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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안라가 신라와 통모하는 것을 꾸짖음

가을 7월에 백제는 안라일본부(安羅日本府)주 001
번역주 001)
『日本書紀』 흠명천황 2년 하4월 任那日本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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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신라가 통모한다는 말을 듣고 전부(前部) 나솔(奈率) 비리막고(鼻利莫古) 주 002
번역주 002)
前部는 백제의 5部 가운데 하나이다. 奈率은 관위 16계 가운데 제6위에 해당한다. 鼻利는 백제의 복성이고, 莫古는 이름이다. 흠명천황 4년(543) 12월조에는 德率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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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솔 선문(宣文) 주 003
번역주 003)
『日本書紀』 흠명천황 8년(547) 4월조에는 前部德率眞慕宣文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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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中部) 나솔 목리미순(木刕眯淳) 주 004
번역주 004)
『日本書紀』 흠명천황 8년 4월조에는 德率木刕眯淳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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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신 나솔 미마사(紀臣奈率彌麻沙) 주 005
번역주 005)
흠명천황 5년 2월, 同 3월, 11월조에도 보인다. 분주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흠명기에는 倭人과 韓人여자 사이에서 태어나 백제의 관료가 되어 외교활동에 종사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 이들을 학계에서는 ‘倭系百濟官僚’라 부르고 있다. 기존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왜계백제관료로는 紀臣奈率 弥麻沙, 物部奈率 用歌多, 許勢奈率 哥麻, 物部奈率哥非, 上部奈率 科野新羅, 上部德率科野次酒, 上部奈率 物部烏, 物部施德麻哿牟 등이 있다. 이들은 백제관등과 함께 고대 일본의 氏姓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왜국의 紀, 許勢, 物部, 科野氏 출신으로 백제의 관료가 되어 외교 분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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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신 나솔은 아마 기신(紀臣)이 한(韓)의 부인을 얻어 낳았을 것이다. 백제에 머물러 나솔이 된 사람이다. 그 아버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른 경우도 모두 이에 준한다.] 등을 안라에 보내 신라에 간 임나집사(任那執事)주 006
번역주 006)
『日本書紀』에 의하면 임나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일본부의 관인과 협의하던 任那諸國의 대표자들로 이해된다. 즉 흠명천황 2년 4월과 同 5년 11월조 등에 보이는 任那諸國의 旱岐 등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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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소환하여 임나를 세우는 것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따로 안라의 일본부의 하내직(河內直) 주 007
번역주 007)
이름은 알 수 없다. 河內直氏는 『新撰姓氏錄』 河內諸蕃에 의하면 백제계 도래집단(河內連. 出自百濟國都慕王男陰太貴首王也)으로 河內國 河內郡(현재 東大阪市와 八尾市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日本書紀』 흠명기에는 日本府 관련 인물들에 대해서 백제가 대화정권에게 원래의 본거지로 송환해 줄 것을 몇 차례에 걸쳐 요구했는데, 그 중에도 河內直은 移那斯·麻都와 함께 송환이 거론되고 있는 핵심인물이다. 그런데 河內直氏의 출자에 대해서는 선조전승의 혼란과 『日本書紀』에서 반백제적인 행동 등에 주목하여 가야로부터 이주한 씨족으로 보기도 한다. 나아가 백제와 인접해 있던 서부가야의 소국이 백제에 패한 뒤에 일본열도(특히 河內지방)로 이주한 뒤 河內直이 되고, 大和政權에 의하여 하내지역이 통합된 이후에는 다시 安羅에 파견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흠명 5년 2월조에 하내직의 선조인 나간타갑배, 가랍직기갑배 등의 인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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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라와 통모하고 있는 것을 심하게 꾸짖었다[『백제본기(百濟本記)』에서는 “가부직비직(加不至費直) 주 008
번역주 008)
