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피군
임피군(臨陂郡)註 188은 본래 백제(百濟)의 시산군(屎山郡)註 189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임피군(臨陂郡):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550쪽;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3쪽). 고려에서 현(縣)으로 강등시키고 현령(縣令)을 두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조선에서는 그대로 현으로 삼았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임피현).
함열현(咸悅縣)註 190은 본래 백제(百濟)의 감물아현(甘勿阿縣)註 191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함열현(咸悅縣):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3쪽).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명종 6년(1176)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숙왕 8년(1321)에 용안현(龍安縣)으로 승격되어, 공양왕 3년(1391)에 전주의 속현인 풍저(豐儲)를 받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전주목 함열현). 조선 태종 9년에 용안(龍安, 익산시 용안면)에 합쳐서 안열현(安悅縣)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가 13년에 다시 복구하여 현감(縣監)으로 삼았다. 16년에 다시 두 현으로 만들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용안현 및 함열현).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열현(咸悅縣) 산천(山川)조에 함라산(咸羅山)이 현(縣) 서쪽 2리에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고려·조선시대의 함열현(咸悅縣)의 치소는 현재의 함열읍이 아니라 함라면 면소재지인 함열리 일대에 해당한다.
옥구현(沃溝縣)註 192은 본래 백제(百濟)의 마서량현(馬西良縣)註 193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옥구현(沃溝縣):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3쪽). 고려가 그대로 임피현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옥구현). 조선 태조 6년에 진(鎭)을 두고 병마사겸현사(兵馬使兼縣事)로 삼았으며, 세종 5년에 첨절제사(僉節制使)로 삼았다가 뒤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옥구현).
회미현(澮尾縣)註 194은 본래 백제(百濟)의 부부리현(夫夫里縣)註 195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회미현(澮尾縣):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쪽). 일명 연강(連江)이라고도 하였다. 고려가 그대로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으로 두었다가(『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회미현), 조선 태종 때 옥구현(沃溝縣)에 속하게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옥구현).
註) 188
임피군(臨陂郡):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550쪽; 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3쪽). 고려에서 현(縣)으로 강등시키고 현령(縣令)을 두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조선에서는 그대로 현으로 삼았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임피현).
註) 189
註) 190
함열현(咸悅縣):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3쪽).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명종 6년(1176)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숙왕 8년(1321)에 용안현(龍安縣)으로 승격되어, 공양왕 3년(1391)에 전주의 속현인 풍저(豐儲)를 받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전주목 함열현). 조선 태종 9년에 용안(龍安, 익산시 용안면)에 합쳐서 안열현(安悅縣)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가 13년에 다시 복구하여 현감(縣監)으로 삼았다. 16년에 다시 두 현으로 만들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용안현 및 함열현).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열현(咸悅縣) 산천(山川)조에 함라산(咸羅山)이 현(縣) 서쪽 2리에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고려·조선시대의 함열현(咸悅縣)의 치소는 현재의 함열읍이 아니라 함라면 면소재지인 함열리 일대에 해당한다.
註) 191
註) 192
옥구현(沃溝縣):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3쪽). 고려가 그대로 임피현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옥구현). 조선 태조 6년에 진(鎭)을 두고 병마사겸현사(兵馬使兼縣事)로 삼았으며, 세종 5년에 첨절제사(僉節制使)로 삼았다가 뒤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옥구현).
註) 193
註) 194
회미현(澮尾縣):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4쪽). 일명 연강(連江)이라고도 하였다. 고려가 그대로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으로 두었다가(『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임피현 회미현), 조선 태종 때 옥구현(沃溝縣)에 속하게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전라도 옥구현).
주제분류
- 정치>행정>군현>군
- 정치>행정>군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