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王莽)이 흉노를 공격하고자 오한의 무리를 끌어들이니 오환이 원망을 품음
왕망(王莽)
주 001
각주 001)
이 제위(帝位)를 찬탈한 후 흉노를 공격하고자 하여 12부(部)의 군대를 일으켜주 002동역장(東域將) 엄우(嚴尤)
주 003에게 오환과 정령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대군(代郡)
주 004에 주둔하도록 하고 [오환과 정령 병사들의] 처자를 군현(郡縣)에 인질로 남겨두도록 하였다. 오환 사람들은 [대군의] 풍토(水土)에 적응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주둔하고 쉬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차례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왕망이 그들을 보내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오환은] 스스로 달아나거나 반란을 일으켰고, [원래 살던 곳에] 돌아와서는 약탈하고 도적질하였다. 그래서 여러 군(郡)에서는 그들이 억류해 놓았던 인질들을 모두 다 죽여 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오환 사람들은] 왕망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흉노는 오환의 우두머리[豪帥]주 005를 유인하여 관리[吏]로 삼고 나머지는 [우두머리들을 통해] 고삐에 매어 끌어당기는 것처럼 속하도록 하였다.주 006
王莽(전45~후23; 재위 5~23): 전한시대 魏郡 元城縣 사람으로, 字는 巨君이며, 漢元帝의 皇后 王政君의 조카이다. 黃門郞·射聲校尉를 지냈고 成帝 永始元年(전16)에 新都侯에 봉해졌다. 騎都尉 光祿大夫 給事中이 되어 외척 淳于長을 탄핵하여 정직하다는 명성을 얻었다. 綏和元年(전8)에 大司馬에 임명되었다가 哀帝 즉위 후 外戚 丁氏와 傅氏에 밀려 면직되었다가 哀帝 사후 王政君이 太皇太后로서 臨朝稱制하자 다시 大司馬로 임명하여 平帝를 옹립할 것을 모의하여 安漢公에 제수되었다. 빈민구제와 博士 증원 등으로 민심을 얻었다. 元始 5년(후5)에 平帝 사후 孺子 嬰을 옹립한 후 周公의 예를 본떠 假皇帝라 자칭했다가 初始元年(8)에 자립하여 皇帝가 되고 國號를 ‘新’이라 칭하고, 年號를 始建國이라 하였다. 각종 개혁정책을 실시했으나 실패하였고, 대외정책에도 실패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地皇 4년(23)에 綠林軍이 長安을 점령하자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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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王莽(전45~후23; 재위 5~23): 전한시대 魏郡 元城縣 사람으로, 字는 巨君이며, 漢元帝의 皇后 王政君의 조카이다. 黃門郞·射聲校尉를 지냈고 成帝 永始元年(전16)에 新都侯에 봉해졌다. 騎都尉 光祿大夫 給事中이 되어 외척 淳于長을 탄핵하여 정직하다는 명성을 얻었다. 綏和元年(전8)에 大司馬에 임명되었다가 哀帝 즉위 후 外戚 丁氏와 傅氏에 밀려 면직되었다가 哀帝 사후 王政君이 太皇太后로서 臨朝稱制하자 다시 大司馬로 임명하여 平帝를 옹립할 것을 모의하여 安漢公에 제수되었다. 빈민구제와 博士 증원 등으로 민심을 얻었다. 元始 5년(후5)에 平帝 사후 孺子 嬰을 옹립한 후 周公의 예를 본떠 假皇帝라 자칭했다가 初始元年(8)에 자립하여 皇帝가 되고 國號를 ‘新’이라 칭하고, 年號를 始建國이라 하였다. 각종 개혁정책을 실시했으나 실패하였고, 대외정책에도 실패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地皇 4년(23)에 綠林軍이 長安을 점령하자 살해되었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색인어
- 이름
- 왕망(王莽), 엄우(嚴尤), 왕망, 왕망
- 지명
- 대군(代郡), 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