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군
김제군(金堤郡)註 196은 본래 백제(百濟)의 벽골현(碧骨縣)註 197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넷이다.
김제군(金堤郡):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쪽). 고려 초에 전주의 속군(屬郡)이 되었다가, 인종 21년(1143)에 현령(縣令)을 두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김제현). 조선 태종 3년(1403)에 군(郡)으로 승격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3 전라도 김제군). 군의 남쪽 15리에 벽골제(碧骨堤)가 있다. 벽골제는 본서 권2 신라본기 흘해이사금 21년(330)조에 벽골지(碧骨池)로 기록되어 있는데, 길이가 1,800보라고 한다. 벽골제의 축조 주체와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2 신라본기 흘해이사금 21년(330)조의 벽골지에 대한 주석 참조.
벽골현(碧骨縣): 신라 전주 김제군(金堤郡, 김제시)의 백제 때 이름으로, 본서 권37 지리지 4 백제 완산주 소속의 군현에서는 벽골군(碧骨郡)이라고도 나온다. 이를 신라가 통일 후 백제지역의 행정 단위를 개편할 때 군에서 현으로 읍격이 하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노중국, 1988, 115쪽). 백제시대 때에는 벽골군으로 편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지원구, 2022, 54쪽).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도독부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양골(陽骨)을 고사주(古四州, 정읍시 고부면) 소속의 양성현(陽城縣, 벽성현)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다.
〈참고문헌〉
노중국, 1988,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15쪽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참고문헌〉
노중국, 1988,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15쪽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만경현(萬頃縣)註 198註 199은 본래 백제(百濟)의 두내산현(豆乃山縣)註 200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만경현(萬頃縣):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쪽). 고려 때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예종 원년(1106)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뒤에 현령(縣令)으로 승격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만경현). 『대동지지』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12년에 김제(金堤)에 합쳤는데, 14년에 전주로 옮겨 예속시켰다가 인조 15년에 다시 현(縣)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평고현(平皐縣)註 201은 본래 백제(百濟)의 수동산현(首冬山縣)註 202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평고현(平皐縣):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325쪽).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이 되었고, 뒤에 김제현(金堤縣)에 다시 속하게 하였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김제현 평고현). 평고폐현(平皐廢縣)은 김제군(金堤郡) 동쪽 25리에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의 표시로 보아, 현재의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 해당한다.
이성현(利城縣)註 203은 본래 백제(百濟)의 내리아현(乃利阿縣)註 204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이성현(利城縣):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으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5쪽). 신라 경덕왕 때 이성현으로 이름을 고치고, 김제군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전주목 이성현). 이성폐현(利城廢縣)은 전주 서쪽 75리에 있었다. 『대동여지도』의 표기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 소재지인 동지산리(옛 이름 童子浦) 일대에 해당한다.
무읍현(武邑縣)註 205註 206은 본래 백제(百濟)의 무근촌현(武斤村縣)註 207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부윤현(富潤縣)註 208이다.
부윤현(富潤縣): 신라 전주 김제군(金堤郡) 무읍현(武邑縣, 김제시 성덕면)의 고려 때 이름. 무읍현(武邑縣)을 고려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이름을 고쳐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만경현(萬頃縣)에 속하게 하였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부윤현). 부윤폐현(富潤廢縣)은 만경현(萬頃縣) 남쪽 13리에 있었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만경현), 거리나 『대동여지도』의 방면(方面) 표기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김제시 성덕면 석동리 일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註) 196
김제군(金堤郡):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쪽). 고려 초에 전주의 속군(屬郡)이 되었다가, 인종 21년(1143)에 현령(縣令)을 두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김제현). 조선 태종 3년(1403)에 군(郡)으로 승격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3 전라도 김제군). 군의 남쪽 15리에 벽골제(碧骨堤)가 있다. 벽골제는 본서 권2 신라본기 흘해이사금 21년(330)조에 벽골지(碧骨池)로 기록되어 있는데, 길이가 1,800보라고 한다. 벽골제의 축조 주체와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2 신라본기 흘해이사금 21년(330)조의 벽골지에 대한 주석 참조.
註) 197
벽골현(碧骨縣): 신라 전주 김제군(金堤郡, 김제시)의 백제 때 이름으로, 본서 권37 지리지 4 백제 완산주 소속의 군현에서는 벽골군(碧骨郡)이라고도 나온다. 이를 신라가 통일 후 백제지역의 행정 단위를 개편할 때 군에서 현으로 읍격이 하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노중국, 1988, 115쪽). 백제시대 때에는 벽골군으로 편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지원구, 2022, 54쪽).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도독부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양골(陽骨)을 고사주(古四州, 정읍시 고부면) 소속의 양성현(陽城縣, 벽성현)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다.
〈참고문헌〉
노중국, 1988,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15쪽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참고문헌〉
노중국, 1988,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15쪽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註) 199
만경현(萬頃縣):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쪽). 고려 때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예종 원년(1106)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뒤에 현령(縣令)으로 승격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만경현). 『대동지지』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12년에 김제(金堤)에 합쳤는데, 14년에 전주로 옮겨 예속시켰다가 인조 15년에 다시 현(縣)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註) 200
註) 201
평고현(平皐縣):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325쪽).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이 되었고, 뒤에 김제현(金堤縣)에 다시 속하게 하였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김제현 평고현). 평고폐현(平皐廢縣)은 김제군(金堤郡) 동쪽 25리에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의 표시로 보아, 현재의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 해당한다.
註) 203
이성현(利城縣):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으로 비정한다(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5쪽). 신라 경덕왕 때 이성현으로 이름을 고치고, 김제군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전주목 이성현). 이성폐현(利城廢縣)은 전주 서쪽 75리에 있었다. 『대동여지도』의 표기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 소재지인 동지산리(옛 이름 童子浦) 일대에 해당한다.
註) 208
부윤현(富潤縣): 신라 전주 김제군(金堤郡) 무읍현(武邑縣, 김제시 성덕면)의 고려 때 이름. 무읍현(武邑縣)을 고려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이름을 고쳐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만경현(萬頃縣)에 속하게 하였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부윤현). 부윤폐현(富潤廢縣)은 만경현(萬頃縣) 남쪽 13리에 있었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만경현), 거리나 『대동여지도』의 방면(方面) 표기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김제시 성덕면 석동리 일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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