河內直이다. 加不至(카우치)는 河內(카와치)와 음이 통하고, 費直은 直의 옛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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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현이나사(阿賢移那斯) 주 009
번역주 009)
佐魯麻都와 함께 일본부의 실권을 잡고 있었던 인물로 나온다. 阿賢은 칭호로 추측되며, 移那斯가 이름이다. 『日本書紀』 흠명천황 5년(544) 3월조에서는 聖明王이 그를 佐魯麻都와 함께 친신라파로 보고 천황에게 日本府에서 추방하기를 요청한 바 있다. 同 10년 하6월조에는 延那斯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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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마도(佐魯麻都) 주 010
번역주 010)
佐魯는 칭호로 추측되며 麻都는 이름이다. 좌로를 城長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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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다.”라고 말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 번역주 001)
    『日本書紀』 흠명천황 2년 하4월 任那日本府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02)
    前部는 백제의 5部 가운데 하나이다. 奈率은 관위 16계 가운데 제6위에 해당한다. 鼻利는 백제의 복성이고, 莫古는 이름이다. 흠명천황 4년(543) 12월조에는 德率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日本書紀』 흠명천황 8년(547) 4월조에는 前部德率眞慕宣文으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日本書紀』 흠명천황 8년 4월조에는 德率木刕眯淳으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흠명천황 5년 2월, 同 3월, 11월조에도 보인다. 분주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흠명기에는 倭人과 韓人여자 사이에서 태어나 백제의 관료가 되어 외교활동에 종사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 이들을 학계에서는 ‘倭系百濟官僚’라 부르고 있다. 기존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왜계백제관료로는 紀臣奈率 弥麻沙, 物部奈率 用歌多, 許勢奈率 哥麻, 物部奈率哥非, 上部奈率 科野新羅, 上部德率科野次酒, 上部奈率 物部烏, 物部施德麻哿牟 등이 있다. 이들은 백제관등과 함께 고대 일본의 氏姓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왜국의 紀, 許勢, 物部, 科野氏 출신으로 백제의 관료가 되어 외교 분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日本書紀』에 의하면 임나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일본부의 관인과 협의하던 任那諸國의 대표자들로 이해된다. 즉 흠명천황 2년 4월과 同 5년 11월조 등에 보이는 任那諸國의 旱岐 등이 이에 해당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이름은 알 수 없다. 河內直氏는 『新撰姓氏錄』 河內諸蕃에 의하면 백제계 도래집단(河內連. 出自百濟國都慕王男陰太貴首王也)으로 河內國 河內郡(현재 東大阪市와 八尾市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日本書紀』 흠명기에는 日本府 관련 인물들에 대해서 백제가 대화정권에게 원래의 본거지로 송환해 줄 것을 몇 차례에 걸쳐 요구했는데, 그 중에도 河內直은 移那斯·麻都와 함께 송환이 거론되고 있는 핵심인물이다. 그런데 河內直氏의 출자에 대해서는 선조전승의 혼란과 『日本書紀』에서 반백제적인 행동 등에 주목하여 가야로부터 이주한 씨족으로 보기도 한다. 나아가 백제와 인접해 있던 서부가야의 소국이 백제에 패한 뒤에 일본열도(특히 河內지방)로 이주한 뒤 河內直이 되고, 大和政權에 의하여 하내지역이 통합된 이후에는 다시 安羅에 파견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흠명 5년 2월조에 하내직의 선조인 나간타갑배, 가랍직기갑배 등의 인명이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河內直이다. 加不至(카우치)는 河內(카와치)와 음이 통하고, 費直은 直의 옛 표기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佐魯麻都와 함께 일본부의 실권을 잡고 있었던 인물로 나온다. 阿賢은 칭호로 추측되며, 移那斯가 이름이다. 『日本書紀』 흠명천황 5년(544) 3월조에서는 聖明王이 그를 佐魯麻都와 함께 친신라파로 보고 천황에게 日本府에서 추방하기를 요청한 바 있다. 同 10년 하6월조에는 延那斯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佐魯는 칭호로 추측되며 麻都는 이름이다. 좌로를 城長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비리막고(鼻利莫古), 선문(宣文), 목리미순(木刕眯淳), 미마사(紀臣奈率彌麻沙), 하내직(河內直), 가부직비직(加不至費直), 아현이나사(阿賢移那斯), 좌로마도(佐魯麻都)
서명
『백제본기(百濟本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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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라가 신라와 통모하는 것을 꾸짖음 자료번호 : ns.k_0032_0030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