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
고창군(古昌郡)註 095은 본래 고타야군(古陁耶郡)註 096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안동부(安東府)註 097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고창군(古昌郡):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고타야군(古陁耶郡)을 고창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13년(930)에 후백제왕(後百濟王) 견훤(甄萱)과 이 고을에서 전투를 벌여 패배시켰다. 고을 사람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길(張吉)이 태조를 도와 전공을 세웠으므로, 군(郡)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켰다. 뒤에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쳤다. 성종 14년(995)에 길주자사(吉州刺史)라 불렀다. 현종 3년(1012)에 안무사(安撫使)가 되었다가, 9년(1018)에 지길주사(知吉州事)로 고쳤으며, 21년(1030)에 안동부(安東府)로 바꾸었다. 명종 27년(1197)에 남적(南賊) 김삼(金三)과 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을 노략질하므로 사자(使者)를 보내어 토벌 평정하였는데, 안동부가 공을 세웠으므로 승격시켜 도호부(都護府)가 되었다. 신종 7년(1204)에 동경(東京)의 별초(別抄) 패좌(孛佐) 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안동부가 이를 막아낸 공이 있으므로, 승격시켜 대도호부(大都護府)가 되었다. 충렬왕 34년(1308)에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쳤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紅賊]을 피해 피난 가서 머물렀을 때 고을 사람들이 정성껏 도와주었으므로, 다시 승격시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동부동 일대이다.
직녕현(直寧縣)註 098은 본래 일직현(一直縣)註 099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옛 이름으로 되돌렸다.
직녕현(直寧縣):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一直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일직현(一直縣)을 직녕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초[태조 23년(940)]에 옛 이름으로 되돌렸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일직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그 위치는 안동부 남쪽 31리 지점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이며, 송리산성이 관련된 성으로 추정된다.
일계현(日谿縣)註 100은 본래 열혜현(熱兮縣)註 101혹은 니혜(泥兮)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알 수 없다.
일계현(日谿縣):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신계리 일대에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열혜현(熱兮縣)을 일계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나 있지 않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를 편찬하는 단계에 이미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안동대도호부 고적 일계현(日谿縣)조에도 위치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 의성 고읍조에 의성 동쪽 40리 지점이라고 하였으니 낙동강의 지류인 미천 유역에 해당하는 의성군 옥산면 정도로 추정되며 이를 신계리에 비정하기도 하였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7쪽).
고구현(高丘縣)註 102은 본래 구화현(仇火縣)註 103혹은 고근(高近)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의성부(義城府)註 104에 합해져 속해 있다.
고구현(高丘縣):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일대에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구화현(仇火縣)을 고구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초에 의성부(義城府, 현 경상북도 의성군)에 합쳐졌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성현 고적 고고구현(古高丘縣)조에 의성현 북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일대에 해당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9쪽).
註) 095
고창군(古昌郡):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고타야군(古陁耶郡)을 고창군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태조 13년(930)에 후백제왕(後百濟王) 견훤(甄萱)과 이 고을에서 전투를 벌여 패배시켰다. 고을 사람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길(張吉)이 태조를 도와 전공을 세웠으므로, 군(郡)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켰다. 뒤에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쳤다. 성종 14년(995)에 길주자사(吉州刺史)라 불렀다. 현종 3년(1012)에 안무사(安撫使)가 되었다가, 9년(1018)에 지길주사(知吉州事)로 고쳤으며, 21년(1030)에 안동부(安東府)로 바꾸었다. 명종 27년(1197)에 남적(南賊) 김삼(金三)과 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을 노략질하므로 사자(使者)를 보내어 토벌 평정하였는데, 안동부가 공을 세웠으므로 승격시켜 도호부(都護府)가 되었다. 신종 7년(1204)에 동경(東京)의 별초(別抄) 패좌(孛佐) 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안동부가 이를 막아낸 공이 있으므로, 승격시켜 대도호부(大都護府)가 되었다. 충렬왕 34년(1308)에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쳤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紅賊]을 피해 피난 가서 머물렀을 때 고을 사람들이 정성껏 도와주었으므로, 다시 승격시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동부동 일대이다.
註) 096
註) 098
직녕현(直寧縣):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一直面).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일직현(一直縣)을 직녕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초[태조 23년(940)]에 옛 이름으로 되돌렸으며, 현종 9년(1018)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 일직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그 위치는 안동부 남쪽 31리 지점이라고 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이며, 송리산성이 관련된 성으로 추정된다.
註) 100
일계현(日谿縣):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신계리 일대에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열혜현(熱兮縣)을 일계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나 있지 않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를 편찬하는 단계에 이미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안동대도호부 고적 일계현(日谿縣)조에도 위치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 의성 고읍조에 의성 동쪽 40리 지점이라고 하였으니 낙동강의 지류인 미천 유역에 해당하는 의성군 옥산면 정도로 추정되며 이를 신계리에 비정하기도 하였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7쪽).
註) 102
고구현(高丘縣):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일대에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구화현(仇火縣)을 고구현으로 개명하였다. 고려 초에 의성부(義城府, 현 경상북도 의성군)에 합쳐졌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성현 고적 고고구현(古高丘縣)조에 의성현 북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일대에 해당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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