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이 한성정에 도착하다
(
667년
09월
)
〔7년(667)〕 9월에 한성정(漢城停)註 001에 이르러 영공(英公)註 002을 기다렸다.
한성정(漢城停): 6정(停) 중 하나로서 한산(漢山)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이른다. 본래 신주정(新州停)이었는데, 진흥왕(眞興王) 18년(557)에 폐지되고 북한산주(北漢山州)가 설치되었으며, 진흥왕 22년(561) 이전에 한성주(漢城州)로 바뀌었다가 진흥왕 29년(568) 이전에 다시 북한산주가 되었으며, 진흥왕 29년에 남천주(南川州)로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정구복 외, 560쪽). 한편 광역주정(廣域州停)과 주치정(州治停)을 구분하는 견해에서는 광역주정이 진흥왕 14년(553) 신주정에서 태종무열왕 8년(661) 남천정(南川停)을 거쳐 문무왕 4년(664)에 한산정(漢山停)으로 변화하였으며, 주치정은 진흥왕 14년의 한성정에서 진흥왕 18년에 북한산정(北漢山停), 진흥왕 29년에 남천정, 진평왕 26년(604)에 북한산정, 태종무열왕 8년(661)에 남천정을 거쳐 문무왕 4(664)년에 한산정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李文基, 104~106쪽). 한편 진흥왕 22년에서 29년 9월까지 신주(新州)에 위치한 정군단을 한성정(또는 한산정)이라고 불렀다가, 진흥왕 29년 10월에 신주의 주치를 남천으로 옮기면서 정군단도 남천으로 이동시켜 남천정이라고 개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한성정을 신주정이라고 개서(改書)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흥왕 14년에 신주를 설치한 사실 및 상주정(上州停)과 하주정(下州停) 등의 사례를 참조하여 신주에 위치한 정군단을 신주정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진흥왕 29년에 한성정에서 남천정으로 개칭한 사실을 신주정을 혁파하고 남천정을 설치한 것으로 기술하였다고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전덕재, 2019). 여기서 한성정은 정군단이 주둔한 지역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李文基, 1995,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3(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전덕재, 2019, 「『三國史記』 職官志 武官條의 原典과 撰述에 대한 考察-諸軍官·凡軍號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86
〈참고문헌〉
李文基, 1995,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3(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전덕재, 2019, 「『三國史記』 職官志 武官條의 原典과 撰述에 대한 考察-諸軍官·凡軍號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86
註) 001
한성정(漢城停): 6정(停) 중 하나로서 한산(漢山)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을 이른다. 본래 신주정(新州停)이었는데, 진흥왕(眞興王) 18년(557)에 폐지되고 북한산주(北漢山州)가 설치되었으며, 진흥왕 22년(561) 이전에 한성주(漢城州)로 바뀌었다가 진흥왕 29년(568) 이전에 다시 북한산주가 되었으며, 진흥왕 29년에 남천주(南川州)로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정구복 외, 560쪽). 한편 광역주정(廣域州停)과 주치정(州治停)을 구분하는 견해에서는 광역주정이 진흥왕 14년(553) 신주정에서 태종무열왕 8년(661) 남천정(南川停)을 거쳐 문무왕 4년(664)에 한산정(漢山停)으로 변화하였으며, 주치정은 진흥왕 14년의 한성정에서 진흥왕 18년에 북한산정(北漢山停), 진흥왕 29년에 남천정, 진평왕 26년(604)에 북한산정, 태종무열왕 8년(661)에 남천정을 거쳐 문무왕 4(664)년에 한산정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李文基, 104~106쪽). 한편 진흥왕 22년에서 29년 9월까지 신주(新州)에 위치한 정군단을 한성정(또는 한산정)이라고 불렀다가, 진흥왕 29년 10월에 신주의 주치를 남천으로 옮기면서 정군단도 남천으로 이동시켜 남천정이라고 개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한성정을 신주정이라고 개서(改書)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흥왕 14년에 신주를 설치한 사실 및 상주정(上州停)과 하주정(下州停) 등의 사례를 참조하여 신주에 위치한 정군단을 신주정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진흥왕 29년에 한성정에서 남천정으로 개칭한 사실을 신주정을 혁파하고 남천정을 설치한 것으로 기술하였다고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전덕재, 2019). 여기서 한성정은 정군단이 주둔한 지역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李文基, 1995,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3(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전덕재, 2019, 「『三國史記』 職官志 武官條의 原典과 撰述에 대한 考察-諸軍官·凡軍號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86
〈참고문헌〉
李文基, 1995,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3(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전덕재, 2019, 「『三國史記』 職官志 武官條의 原典과 撰述에 대한 考察-諸軍官·凡軍號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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