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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군이 浿水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 좌장군이 浿水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王險]城 아래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樓船[軍]도 또한 가서 합세하여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우거가 끝내 성을 굳게 지키므로 몇 달이 되어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좌장군은 본시 侍中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燕과 代지방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는데,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 누선[장군]은 齊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로 출병하였으나, 이미 여러번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잃었으며, 앞서 우거와의 싸움에서 곤욕을 치른 패잔한 군사들이라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 하고 장군은 부끄럽게 여겨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화평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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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군사>전쟁>전투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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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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