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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임나의 기능말다간기(己能末多干岐)를 전송하고 임나에 있는 근강모야신은 신라왕과 백제왕을 소집함

같은 달, 사신을 파견하여 기능말다간기를 전송하고, 아울러 임나에 있는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에게 “보고된 바를 조사하고, 서로 의심하고 있는 바를 화해시키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모야신웅천(熊川) 주 001
번역주 001)
경상남도 진해시 웅천동 일대로 생각된다. 웅천 앞의 薺浦는 조선 전기에 왜관이 설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웅천 앞 남산에 웅천왜성이 축조되었다. 웅천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왕래하는 데 편리한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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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물면서[어떤 책에서는 임나의 구사모라(久斯牟羅) 주 002
번역주 002)
현재의 창원과 마산 지역의 고명이었던 屈自郡과 연관시키는 견해가 있다. 합포만을 중심으로 포상팔국의 한 나라인 骨浦國이 있었고, 그 중심이 己叱己利城(현재 城山貝塚으로 추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骨浦國이 후에 卓淳國으로 국명을 바꾼 것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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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물렀다고 하였다.],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왕을 소집하였다. 신라왕 좌리지(佐利遲) 주 003
번역주 003)
法興王의 이름인 原宗 혹은 당시 신라의 중신이었던 哲夫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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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포례(久遲布禮) 주 004
번역주 004)
居柒夫(荒宗)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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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서는 구례이사지우나사마리(久禮爾師知于奈師磨利) 주 005
번역주 005)
한 사람의 인명으로 보고 있으나, 久禮爾師知와 于奈師磨利의 두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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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를 보내고 백제는 은솔(恩率)주 006
번역주 006)
백제의 16관등 중 네 번째 관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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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리(彌縢利)를 보내어 모야신이 있는 곳에 가게 하였으며, 두 왕이 직접 오지 않았다. 모야신은 크게 노하여 두 나라의 사신을 문책하여,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이 정한 도리이다[어떤 책에서는 큰 나무의 끝은 큰 나무로 잇고, 작은 나무의 끝은 작은 나무로 잇는다고 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두 나라의 왕이 직접 와서 천황의 칙명을 받지 않고 함부로 사자를 보내는가. 지금 만일 너희 왕이 몸소 칙명을 들으러 온다고 해도, 내가 칙명을 전하지 않고 반드시 물리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지포례와 은솔 미등리는 두려운 마음을 품고 각자 돌아가 왕에게 알렸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는 다시 상신(上臣)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주 007
번역주 007)
6세기를 대표하는 신라의 장군인 異斯夫를 가리킨다. 伊叱夫禮+智+干岐로 구성되어 있으며, 智는 수장 혹은 존칭으로 사용된 말이다. 干岐는 旱岐 혹은 旱支로도 표기되며 역시 수장을 뜻하는 말이다. 가야 소국의 왕들은 旱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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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대신(大臣)을 상신이라고 한다. 어느 책에서는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이라고 하였다.]를 파견하였으며,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칙명을 듣기를 청하러 왔다. 모야신은 멀리 무장을 갖춘 무리 수천 명을 보고 웅천으로부터 임나의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 주 008
번역주 008)
창원 시내에 위치한 城山貝塚으로 생각된다. 城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성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낮은 독립 구릉으로 방어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久斯牟羅와 동일한 곳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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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들어갔다. 이질부례지다다라원(多多羅原) 주 009
번역주 009)
낙동강 하구 동안의 多大浦, 혹은 낙동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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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물면서 귀복하지 않고 석 달을 기다리면서 번번이 칙명을 듣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칙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질부례지가 거느린 병사들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며 모야신의 종자 하내직마사수어수(河內直馬飼首御狩;카후치노우마카히노오비토미카리)주 010
번역주 010)
『日本書紀』 繼體天皇 24년 9월조에는 河內母樹馬飼首御狩로 보인다. 주 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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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는 곳을 지나갔다. 어수는 다른 사람의 집에 숨어서 구걸하는 병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주먹을 휘두르며 멀리서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걸식하던 자들이 이를 보고 “삼가 석 달이나 기다리며 칙지를 듣기를 고대하였는데, 아직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칙명을 듣고자 하는 사신을 괴롭혔다. 이제 속임수를 써서 상신을 주륙하려고 함을 알겠다.”고 하면서, 본 바를 상신에게 자세히 일렀다. 상신은 네 촌[금관(金官) 주 011
번역주 011)
金官은 아래에 보이는 須那羅(쇠나라)에 대한 訓表記로 보인다. 김해 가라국의 중심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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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벌(背伐) 주 012
번역주 012)
背伐은 背評(能備己富里)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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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다(安多), 위타(委陁) 주 013
번역주 013)
委陁는 和多의 異表記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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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 네 촌이다. 어떤 책에서는 다다라(多多羅), 수나라(須那羅), 화다(和多), 비지(費智)의 네 촌이라고 하였다.]을 초략하여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다다라 등 네 촌이 공격을 받은 것은 모야신의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 번역주 001)
    경상남도 진해시 웅천동 일대로 생각된다. 웅천 앞의 薺浦는 조선 전기에 왜관이 설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웅천 앞 남산에 웅천왜성이 축조되었다. 웅천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왕래하는 데 편리한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현재의 창원과 마산 지역의 고명이었던 屈自郡과 연관시키는 견해가 있다. 합포만을 중심으로 포상팔국의 한 나라인 骨浦國이 있었고, 그 중심이 己叱己利城(현재 城山貝塚으로 추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骨浦國이 후에 卓淳國으로 국명을 바꾼 것으로 보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法興王의 이름인 原宗 혹은 당시 신라의 중신이었던 哲夫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居柒夫(荒宗)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한 사람의 인명으로 보고 있으나, 久禮爾師知와 于奈師磨利의 두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백제의 16관등 중 네 번째 관등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6세기를 대표하는 신라의 장군인 異斯夫를 가리킨다. 伊叱夫禮+智+干岐로 구성되어 있으며, 智는 수장 혹은 존칭으로 사용된 말이다. 干岐는 旱岐 혹은 旱支로도 표기되며 역시 수장을 뜻하는 말이다. 가야 소국의 왕들은 旱岐라고 불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창원 시내에 위치한 城山貝塚으로 생각된다. 城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성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낮은 독립 구릉으로 방어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久斯牟羅와 동일한 곳으로 추정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낙동강 하구 동안의 多大浦, 혹은 낙동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로 생각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日本書紀』 繼體天皇 24년 9월조에는 河內母樹馬飼首御狩로 보인다. 주 23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11)
    金官은 아래에 보이는 須那羅(쇠나라)에 대한 訓表記로 보인다. 김해 가라국의 중심지일 것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2)
    背伐은 背評(能備己富里)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3)
    委陁는 和多의 異表記로 생각된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기능말다간기,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 모야신, 좌리지(佐利遲), 구지포례(久遲布禮), 구례이사지우나사마리(久禮爾師知于奈師磨利), 미등리(彌縢利), 모야신, 모야신, 구지포례, 미등리,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 모야신, 이질부례지, 이질부례지, 모야신, 하내직마사수어수, 어수, 모야신
지명
웅천(熊川), 구사모라(久斯牟羅), 웅천,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 다다라원(多多羅原), 금관(金官), 배벌(背伐), 안다(安多), 위타(委陁), 다다라(多多羅), 수나라(須那羅), 화다(和多), 비지(費智), 다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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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의 기능말다간기(己能末多干岐)를 전송하고 임나에 있는 근강모야신은 신라왕과 백제왕을 소집함 자료번호 : ns.k_0029_017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