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의 기능말다간기(己能末多干岐)를 전송하고 임나에 있는 근강모야신은 신라왕과 백제왕을 소집함
같은 달, 사신을 파견하여 기능말다간기를 전송하고, 아울러 임나에 있는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에게 “보고된 바를 조사하고, 서로 의심하고 있는 바를 화해시키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모야신은 웅천(熊川)
주 001에 머물면서[어떤 책에서는 임나의 구사모라(久斯牟羅)
주 002에 머물렀다고 하였다.],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왕을 소집하였다. 신라왕 좌리지(佐利遲)
주 003는 구지포례(久遲布禮)
주 004[어떤 책에서는 구례이사지우나사마리(久禮爾師知于奈師磨利)
주 005라고 하였다.]를 보내고 백제는 은솔(恩率)주 006
미등리(彌縢利)를 보내어 모야신이 있는 곳에 가게 하였으며, 두 왕이 직접 오지 않았다. 모야신은 크게 노하여 두 나라의 사신을 문책하여,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이 정한 도리이다[어떤 책에서는 큰 나무의 끝은 큰 나무로 잇고, 작은 나무의 끝은 작은 나무로 잇는다고 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두 나라의 왕이 직접 와서 천황의 칙명을 받지 않고 함부로 사자를 보내는가. 지금 만일 너희 왕이 몸소 칙명을 들으러 온다고 해도, 내가 칙명을 전하지 않고 반드시 물리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지포례와 은솔 미등리는 두려운 마음을 품고 각자 돌아가 왕에게 알렸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는 다시 상신(上臣)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주 007[신라는 대신(大臣)을 상신이라고 한다. 어느 책에서는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이라고 하였다.]를 파견하였으며,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칙명을 듣기를 청하러 왔다. 모야신은 멀리 무장을 갖춘 무리 수천 명을 보고 웅천으로부터 임나의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
주 008으로 들어갔다. 이질부례지는 다다라원(多多羅原)
주 009에 머물면서 귀복하지 않고 석 달을 기다리면서 번번이 칙명을 듣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칙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질부례지가 거느린 병사들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며 모야신의 종자 하내직마사수어수(河內直馬飼首御狩;카후치노우마카히노오비토미카리)주 010가 있는 곳을 지나갔다. 어수는 다른 사람의 집에 숨어서 구걸하는 병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주먹을 휘두르며 멀리서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걸식하던 자들이 이를 보고 “삼가 석 달이나 기다리며 칙지를 듣기를 고대하였는데, 아직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칙명을 듣고자 하는 사신을 괴롭혔다. 이제 속임수를 써서 상신을 주륙하려고 함을 알겠다.”고 하면서, 본 바를 상신에게 자세히 일렀다. 상신은 네 촌[금관(金官)
주 011, 배벌(背伐)
주 012, 안다(安多), 위타(委陁)
주 013가 그 네 촌이다. 어떤 책에서는 다다라(多多羅), 수나라(須那羅), 화다(和多), 비지(費智)의 네 촌이라고 하였다.]을 초략하여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다다라 등 네 촌이 공격을 받은 것은 모야신의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
- 번역주 006)
- 번역주 007)
- 번역주 008)
- 번역주 009)
- 번역주 010)
- 번역주 011)
- 번역주 012)
- 번역주 013)
색인어
- 이름
- 기능말다간기,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 모야신, 좌리지(佐利遲), 구지포례(久遲布禮), 구례이사지우나사마리(久禮爾師知于奈師磨利), 미등리(彌縢利), 모야신, 모야신, 구지포례, 미등리,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 모야신, 이질부례지, 이질부례지, 모야신, 하내직마사수어수, 어수, 모야신
- 지명
- 웅천(熊川), 구사모라(久斯牟羅), 웅천,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 다다라원(多多羅原), 금관(金官), 배벌(背伐), 안다(安多), 위타(委陁), 다다라(多多羅), 수나라(須那羅), 화다(和多), 비지(費智), 다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