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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豐璋과 福信의 대립. 福信의 죽음
6월 前將軍 上毛野君稚子 등이 新羅의 沙鼻岐奴江 註 001 2개의 성을 빼앗았다. 百濟王 豐璋은 福信이 모반하려는 마음을 가졌다고 의심하여 손바닥을 뚫고 가죽으로 묶었다. 이 때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워 할 바를 알지 못했으므로, 여러 신하에게 “福信의 죄가 이미 이와 같으니 목을 베는 것이 좋겠는가 아닌가”하고 물었다. 이에 達率 德執得이 “이 악한 반역 죄인은 풀어주어서는 안됩니다”고 하였다. 福信이 곧 執得에게 침을 뱉으며 “썩은 개와 같은 어리석은 놈”이라고 하였다. 왕이 시종하는 병졸들로 하여금 목을 베어 머리를 소금에 절이도록 하였다.註 002
註) 001
沙鼻·岐奴江인지 沙鼻岐·奴江인지 沙鼻岐奴의 江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바로가기
註) 002
풍장과 福信의 대립 및 福信의 죽음에 대해 『舊唐書』 권 199 上, 東夷百濟條에서는 “당시 복신이 그 병권을 오로지 한 뒤 扶餘豐과 점차 서로 시기하였다. 복신이 병이 들었다고 하고 窟室에 누워 있으면서 장차 扶餘豐이 문병오면 습격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扶餘豐이 이를 알고 그가 믿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복신을 불의에 습격하여 죽였다”고 하였다. 『三國史記』 권 28, 義慈王條의 용삭 2년의 기사도 이와 같다.바로가기
국가명
  • 백제(百濟)
주제분류
  • 정치>행정>관인>포상·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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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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