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천복 5년 경자에 5가야의 이름을 고치다
아라(阿羅)야(耶)라고도 한다.
가야
註 352
지금의 함안(咸安), 고령가야(古寧伽耶)註 353
지금의 함녕(咸寧), 대가야(大伽耶)註 354
지금의 고령(高靈), 성산가야(星山伽耶)註 355
지금의 경산(京山)註 356이니 [혹은] 벽진(碧珍)이라고도 한다., 소가야(小伽耶)註 357
지금의 고성(固城)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삼국사기≫ 권48 열전8 물계자(勿稽子)조에서는 ‘아라국(阿羅國)’으로, ≪일본서기(日本書紀)≫ 에서는 안라국(安羅國)이라고도 하였다.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일대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고령가야는 가야의 강역에서 멀리 떨어져 고립된 나라라 하기도 하고, 경상남도 진주로 비정하기도 한다(이병도, 「가라제국과 연맹체」, ≪한국고대사연구≫, 1976).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일대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시조는 이진아시(伊珍阿豉)로, 5세기 가야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한조에 보이는 반로국(半路國)으로 생각된다.
성산이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처음 생긴 이름이다(≪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1 강주 성산군) 따라서 이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를 두고 성산가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경덕왕대 이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김태식, ≪가야연맹사≫, 일조각, 1993, 72~73쪽).
지금의 경상남도 고성군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한조의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일본서기(日本書紀)≫ 의 고착국(古嵯國)으로 생각된다.
또 본조(本朝)의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태조 천복(天福)註 358 5년 경자(庚子)에 5가야의 이름을 고치니註 359 1은 금관
김해부(金海府)가 되었다.이요, 2는 고령
가리현(加利縣)註 360이 되었다.이요, 3은 비화(非火)지금의 창녕이란 것은 아마도 고령의 잘못인 것 같다.요, 나머지 둘은 아라와 성산
앞과 마찬가지로 성산은 벽진가야라고도 한다.이다.”라고 하였다.
≪가락기(駕洛記)≫와 ≪본조사략(本朝史略)≫에 5가야의 명칭이 다른 것은 각각 금관가야(金官伽倻)와 대가야(大伽倻)가 중심이었던 시기의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311~313쪽).
가리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었던 현의 이름으로, 신라 때는 일리군(一利郡)이었다가 경덕왕 때 성산군(星山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태조 때 가리현이 되었고 현종 때 경산부(京山府)에 소속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8 성주목(星州牧)) 성산군은 성산가야(碧珍伽耶)의 땅이었으므로 가리현을 고령가야(古寧伽耶)에 비정한 것은 ≪사략(史略)≫ 저자의 잘못으로 보기도 하고, 고령가야가 상주군 함창에서 고령군 성산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註) 352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삼국사기≫ 권48 열전8 물계자(勿稽子)조에서는 ‘아라국(阿羅國)’으로, ≪일본서기(日本書紀)≫ 에서는 안라국(安羅國)이라고도 하였다.
註) 353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일대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고령가야는 가야의 강역에서 멀리 떨어져 고립된 나라라 하기도 하고, 경상남도 진주로 비정하기도 한다(이병도, 「가라제국과 연맹체」, ≪한국고대사연구≫, 1976).
註) 354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일대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시조는 이진아시(伊珍阿豉)로, 5세기 가야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한조에 보이는 반로국(半路國)으로 생각된다.
註) 355
성산이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처음 생긴 이름이다(≪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1 강주 성산군) 따라서 이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를 두고 성산가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경덕왕대 이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김태식, ≪가야연맹사≫, 일조각, 1993, 72~73쪽).
註) 357
지금의 경상남도 고성군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한조의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일본서기(日本書紀)≫ 의 고착국(古嵯國)으로 생각된다.
註) 359
≪가락기(駕洛記)≫와 ≪본조사략(本朝史略)≫에 5가야의 명칭이 다른 것은 각각 금관가야(金官伽倻)와 대가야(大伽倻)가 중심이었던 시기의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311~313쪽).
註) 360
가리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었던 현의 이름으로, 신라 때는 일리군(一利郡)이었다가 경덕왕 때 성산군(星山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태조 때 가리현이 되었고 현종 때 경산부(京山府)에 소속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8 성주목(星州牧)) 성산군은 성산가야(碧珍伽耶)의 땅이었으므로 가리현을 고령가야(古寧伽耶)에 비정한 것은 ≪사략(史略)≫ 저자의 잘못으로 보기도 하고, 고령가야가 상주군 함창에서 고령군 성산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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