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보성군(寶城郡)註 271은 본래 백제(百濟)의 복홀군(伏忽郡)註 272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넷이다.
보성군(寶城郡): 현재의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고려 성종 14년(995)에 패주자사(貝州刺史)로 고쳤으며, 뒤에 다시 보성군(寶城郡)으로 고쳤다. 별호는 산양(山陽)이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보성군). 조선에서도 그대로 따랐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40 전라도 보성군)
대로현(代勞縣)註 273은 본래 백제(百濟)의 마사량현(馬斯良縣)註 274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회령현(會寧縣)註 275이다.
회령현(會寧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대로현(代勞縣, 보성군 회천면)의 고려 때 이름. 대로현(代勞縣)을 고려가 회령현(會寧縣)으로 이름을 고쳐 장흥부(長興府)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회령현). 현재의 보성군 회천면 회령리 일대에 해당한다.
계수현(季水縣)註 276은 본래 백제(百濟)의 계천현(季川縣)註 277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장택현(長澤縣)註 278이다.
장택현(長澤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계수현(季水縣, 장흥군 장평면)의 고려 때 이름. 계수현(季水縣)을 고려에 와서 장택현(長澤縣)으로 이름을 고쳐 장흥부(長興府)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장택현). 장택폐현(長澤廢縣)은 장흥부(長興府) 동북쪽 41리에 있었다.
오아현(烏兒縣)註 279은 본래 백제(百濟)의 오차현(烏次縣)註 280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정안현(定安縣)註 281이다.
정안현(定安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오아현(烏兒縣, 장흥군 대덕읍)의 고려 때 이름. 오아현(烏兒縣)을 고려에 와서 정안현(定安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인종 때 장흥(長興)으로 이름을 고치고 부(府)로 승격시켰다. 원종 6년(1265)에 회주(懷州)로 이름을 고치고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충선왕 2년(1310)에 다시 장흥부(長興府)로 강등시켰으며, 뒤에 왜구가 침략해오자 내륙으로 옮겼다. 별호는 정주(定州)이며 관산(冠山)으로도 불린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조선 태조 원년에 수령현(遂寧縣)의 중령산(中寧山)에 축성을 하고 치소로 삼았다. 태종 13년에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이듬해에 치소를 수령현의 옛터로 옮겼다. 세조 때에 진(鎭)을 설치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7 전라도 장흥도호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는 옛 정안현(定安縣)의 위치를 알기 어려우나, 『대동여지도』의 표기에 따르면 옛 장흥(長興)은 천관산(天冠山) 남쪽의 대덕읍(大德邑)에 해당한다.
마읍현(馬邑縣)註 282은 본래 백제(百濟)의 고마미지현(古馬弥知縣)註 283註 284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수령현(遂寧縣)註 285이다.
고마미지현(古馬弥知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마읍현(馬邑縣, 장흥군 장흥읍)의 백제 때 이름. 본서 권37 지리지 백제조에는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으로 나오고, 권10 신라본기 헌덕왕 17년(825)조에는 마미지현(馬彌知縣)이라고 하였다. 장흥읍 동동리(東洞里)로 추정하기도 한다(井上秀雄 譯註, 1980, 『三國史記1』, 平凡社, 340쪽)
수령현(遂寧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마읍현(馬邑縣, 장흥군 장흥읍)의 고려 때 이름. 마읍현(馬邑縣)을 고려가 수령현(遂寧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뒤에 장흥부(長興府)에 내속시켰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수령현). 조선 때 부의 치소를 수령(遂寧)으로 옮겼다.
註) 271
보성군(寶城郡): 현재의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정구복 외, 1997,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 고려 성종 14년(995)에 패주자사(貝州刺史)로 고쳤으며, 뒤에 다시 보성군(寶城郡)으로 고쳤다. 별호는 산양(山陽)이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보성군). 조선에서도 그대로 따랐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40 전라도 보성군)
註) 274
註) 275
회령현(會寧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대로현(代勞縣, 보성군 회천면)의 고려 때 이름. 대로현(代勞縣)을 고려가 회령현(會寧縣)으로 이름을 고쳐 장흥부(長興府)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회령현). 현재의 보성군 회천면 회령리 일대에 해당한다.
註) 278
장택현(長澤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계수현(季水縣, 장흥군 장평면)의 고려 때 이름. 계수현(季水縣)을 고려에 와서 장택현(長澤縣)으로 이름을 고쳐 장흥부(長興府)의 속현으로 삼았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장택현). 장택폐현(長澤廢縣)은 장흥부(長興府) 동북쪽 41리에 있었다.
註) 281
정안현(定安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오아현(烏兒縣, 장흥군 대덕읍)의 고려 때 이름. 오아현(烏兒縣)을 고려에 와서 정안현(定安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인종 때 장흥(長興)으로 이름을 고치고 부(府)로 승격시켰다. 원종 6년(1265)에 회주(懷州)로 이름을 고치고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충선왕 2년(1310)에 다시 장흥부(長興府)로 강등시켰으며, 뒤에 왜구가 침략해오자 내륙으로 옮겼다. 별호는 정주(定州)이며 관산(冠山)으로도 불린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조선 태조 원년에 수령현(遂寧縣)의 중령산(中寧山)에 축성을 하고 치소로 삼았다. 태종 13년에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이듬해에 치소를 수령현의 옛터로 옮겼다. 세조 때에 진(鎭)을 설치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7 전라도 장흥도호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는 옛 정안현(定安縣)의 위치를 알기 어려우나, 『대동여지도』의 표기에 따르면 옛 장흥(長興)은 천관산(天冠山) 남쪽의 대덕읍(大德邑)에 해당한다.
註) 283
註) 284
고마미지현(古馬弥知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마읍현(馬邑縣, 장흥군 장흥읍)의 백제 때 이름. 본서 권37 지리지 백제조에는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으로 나오고, 권10 신라본기 헌덕왕 17년(825)조에는 마미지현(馬彌知縣)이라고 하였다. 장흥읍 동동리(東洞里)로 추정하기도 한다(井上秀雄 譯註, 1980, 『三國史記1』, 平凡社, 340쪽)
註) 285
수령현(遂寧縣): 신라 무주 보성군(寶城郡) 마읍현(馬邑縣, 장흥군 장흥읍)의 고려 때 이름. 마읍현(馬邑縣)을 고려가 수령현(遂寧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뒤에 장흥부(長興府)에 내속시켰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장흥부 수령현). 조선 때 부의 치소를 수령(遂寧)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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