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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고구려에서의 대란(大亂)

이 해에 고구려에 대란이 있었다. 무릇 싸우다 죽은 자가 2천여 명이었다[『백제본기』에서 “고구려에서 정월 병오에 중부인(中夫人)의 아들주 001
번역주 001)
후문에는 世子로 나오며 고구려 제24대 陽原王(재위:545~559)을 가리킨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平成(陽原王의 諱)은 안원왕 3년(533) 정월에 태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이때 1세라고 하더라도 즉위할 때는 적어도 13세 이상이 된다. 그런데 본조의 『백제본기』에는 8세에 즉위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으므로 『삼국사기』의 내용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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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왕으로 세웠다. 나이가 8살이었다. 박왕(狛王)에게는 3명의 부인이 있었다. 정부인(正夫人)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중부인(中夫人)이 세자(世子)를 낳았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추군(麁群)이었다. 소부인(小夫人)도 아들을 낳았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세군(細群)이었다. 박왕이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세군추군이 각각 부인이 낳은 아들을 즉위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세군 측에서 죽은 자가 2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 번역주 001)
    후문에는 世子로 나오며 고구려 제24대 陽原王(재위:545~559)을 가리킨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平成(陽原王의 諱)은 안원왕 3년(533) 정월에 태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이때 1세라고 하더라도 즉위할 때는 적어도 13세 이상이 된다. 그런데 본조의 『백제본기』에는 8세에 즉위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으므로 『삼국사기』의 내용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추군(麁群), 세군(細群), 세군, 추군, 세군
서명
『백제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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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서의 대란(大亂) 자료번호 : ns.k_0032_008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