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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근강모야신의 실정으로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명하였으나 듣지 않음

가을 9월, 임나의 사신이 “모야신(毛野臣)구사모라에 택사를 짓고 머문지 이미 2년[어떤 책에서는 3년이라고 하였으니, 왕복하는 데 걸린 햇수를 합한 것이다.]이 되었으나, 정사는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인과 임나인이 자주 자식을 두고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래 쉽게 판결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모야신은 즐겨 서탕(誓湯)주 001
번역주 001)
盟神探湯을 말한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하여 신에게 맹서하고 뜨거운 물 속에 손을 넣는 神判을 말한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손을 데인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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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설치하여 ‘사실을 말하는 자는 데이지 않을 것이며, 거짓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데일 것이다’라고 하며 끓는 물 속에 던져 넣으니, 죽는 자가 많습니다. 또 길비한자나다리(吉備韓子那多利;키비노카라코나타리)와 사포리(斯布利;시후리)[일본인주 002
번역주 002)
원문은 大日本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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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웃 나라의 여자를 취하여 낳은 자를 한자(韓子)주 003
번역주 003)
韓子는 한반도 주민과 왜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吉備韓子那多利 이외에도 蘇我韓子宿禰의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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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한다.]를 죽이고, 항상 백성을 괴롭히고 용서하는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천황은 그 행적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불러들였으나 (모야신은) 가지 않았다. (이때 모야신은) 몰래 하내모수마사수어수(河內母樹馬飼首御狩;카후치노오모노키노우마카히노오비토미카리)주 004
번역주 004)
인명 중의 母樹(오모노키)는 지명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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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도읍에 보내어 “신이 아직 칙지를 수행하지 못하였으니, 도읍에 돌아간다면 수고롭게 왔다가 헛되이 돌아가는 것이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국명을 완수한 다음 입조하여 사죄하기를 기다려주십시오.”라고 아뢰었다. 사자를 보낸 다음 (모야신은) 다시 혼자 탄식하며 “조길사(調吉士;츠키노키시)주 005
번역주 005)
백제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가 정착한 씨족이다. 『新撰姓氏錄』에 의하면 동족인 調曰佐와 調連은 百濟國 奴理使主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欽明紀 23년 7월조에 調吉士伊企儺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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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천황의 사자이다. 만약 내가 보낸 사자보다 먼저 돌아가서 사실대로 보고한다면 나의 죄가 반드시 무거워질 것이다.”라고 하고, 조길사를 보내어 무리를 이끌고 이사지모라성(伊斯枳牟羅城) 주 006
번역주 006)
伊斯枳라는 자연 촌락에 牟羅라는 행정단위 명칭이 붙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또한 牟羅의 주변에는 城이 둘러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야시대 마을 주변에 土城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木柵을 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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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키게 하였다.

  • 번역주 001)
    盟神探湯을 말한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하여 신에게 맹서하고 뜨거운 물 속에 손을 넣는 神判을 말한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손을 데인다고 믿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원문은 大日本人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韓子는 한반도 주민과 왜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吉備韓子那多利 이외에도 蘇我韓子宿禰의 사례가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인명 중의 母樹(오모노키)는 지명으로 생각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백제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가 정착한 씨족이다. 『新撰姓氏錄』에 의하면 동족인 調曰佐와 調連은 百濟國 奴理使主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欽明紀 23년 7월조에 調吉士伊企儺가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伊斯枳라는 자연 촌락에 牟羅라는 행정단위 명칭이 붙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또한 牟羅의 주변에는 城이 둘러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야시대 마을 주변에 土城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木柵을 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모야신(毛野臣), 모야신, 길비한자나다리, 사포리, 모야신, 모야신, 하내모수마사수어수, 모야신, 조길사, 조길사
지명
구사모라, 이사지모라성(伊斯枳牟羅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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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강모야신의 실정으로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명하였으나 듣지 않음 자료번호 : ns.k_0029_018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