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주와 그 속현
대방주(帶方州)註 954는 본래 죽군성(竹軍城)註 955으로서 6현(縣). 지류현(至留縣)註 956은 본래 지류(知留)이다. 군나현(軍那縣)註 957은 본래 굴나(屈奈)註 958이다. 도산현(徒山縣)註 959은 본래 추산(抽山)註 960이다.註 961 반나현(半那縣)註 962은 본래 반나부리(半奈夫里)이다. 죽군현(竹軍縣)註 963은 본래 두힐(豆肸註 964)이다. 포현현(布賢縣)註 965은 본래 파로미(巴老彌)註 966이다.
대방주(帶方州): 당나라가 백제의 옛 땅에 설치하려던 도독부(都督府,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소속된 7주의 하나이다. 대방주는 주치(州治)인 죽군현(竹軍縣, 전남 나주시 다시면)을 포함하여 6현을 영속시켰다. 나주, 함평 방면으로 추정된다(김주성, 2012, 148쪽). 대방주의 주치인 죽군현에 해당하는 7세기 초의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유적에서 ‘두힐사(豆肹舍)’명 토기와 대방주 소속의 현의 명칭인 ‘군나(軍那)’ ‘반나(半那)’ 등의 지명이 기록된 목간이 발견되었다(김성범, 2009, 224~225쪽; 김혜정, 2016, 152쪽). 이를 근거로 도독부 시절 영산강 유역에는 두힐성에 대방주가 설치되었고, 두힐성이 군나현, 반나현 등의 6개의 현을 예하에 두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는 발라군 예하에 두힐현이 있는 신라 통일기의 군현체제와는 달랐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었다(윤선태, 2013, 63쪽)
〈참고문헌〉
김성범, 2009, 「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백제목간과 기타 문자 관련 유물」, 『목간과 문자』 3
김주성, 2012, 「웅진도독부의 지리적 위치와 성격」, 『백제연구』 56
윤선태, 2013, 「신출자료로 본 백제의 방과 군」, 『한국사연구』 163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참고문헌〉
김성범, 2009, 「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백제목간과 기타 문자 관련 유물」, 『목간과 문자』 3
김주성, 2012, 「웅진도독부의 지리적 위치와 성격」, 『백제연구』 56
윤선태, 2013, 「신출자료로 본 백제의 방과 군」, 『한국사연구』 163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죽군성(竹軍城):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백제 때 지명인 두힐현(豆肹縣)의 다른 호칭이다.
지류현(至留縣): 본래의 지명은 지류(知留)였으나,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그 본명인 지류는 도독부 지심주(支潯州) 형이현(平夷縣, 충남 서산시 지곡면)의 본래 지명과 같으나, 거리상 맞지 않는다.
군나현(軍那縣): 본래 백제 굴나(屈奈) 또는 굴내현(屈乃縣)이었고, 뒤에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함풍현(咸豊縣)이 되었다. 지금의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이다(정구복 외, 1997, 440쪽). 7세기 초(610년경)으로 추정되는 나주 다시면 복암리유적에서 출토된 목간12에서 ‘군나(軍那)’라는 묵서가 확인되므로 7세기 초에 ‘굴내(屈乃)’, ‘굴나(屈奈)’만이 아니라 ‘군나(軍那)’라는 지명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김혜정, 2016, 153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굴나(屈奈):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굴내현(屈乃縣, 전남 함평군 함평읍)의 다른 호칭이다.
도산현(徒山縣): 본래 백제때 지명은 추산(抽山)이었다. 도산현(徒山縣)은 본서 권36 지리지 신라 무주 뇌산군(牢山郡)의 백제 때 지명인 도산현(徒山縣, 전남 진도군 군내면)과 지명이 같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음운 비교를 통해 이를 진도 방면으로 보았고, 이를 따른 견해도 있다(末松保和, 1935, 「百濟の故地に置かれた唐の州縣について」, 『靑丘學叢』19).
추산(抽山):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도산현(徒山縣, 전남 진도군 군내면)의 다른 호칭이다.
도산현은 …… 추산이다: 앞에 나오는 신문왕대 147개의 주군현명(본서 권37 지리4 백제) 및 경덕왕대에 신문왕대의 주군현명을 개편한 3주・2소경・38(37)군・103(104)현의 명치과 비교해보면, 백제 당시의 지명 → 문무왕대의 지명 → 신문왕대의 지명 → 경덕왕대의 지명 → 고려 때의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김영심, 1997, 「백제 지방통치체제 연구 –5~7세기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71~172쪽). 추산(원산)(抽山(遠山) → 도산현(徒山縣) → 뇌산군(牢山郡) → 가흥현(嘉興縣)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죽군현(竹軍縣): 당나라 도독부 대방주(帶方州)의 치소로 추정된다. 죽군현은 본래 백제 두힐현(豆肹縣)이고, 뒤에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 전남 나주시 다시면)이 되었다. 죽군현을 고흥군 두원면(豆原面)에 비정한 견해도 있으나(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572쪽), 이는 잘못이다. 죽군현의 본래 지명인 두힐현(豆肹縣)은 현재의 나주시 다시면과 고흥군 두원면 두 군데가 있는데, 대방주 6현의 지역이 모두 나주・함평 방면이므로, 여기서의 두힐은 그에 가까운 나주시 다시면의 두힐로 보아야 한다.
