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차주와 그 속현
분차주(分嵯州)註 967는 본래 파지성(波知城)註 968으로서註 969 4현(縣). 귀단현(貴旦縣)註 970은 본래 구사진혜(仇斯珍兮)註 971이다. 수원현(首原縣)註 972은 본래 매성평(買省坪)이다. 고서현(皐西縣)註 973은 본래 추자혜(秋子兮)이다. 군지현(軍支縣).註 974
분차주(分嵯州): 당나라가 백제의 옛 땅에 설치하려던 도독부(都督府,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소속된 7주의 하나이다. 분차주는 주치인 군지현(軍支縣, 전남 담양군 금성면)을 포함하여 4현을 영속시켰다. 이 분차주를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분차군(分嵯郡, 전남 순천시 낙안면)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으나, 당나라가 고친 지명이 아니라 본명인 파지성(波知城)과 음운 비교를 하는 것이 마땅하며, 분차군의 위치는 담양・장성 방면과는 거리상 맞지 않는다.
파지성(波知城):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율지현(栗支縣)의 다른 호칭으로서, ‘파지(波知)’는 지명의 음(音)을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이고 ‘율지(栗支)’의 ‘밤 율(栗)’ 자는 훈(訓)을 빌어 쓴 것이다. 또한 뒤에 나오는 군지현(軍支縣)의 본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파지성으로 보고 이를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으로 비정하고 있다(정구복 외, 1997, 441~442쪽). 그러나 이와 달리 김정호가 편찬한 『여도비지(輿圖備志)』 낙안군조의 “낙안군은 본래 파지성(波知城)(혹은 분사(分沙)나 부사(夫沙))인데, 신라 경덕왕 16년에 분령군(分嶺郡)으로, 고려 태조는 낙안군(樂安郡)으로 고쳤다”는 기록을 토대로 파지성이 낙안군의 이칭이고, 현재의 위치는 전남 순천시 낙안면 일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지원구, 2022, 225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분차주(分嵯州)는 …… 파지성(波知城)으로서: 앞에 나오는 신문왕대 147개의 주군현명(본서 권37 지리4 백제) 및 경덕왕대에 신문왕대의 주군현명을 개편한 3주・2소경・38(37)군・103(104)현의 명치과 비교해보면, 백제 당시의 지명 → 문무왕대의 지명 → 신문왕대의 지명 → 경덕왕대의 지명 → 고려 때의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김영심, 1997, 「백제 지방통치체제 연구 –5~7세기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71~172쪽). 파지성(부사)(波知城(夫沙)) → 분차주(分嵯州) → 분차군(分嵯郡) → 분령군(分嶺郡) → 낙안군(樂安郡)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구사진혜(仇斯珍兮): ‘구(仇)’사진혜(斯珍兮)는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구(丘)’사진혜현(斯珍兮縣)(전남 장성군 진원면)의 다른 차자(借字)에 의한 표기이다.
군지현(軍支縣): 당나라 도독부 분차주(分嵯州)의 치소로 추정된다. 군지현은 본래 백제 파지성(波知城) 또는 율지현(栗支縣)이었고, 뒤에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 율원현(栗原縣, 전남 담양군 금성면)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9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 고적조에 금성산고성(金城山古城)이 나오는데, ‘군지’와도 음운 비교가 가능하다. 다만, 군나현(軍那縣)의 옛 이름이 굴나(屈奈)이듯이 군지현(軍支縣)의 옛 이름은 굴지(屈支)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이를 본서 권36 지리지 신라 무주 기양현(祁陽縣, 전남 담양군 창평면)의 백제 때 지명인 굴지현(屈支縣)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末松保和, 1935),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군지현을 낙안군 남쪽 25리에 있었던 군지부곡(軍知部曲)이라고 한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견해가 있다(지원구, 2022, 226쪽).
