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철령위 설치가 임박하자 왕이 서쪽으로 가려 하다
서북면도안무사(西北面都安撫使) 최원지(崔元沚)가 보고하기를, “요동도사(遼東都司)가 지휘(指揮) 2인을 보내 병사 1,000여 명을 데리고 와서 강계(江界)에 이르러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려 하고 있으며, 황제가 먼저 본 위(衛)의 진무(鎭撫) 등의 관원을 설치하여, 모두 요동(遼東)에 이르렀습니다. 요동에서 철령까지 70참(站)을 두고, 참마다 백호(百戶)를 둔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우왕이 동강(東江)에서 돌아오다가 말 위에서 울면서 이르기를, “여러 신하들이 나의 요동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듣지 않아 이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8도의 정병(精兵)을 뽑아서 명을 내리기를, “내일 서쪽으로 가려고 하니, 신료들은 모두 원의 관복을 입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우리 태조(太祖) 및 여러 재추들이 말하기를, “명(明)의 사신이 곧 이를 것인데, 지금 서쪽으로 간다면 민심이 동요할 것입니다. 청컨대 명의 사신이 돌아가는 것을 기다리십시오.”라고 하였다. 우왕이 이를 따르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당시 성 안 사람들이 편발(編髮)에 호복(胡服)을 입은 자들이 이미 많았는데, 헌부(憲府)에서 명의 사신이 곧 이를 것이므로 금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