파로미(巴老彌):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발라군(發羅郡, 전남 나주시)의 다른 호칭이다.
註) 954
대방주(帶方州): 당나라가 백제의 옛 땅에 설치하려던 도독부(都督府,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소속된 7주의 하나이다. 대방주는 주치(州治)인 죽군현(竹軍縣, 전남 나주시 다시면)을 포함하여 6현을 영속시켰다. 나주, 함평 방면으로 추정된다(김주성, 2012, 148쪽). 대방주의 주치인 죽군현에 해당하는 7세기 초의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유적에서 ‘두힐사(豆肹舍)’명 토기와 대방주 소속의 현의 명칭인 ‘군나(軍那)’ ‘반나(半那)’ 등의 지명이 기록된 목간이 발견되었다(김성범, 2009, 224~225쪽; 김혜정, 2016, 152쪽). 이를 근거로 도독부 시절 영산강 유역에는 두힐성에 대방주가 설치되었고, 두힐성이 군나현, 반나현 등의 6개의 현을 예하에 두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는 발라군 예하에 두힐현이 있는 신라 통일기의 군현체제와는 달랐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었다(윤선태, 2013, 63쪽)
〈참고문헌〉
김성범, 2009, 「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백제목간과 기타 문자 관련 유물」, 『목간과 문자』 3
김주성, 2012, 「웅진도독부의 지리적 위치와 성격」, 『백제연구』 56
윤선태, 2013, 「신출자료로 본 백제의 방과 군」, 『한국사연구』 163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참고문헌〉
김성범, 2009, 「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백제목간과 기타 문자 관련 유물」, 『목간과 문자』 3
김주성, 2012, 「웅진도독부의 지리적 위치와 성격」, 『백제연구』 56
윤선태, 2013, 「신출자료로 본 백제의 방과 군」, 『한국사연구』 163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註) 955
죽군성(竹軍城):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백제 때 지명인 두힐현(豆肹縣)의 다른 호칭이다.
註) 956
지류현(至留縣): 본래의 지명은 지류(知留)였으나,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그 본명인 지류는 도독부 지심주(支潯州) 형이현(平夷縣, 충남 서산시 지곡면)의 본래 지명과 같으나, 거리상 맞지 않는다.
註) 957
군나현(軍那縣): 본래 백제 굴나(屈奈) 또는 굴내현(屈乃縣)이었고, 뒤에 신라 무주 무안군(務安郡) 함풍현(咸豊縣)이 되었다. 지금의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이다(정구복 외, 1997, 440쪽). 7세기 초(610년경)으로 추정되는 나주 다시면 복암리유적에서 출토된 목간12에서 ‘군나(軍那)’라는 묵서가 확인되므로 7세기 초에 ‘굴내(屈乃)’, ‘굴나(屈奈)’만이 아니라 ‘군나(軍那)’라는 지명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김혜정, 2016, 153쪽).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혜정, 2016,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문화재』 49-2
註) 958
굴나(屈奈):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굴내현(屈乃縣, 전남 함평군 함평읍)의 다른 호칭이다.
註) 959
도산현(徒山縣): 본래 백제때 지명은 추산(抽山)이었다. 도산현(徒山縣)은 본서 권36 지리지 신라 무주 뇌산군(牢山郡)의 백제 때 지명인 도산현(徒山縣, 전남 진도군 군내면)과 지명이 같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음운 비교를 통해 이를 진도 방면으로 보았고, 이를 따른 견해도 있다(末松保和, 1935, 「百濟の故地に置かれた唐の州縣について」, 『靑丘學叢』19).
註) 960
추산(抽山):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도산현(徒山縣, 전남 진도군 군내면)의 다른 호칭이다.
註) 961
도산현은 …… 추산이다: 앞에 나오는 신문왕대 147개의 주군현명(본서 권37 지리4 백제) 및 경덕왕대에 신문왕대의 주군현명을 개편한 3주・2소경・38(37)군・103(104)현의 명치과 비교해보면, 백제 당시의 지명 → 문무왕대의 지명 → 신문왕대의 지명 → 경덕왕대의 지명 → 고려 때의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김영심, 1997, 「백제 지방통치체제 연구 –5~7세기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71~172쪽). 추산(원산)(抽山(遠山) → 도산현(徒山縣) → 뇌산군(牢山郡) → 가흥현(嘉興縣)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註) 962
註) 963
죽군현(竹軍縣): 당나라 도독부 대방주(帶方州)의 치소로 추정된다. 죽군현은 본래 백제 두힐현(豆肹縣)이고, 뒤에 신라 무주 금산군(錦山郡) 회진현(會津縣, 전남 나주시 다시면)이 되었다. 죽군현을 고흥군 두원면(豆原面)에 비정한 견해도 있으나(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572쪽), 이는 잘못이다. 죽군현의 본래 지명인 두힐현(豆肹縣)은 현재의 나주시 다시면과 고흥군 두원면 두 군데가 있는데, 대방주 6현의 지역이 모두 나주・함평 방면이므로, 여기서의 두힐은 그에 가까운 나주시 다시면의 두힐로 보아야 한다.
註) 965
註) 966
파로미(巴老彌): 본서 권36 지리지에 나오는 백제 발라군(發羅郡, 전남 나주시)의 다른 호칭이다.
주제분류
- 정치>행정>군현>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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