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립령로를 개척하다
(
156년
04월
)
3년(156)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계립령로(鷄立嶺路)註 001를 개척하였다.
계립령로(鷄立嶺路): 계립령(鷄立嶺)은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소재한 고개를 이르는데, 계립현(鷄立峴)이라고도 한다. 마목현(麻木峴), 마골참(麻骨站), 지릅·지름·기름재, 유티[油峙], 경티[經峙]라고도 불리고 있다. 6세기 후반 인물인 고구려 온달(溫達)이 신라로부터 되찾아야 할 영토를 말하면서 그 기준으로 이 고개를 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구려·백제와 신라 사이, 곧 한반도 중부 지역과 경주를 잇는 교통로상의 요지에 해당한다. 신라는 이 길을 통해 나아가 남한강 상류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계립령로는 계립령을 포함하는 교통로를 의미할 텐데, 충주-문경-상주-선산-왜관-대구-영천-경주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의 한 부분이다. 계립령에서 파생된 고갯길로는 조령로와 이화령를 들 수 있는데, 계립령, 조령, 이화령은 모두 조령천의 상류인 문경분지로 수렴된다.
〈참고문헌〉
徐榮一, 1999, 『新羅 陸上 交通路 硏究』, 학연문화사
崔永俊, 2004, 『한국의 옛길 嶺南大路』,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참고문헌〉
徐榮一, 1999, 『新羅 陸上 交通路 硏究』, 학연문화사
崔永俊, 2004, 『한국의 옛길 嶺南大路』,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註) 001
계립령로(鷄立嶺路): 계립령(鷄立嶺)은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소재한 고개를 이르는데, 계립현(鷄立峴)이라고도 한다. 마목현(麻木峴), 마골참(麻骨站), 지릅·지름·기름재, 유티[油峙], 경티[經峙]라고도 불리고 있다. 6세기 후반 인물인 고구려 온달(溫達)이 신라로부터 되찾아야 할 영토를 말하면서 그 기준으로 이 고개를 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구려·백제와 신라 사이, 곧 한반도 중부 지역과 경주를 잇는 교통로상의 요지에 해당한다. 신라는 이 길을 통해 나아가 남한강 상류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계립령로는 계립령을 포함하는 교통로를 의미할 텐데, 충주-문경-상주-선산-왜관-대구-영천-경주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의 한 부분이다. 계립령에서 파생된 고갯길로는 조령로와 이화령를 들 수 있는데, 계립령, 조령, 이화령은 모두 조령천의 상류인 문경분지로 수렴된다.
〈참고문헌〉
徐榮一, 1999, 『新羅 陸上 交通路 硏究』, 학연문화사
崔永俊, 2004, 『한국의 옛길 嶺南大路』,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참고문헌〉
徐榮一, 1999, 『新羅 陸上 交通路 硏究』, 학연문화사
崔永俊, 2004, 『한국의 옛길 嶺南大路』,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주제분류
- 경제>상업>유통>도로·다리
- 정치>신이>자연현상>기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