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군
부성군(富城郡)註 108은 본래 백제(百濟)의 기군(基郡)註 109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2개이다.
부성군(富城郡):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3쪽). 신라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을 고려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고려 인종 22년(1143)에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명종 12년(1182)에 고을 사람들이 현령과 현위(縣尉)를 협박해 가두자 관호(官號)를 없앴다. 충렬왕 10년(1284)에 서산(瑞山)으로 이름을 고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가, 충렬왕 34년(1308)에 또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1310)에 서령부(瑞寧府)로 강등되었고 뒤에 또 지서주사(知瑞州事)로 강등되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부성현). 조선 태종 13년에 다시 서산군(瑞山郡)으로 고쳤으며, 숙종·영조·정조 때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복구될 정도로 읍격의 변화가 빈번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충청도 서산군).
소태현(蘇泰縣)註 110은 본래 백제(百濟)의 성대혜현(省大兮縣)註 111註 112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소태현(蘇泰縣): 현재의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정구복 외, 1997, 313쪽). 신라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을 고려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았고, 고려 현종 현종 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군 홍성읍)의 속현이 되었으며, 충렬왕 때 태안(泰安)으로 이름을 고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소태현). 조선이 그대로 이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충청도 태안군). 본서 권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5년(804) 추7월조에는 소대현(蘇大縣)으로 나온다. 이를 부성군(富城郡)의 3개 영현 중 하나인 소태현(蘇泰縣)과 동일한 것으로 보면서,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정구복 외, 2012, 321~322쪽). 또 고려 충렬왕이 소태현을 지태안군사(知泰安郡事)로 승격시켰음을 고려하여,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이병도 역주, 1996, 243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병도 역주, 1996, 『삼국사기』 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병도 역주, 1996, 『삼국사기』 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지육현(地育縣)註 113은 본래 백제(百濟)의 지육현(知六縣)註 114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북곡현(北谷縣)註 115이다.
지육현(地育縣):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3쪽).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도독부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지류(知留)를 도독부 지심주(支潯州) 소속의 평이현(平夷縣)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었으므로, 지류는 곧 지육현(知六縣)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가 지곡현(地谷縣) 또는 북곡현(北谷縣)으로 이름을 고쳐서 그대로 부성군(富城郡, 서산시)에 속하게 두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부성현 지곡현). 조선이 그대로 이었다.
註) 108
부성군(富城郡):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3쪽). 신라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을 고려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고려 인종 22년(1143)에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명종 12년(1182)에 고을 사람들이 현령과 현위(縣尉)를 협박해 가두자 관호(官號)를 없앴다. 충렬왕 10년(1284)에 서산(瑞山)으로 이름을 고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가, 충렬왕 34년(1308)에 또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1310)에 서령부(瑞寧府)로 강등되었고 뒤에 또 지서주사(知瑞州事)로 강등되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부성현). 조선 태종 13년에 다시 서산군(瑞山郡)으로 고쳤으며, 숙종·영조·정조 때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복구될 정도로 읍격의 변화가 빈번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충청도 서산군).
註) 110
소태현(蘇泰縣): 현재의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정구복 외, 1997, 313쪽). 신라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을 고려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았고, 고려 현종 현종 9년(1018)에 홍주(洪州, 홍성군 홍성읍)의 속현이 되었으며, 충렬왕 때 태안(泰安)으로 이름을 고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소태현). 조선이 그대로 이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충청도 태안군). 본서 권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5년(804) 추7월조에는 소대현(蘇大縣)으로 나온다. 이를 부성군(富城郡)의 3개 영현 중 하나인 소태현(蘇泰縣)과 동일한 것으로 보면서,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정구복 외, 2012, 321~322쪽). 또 고려 충렬왕이 소태현을 지태안군사(知泰安郡事)로 승격시켰음을 고려하여,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이병도 역주, 1996, 243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병도 역주, 1996, 『삼국사기』 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병도 역주, 1996, 『삼국사기』 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註) 111
註) 113
지육현(地育縣):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13쪽).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도독부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지류(知留)를 도독부 지심주(支潯州) 소속의 평이현(平夷縣)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었으므로, 지류는 곧 지육현(知六縣)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가 지곡현(地谷縣) 또는 북곡현(北谷縣)으로 이름을 고쳐서 그대로 부성군(富城郡, 서산시)에 속하게 두었다(『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부성현 지곡현). 조선이 그대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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