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고종(高宗)

고종 16년 기묘(1879, 광서)

2월
9일(계미) 흐림
16-02-09[24] 좋은 꾀를 널리 펴서 강역을 보전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함경 감사 김병지에게 내린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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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09[24] 좋은 꾀를 널리 펴서 강역을 보전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함경 감사 김병지에게 내린 교서
○ 함경 감사 김병지에게 교서를 내렸다. 왕이 이르기를,
“강역 오백리에 각각 이루어야 할 공이 있으니 무위(武威)를 떨치고 문교(文敎)를 다스림에, 오직 이천석의 태수가 다스림을 함께 할 어진 신하로서 덕화를 받들어 펴야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경은 백성을 보호하고 다스리는 직책에 있는데 이제 내가 변방의 중임을 제수하노라. 이 해동(海東)의 변방을 돌아보건대 관북(關北) 일성이 가장 중요한 곳이다. 하늘이 내려준 험저함은 왕업이 일어난 터전이 되었고, 원침(原寢)의 월유(月遊)를 받드는 곳이니 신령이 상설(象設)을 보호하는 바요, 바다와 개마고원(盖馬高原)의 형세를 제어하니 지리(地理)의 영험이 모인 곳이요, 동, 철, 삼, 초피의 진귀한 물산이 생산되어 민생에 이롭게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열성조(列聖朝)의 위무와 회유가 지극히 갖추어졌거늘, 어찌하여 오늘날 폐단이 갈수록 심해지는가. 적법(糴法)은 교창(交倉)에서 매양 뒤섞이어 빈 장부만 헛되이 끼고 있음을 탄식하고, 군정(軍政)은 변방의 방어보다 경계할 것이 없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장구한 계책이 소홀해졌다. 흉년의 빈민에 대해서는 그 가난함을 구제해주지 못함을 탄식하고, 이웃 나라와의 호시(互市)에서는 사소한 다툼이 근심거리가 됨을 소홀히 하고 있다. 안정시킬 방도를 생각하건대 누구에게 진정시키고 다스리는 책임을 맡길 수 있겠는가.
경은 효성스런 집안을 이어받아 나라와 휴척(休慽)을 함께하여 직임의 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라는 조상의 유훈을 명심하고서 주요한 직책을 두루 거치며 아름다운 계책을 도왔다. 훌륭한 소문이 일찍부터 조정에 드러났고, 의당 여러 직무에 섞어 시험해 보니 훌륭한 치적이 이미 여러 관직에서 드러나 스스로 규모를 이루었으니 어디를 간들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아니면 알맞는 이가 없다. 이에 경을 행 함경도관찰사 겸 도순찰사 병마수군절도사 함흥부윤(行咸鏡道觀察使兼都巡察使兵馬水軍節度使咸興府尹)으로 제수하노라. 경은 삼가 명을 받고 힘써 좋은 꾀를 널리 펴서 강역을 보전하고 이웃 나라와 화목하며, 모름지기 백성들을 위무하는 일을 극진히 하고 게을리 하지 말 것이며, 선을 표창하고 악을 막아 출척을 분명히 하도록 힘쓰라. 범맹박(范孟博)은 천하를 깨끗이 하려는 뜻을 품고 수레에 올라 고삐를 쥐었으며, 양숙자(羊叔子)는 느슨한 허리띠와 가벼운 갓옷으로 형남(荊南)을 진정시켰으니 본래 상도(常道)가 있는 것이다. 내가 어찌 많은 말을 하리오.
아아, 변방의 요해처를 굳세게 지킴에 흑강(黑江)에 풍파가 일지 않고 청명(靑冥)에 부월을 내림에 백두산이 더욱 후중해지리라. 공경할지어다. 그대는 가서 짐의 밤낮없이 근심하는 마음을 덜어주도록 하라. 떠나면 곧 그대를 부를 것이니 잠시 곁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노니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였다. 검교직각 조동희(趙同熙)가 지어 올린 것이다.
16-02-09[24] 좋은 꾀를 널리 펴서 강역을 보전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함경 감사 김병지에게 내린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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