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王仁貞·百濟王元信·百濟王忠信 등의 賜姓 요청(朝臣)
가을 7월 辛巳 左中弁 正5位上 兼木工頭 百濟王仁貞, 治部少輔 從5位下 百濟王元信, 中衛少將 從5位下 百濟王忠信, 圖書頭 從5位上 兼東宮學士 左兵衛佐 伊豫守 津連眞道 등이 表를 올려, “저희들은 本系가 百濟國 貴須王
註 001에서 나왔습니다. 貴須王은 百濟가 처음 일어난 때로부터 제16대 王입니다.註 002 대저 百濟의 太祖 都慕大王
註 003은 태양신이 몸에 내려온 분으로, 扶餘에 머물러 나라를 열었습니다. 天帝가 籙을 주어 모든 韓을 통솔하고 王을 칭하게 하였습니다. 시대를 내려와 近肖古王에 이르러 멀리서 聖朝의 교화를 사모하여 비로소 貴國에 朝聘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神功皇后가 섭정하던 해의 일입니다. 그 후 輕嶋豊明朝御宇 應神天皇은 上毛野氏의 먼 조상인 荒田別
註 004을 백제에 사신으로 보내어 학식이 있는 사람을 찾아 모셔오게 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임금인 貴須王은 공경하게 사신의 뜻을 받들고 宗族 중에서 택하여 그 손자인 辰孫王
註 005
일명 智宗王을 보내어 사신을 따라 入朝하게 하였습니다. 天皇은 가상히 여겨 특별히 총애를 더하고 황태자註 006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이에서 비로소 서적이 전해지고 儒風이 크게 열렸으니, 文敎의 일어남이 진실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難波高津朝御宇 仁德天皇은 辰孫王의 長子인 太阿郞王을 近侍로 삼았습니다. 太阿郞王의 아들은 亥陽君이며, 亥陽君의 아들은 午定君인데 午定君은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맏아들은 味沙, 가운데는 辰爾,註 007 막내 아들은 麻呂입니다. 이들로부터 3姓이 처음 나누어졌는데, 각각 맡은 직책을 따라 姓氏를 이름했습니다. 葛井·船·津連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他田朝御宇 敏達天皇이 다스리는 때에 이르러 高麗國에서 사신을 보내어 까마귀 날개에 쓴 表를 올렸습니다. 여러 신하들과 史官들은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였는데, 辰爾가 나와 그 表를 가져다가 읽고 잘 베껴내어 表文을 풀이 해 아뢰었습니다. 天皇은 그 학문이 높음을 가상히 여겨 상을 더욱 두터이 하고 詔를 내려 ‘부지런하고 훌륭하구나. 네가 만약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누가 능히 해독할 수 있었겠는가. 마땅히 이제부터는 殿中에서 近侍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東西의 여러 史官들에게 詔를 내려, ‘너희들은 비록 수가 많으나 辰爾에 미치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國史와 家牒에 그 일이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註 008 엎드려 생각건대 皇朝께서는 하늘을 본받아 교화를 베풀고 옛 것을 상고하여 風紀를 드리우시니, 큰 은택이 모든 나라에 넘치고 바른 정치가 모든 사물에까지 널리 미칩니다. 그러므로 능히 없어진 것을 모으고 끊어진 것을 이으니, 만백성이 우러러 기쁨에 힘입어 명분을 바로하고 사물을 분별하며, 온 천하가 귀부하여 마땅함을 얻습니다. 이에 무릇 살아있는 것으로 손뼉치고 뛰지 않음이 없습니다. 眞道 등 저희들의 선조가 聖朝에서 처음 벼슬한 이후 세월이 오래되었으나, 가문은 文筆의 업을 이어 오고 족속은 가르치는 職을 관장하고 있으니, 眞道 등은 나면서부터 큰 행운을 만나 천자의 은혜에 잠겨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連姓을 고쳐 朝臣의 姓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이에 勅을 내려 사는 곳의 이름을 따서 菅野朝臣이라는 姓을 내려 주었다.
註) 002
註) 004
註) 005
註) 007
국가명
- 백제(百濟)
- 고구려(高句麗)
주제분류
- 사회>사회조직>신분>성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