總章 2년(A.D.669; 新羅 文武王 9)에
○ 總章 2년(A.D.669; 新羅 文武王 9)에 高[句]麗民 3만명을 江淮와 山南으로 옮겼다.註 309 高[句]麗의 大長 鉗牟岑註 310이 무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註 311 [高]藏의 外孫 安舜註 312을 세워 王으로 삼았다.註 313 高偘을 東州道行軍總管으로 삼고, 李謹行을 燕山道行軍總管으로 삼아 토벌케 하였다. 司平太常伯 楊昉을 보내어 도망치고 남은 무리를 불러 들이게 하였다. [安]舜이 鉗牟岑을 죽이고 新羅로 달아 났다. [高]偘은 都護府의 治所를 遼東州로 옮기고, 반란군을 安市[城]에서 격파하고, 註 314 또 泉山에서 쳐부수고 新羅의 援兵 2천명을 사로잡았다.註 315 李謹行은 그들을 發盧河註 316에서 쳐부수고, 다시 싸워서 포로와 斬首한 수가 1萬에 이르렀다. 이에 平壤[城]의 敗殘兵들은 다시 軍列을 정비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어울려 新羅로 망명하였다. 그리하여 무려 4년만에 평정되었다.註 317
지난날 [李]謹行이 아내 劉氏를 시켜 伐奴城을 수비케 하였는데, 고구려가 공격해 오자, 劉氏는 갑옷을 입고 隊伍를 정렬하여 수비하였다. 그리하여 賊들이 물러 났다. 高宗은 이를 가상히 여겨 燕郡夫人에 封하였다.
註) 309
註) 310
註) 311
註) 312
註)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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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