〈참고문헌〉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末松保和, 1935, 「百濟の故地に置かれた唐の州縣について」, 『靑丘學叢』 19
〈참고문헌〉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末松保和, 1935, 「百濟の故地に置かれた唐の州縣について」, 『靑丘學叢』 19
註) 967
분차주(分嵯州): 당나라가 백제의 옛 땅에 설치하려던 도독부(都督府,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소속된 7주의 하나이다. 분차주는 주치인 군지현(軍支縣, 전남 담양군 금성면)을 포함하여 4현을 영속시켰다. 이 분차주를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분차군(分嵯郡, 전남 순천시 낙안면)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으나, 당나라가 고친 지명이 아니라 본명인 파지성(波知城)과 음운 비교를 하는 것이 마땅하며, 분차군의 위치는 담양・장성 방면과는 거리상 맞지 않는다.
註) 968
파지성(波知城):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율지현(栗支縣)의 다른 호칭으로서, ‘파지(波知)’는 지명의 음(音)을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이고 ‘율지(栗支)’의 ‘밤 율(栗)’ 자는 훈(訓)을 빌어 쓴 것이다. 또한 뒤에 나오는 군지현(軍支縣)의 본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파지성으로 보고 이를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으로 비정하고 있다(정구복 외, 1997, 441~442쪽). 그러나 이와 달리 김정호가 편찬한 『여도비지(輿圖備志)』 낙안군조의 “낙안군은 본래 파지성(波知城)(혹은 분사(分沙)나 부사(夫沙))인데, 신라 경덕왕 16년에 분령군(分嶺郡)으로, 고려 태조는 낙안군(樂安郡)으로 고쳤다”는 기록을 토대로 파지성이 낙안군의 이칭이고, 현재의 위치는 전남 순천시 낙안면 일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지원구, 2022, 225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註) 969
분차주(分嵯州)는 …… 파지성(波知城)으로서: 앞에 나오는 신문왕대 147개의 주군현명(본서 권37 지리4 백제) 및 경덕왕대에 신문왕대의 주군현명을 개편한 3주・2소경・38(37)군・103(104)현의 명치과 비교해보면, 백제 당시의 지명 → 문무왕대의 지명 → 신문왕대의 지명 → 경덕왕대의 지명 → 고려 때의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김영심, 1997, 「백제 지방통치체제 연구 –5~7세기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71~172쪽). 파지성(부사)(波知城(夫沙)) → 분차주(分嵯州) → 분차군(分嵯郡) → 분령군(分嶺郡) → 낙안군(樂安郡)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註) 970
註) 971
구사진혜(仇斯珍兮): ‘구(仇)’사진혜(斯珍兮)는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구(丘)’사진혜현(斯珍兮縣)(전남 장성군 진원면)의 다른 차자(借字)에 의한 표기이다.
註) 972
註) 973
註) 974
군지현(軍支縣): 당나라 도독부 분차주(分嵯州)의 치소로 추정된다. 군지현은 본래 백제 파지성(波知城) 또는 율지현(栗支縣)이었고, 뒤에 신라 무주 추성군(秋成郡) 율원현(栗原縣, 전남 담양군 금성면)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9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 고적조에 금성산고성(金城山古城)이 나오는데, ‘군지’와도 음운 비교가 가능하다. 다만, 군나현(軍那縣)의 옛 이름이 굴나(屈奈)이듯이 군지현(軍支縣)의 옛 이름은 굴지(屈支)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이를 본서 권36 지리지 신라 무주 기양현(祁陽縣, 전남 담양군 창평면)의 백제 때 지명인 굴지현(屈支縣)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末松保和, 1935),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군지현을 낙안군 남쪽 25리에 있었던 군지부곡(軍知部曲)이라고 한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견해가 있다(지원구, 2022, 226쪽).
〈참고문헌〉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末松保和, 1935, 「百濟の故地に置かれた唐の州縣について」, 『靑丘學叢』 19
〈참고문헌〉
지원구, 2022, 『백제 5방성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末松保和, 1935, 「百濟の故地に置かれた唐の州縣について」, 『靑丘學叢』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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