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다
(
905년
)
〔천우 2년 을축(905)〕패서 13진을 나누어 정하였다[分定].註 001 평양의 성주장군 검용(黔用)이 항복하였고, 증성(甑城)註 002의 적의(赤衣)·황의(黃衣)〔를 입는〕 도적註 003 명귀(明貴) 등이 귀부하였다.
패서 13진을 나누어 정하였다[分定] : 패서는 예성강 이서 지역으로서 패강진 관할 지역이었다. 13진에 대해서는 패강진에 소속된 14개 군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때 14군현의 행정구역 등의 정비가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패서 지역에 새로운 군진을 설치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서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 한산주조 말 미에는 경덕왕 때 개명되지 않은 12군현이 나오는데, 이것들이 이때 분정된 13진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본서 권제12 신라본기제12 효공왕 2년(898) 7월조의 주석 참조. 패강진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 9 신라본기제9 선덕왕 3년(782) 2월조의 주석 참조.
증성(甑城):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북한 평안남도 증산군) 일대로 추정된다. 『고려사』 권58 지12 지리3 강서현조에는 이악(梨岳)·대구(大垢)·갑악(甲岳)·각묘(角墓)·독촌(禿村)·증산(甑山) 등의 향(鄕)을 합쳐서 강서현으로 하고 평양부(平壤府)의 속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적의(赤衣)·황의(黃衣)〔를 입는〕 도적: 붉은 옷과 누런 옷을 입어 다른 집단과 자신들을 구별하였던 도적이라는 의미이다. 본서 권제11 신라본기제11 진성여왕 10년(896)조에 따르면 붉은색으로 바지를 물들여 스스로를 남들과 구별하여 적고적(赤袴賊)이라고 불리던 도적떼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부류일 것이다.
註) 001
패서 13진을 나누어 정하였다[分定] : 패서는 예성강 이서 지역으로서 패강진 관할 지역이었다. 13진에 대해서는 패강진에 소속된 14개 군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때 14군현의 행정구역 등의 정비가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패서 지역에 새로운 군진을 설치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서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 한산주조 말 미에는 경덕왕 때 개명되지 않은 12군현이 나오는데, 이것들이 이때 분정된 13진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본서 권제12 신라본기제12 효공왕 2년(898) 7월조의 주석 참조. 패강진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 9 신라본기제9 선덕왕 3년(782) 2월조의 주석 참조.
註) 002
증성(甑城):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북한 평안남도 증산군) 일대로 추정된다. 『고려사』 권58 지12 지리3 강서현조에는 이악(梨岳)·대구(大垢)·갑악(甲岳)·각묘(角墓)·독촌(禿村)·증산(甑山) 등의 향(鄕)을 합쳐서 강서현으로 하고 평양부(平壤府)의 속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註) 003
적의(赤衣)·황의(黃衣)〔를 입는〕 도적: 붉은 옷과 누런 옷을 입어 다른 집단과 자신들을 구별하였던 도적이라는 의미이다. 본서 권제11 신라본기제11 진성여왕 10년(896)조에 따르면 붉은색으로 바지를 물들여 스스로를 남들과 구별하여 적고적(赤袴賊)이라고 불리던 도적떼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부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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