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이 남가라와 탁기탄을 일으켜 임나에 합치고자 하나 반정(磐井)이 방해함
21년 여름 6월 임신삭 갑오(3일),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오후미노케나노오미)주 001이 무리 6만을 거느리고 임나에 가서 신라에 의해 멸망당한 남가라(南加羅)주 002와 탁기탄(㖨己呑)주 003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임나에 합치고자 하였다주 004. 이때 축자(筑紫;츠쿠시)의 국조(國造) 반정(磐井;이하위)주 005이 은밀히 반역을 도모한 지 수년이 지났다. 그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항상 틈을 보고 있었다. 신라가 이를 알고 몰래 뇌물을 반정에게 보내어 모야신의 군사를 막아주기를 권유하였다. 이에 반정은 화국(火國;히노쿠니)주 006과 풍국(豊國;토요노쿠니)주 007의 두 지역을 점거하고,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밖으로는 해로를 막아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국의 연공을 바치는 배를 끌어들이고, 안으로는 임나에 파견하는 모야신의 군사를 차단하고 함부로 큰소리치기를, “지금 사신은 전에는 나의 동료로서 몸을 서로 부비고 한 그릇에 밥을 나누어 먹었는데, 어찌 갑자기 사신이 되었다고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엎드리게 하는가.”라고 하고 싸움을 일으켜 따르지 않으며, 교만하고 기세등등하였다주 008
번역주 008)
. 이에 모야신은 방해를 받아 중도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천황은 대반대련금촌(大伴大連金村;오호토모노오호무라지카나무라)과 물부대련추록화(物部大連麤鹿火)와 허세대신남인(許勢大臣男人;코세노오호오미워히토) 등에게 조를 내려, “축자의 반정이 반란을 일으켜 서쪽의 변방을 점거하고 있으니, 누가 가히 장군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대반대련 등이 입을 모아 “정직하고 어질고 용감하며 병법에 달통한 바가 지금 추록화(麤鹿火)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천황이 “좋다.”고 하였다. 磐井의 난에 대해서는 大和政權의 한반도 출병으로 인한 군사적·경제적인 부담에 築紫지역 수장층이 반발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비롯하여, 大和政權의 지방에 대한 직접지배를 강화하는 데 대한 불만, 九州 지역이 大和政權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전쟁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磐井의 동향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新羅가 磐井과 결탁 혹은 지원하여 大和政權과 대립토록 하고 있는 점이다. 신라가 김해 등 가야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야와 大和政權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磐井과 제휴했을 개연성이 높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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磐井의 난에 대해서는 大和政權의 한반도 출병으로 인한 군사적·경제적인 부담에 築紫지역 수장층이 반발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비롯하여, 大和政權의 지방에 대한 직접지배를 강화하는 데 대한 불만, 九州 지역이 大和政權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전쟁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磐井의 동향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新羅가 磐井과 결탁 혹은 지원하여 大和政權과 대립토록 하고 있는 점이다. 신라가 김해 등 가야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야와 大和政權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磐井과 제휴했을 개연성이 높다.
색인어
- 이름
- 근강모야신, 반정, 반정, 모야신, 반정, 모야신, 모야신, 대반대련금촌, 물부대련추록화, 허세대신남인, 반정, 대반대련, 추록화(麤鹿火)
- 지명
- 축자, 화국, 풍국, 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