1984, 「신라 하대의 패강진 -고려왕조의 성립과 관련하여-」,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강봉룡, 1997,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운영-주군현제의 확대와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 11
전덕재, 2013, 「신라 하대 패강진의 설치와 그 성격」, 『대구사학』 113
주제분류
- 정치>군사>군사시설>군사기지
- 정치>행정>군현>군
- 정치>행정>군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