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주의 주·군·현·성
우수주(牛首州)註 227수(首)를 두(頭)로 쓰기도 한다. 수차약(首次若)註 228이라고도 하고 오근내(烏根乃)註 229라고도 한다. , 벌력천현(伐力川縣)註 230, 횡천현(橫川縣)註 231어사매(於斯買)註 232라고도 한다. , 지현현(砥註 233峴縣)註 234, 평원군(平註 235原郡)註 236북원(北原)이다. , 나토군(奈吐郡)註 237대제(大提)註 238라고도 한다. , 사열이현(沙熱伊縣)註 239, 적산현(赤山縣)註 240, 근평군(斤平郡)註 241병평(並平)註 242이라고도 한다. , 심천현(深川縣)註 243복사매(伏斯買)註 244라고도 한다. , 양구군(楊口郡)註 245요은홀차(要隱忽次)註 246라고도 한다. , 저족현(猪足縣)註 247오사회(烏斯迴)註 248라고도 한다. , 옥기현(玉註 249岐縣)註 250개차정(皆次丁)註 251이라고도 한다. , 삼현현(三峴縣)註 252밀파혜(密波兮)註 253라고도 한다. , 성천군(狌川郡)註 254야시매(也尸買)註 255라고도 한다. , 대양관군(大楊管郡)註 256마근압(馬斤押)註 257이라고도 한다. , 매곡현(買谷縣)註 258, 고사마현(古斯馬縣)註 259, 급벌산군(及伐山郡)註 260, 이벌지현(伊伐支縣)註 261자벌지(自伐支)註 262라고도 한다. , 수성천현(藪狌川縣)註 263수천(藪川)이라고도 한다. , 문현현(文峴縣)註 264근시파혜(斤尸波兮)註 265라고도 한다. , 모성군(母城郡)註 266야차홀(也次忽)註 267이라고도 한다. , 동사홀(冬斯忽)註 268, 수입현(水入縣)註 269매이현(買伊縣)註 270이라고도 한다. , 객련군(客連郡)註 271객(客)을 각(各)으로 쓰기도 한다. 가혜아(加兮牙)註 272라고도 한다. , 적목현(赤木縣)註 273사비근을(沙非斤乙)註 274이라고도 한다. , 관술현(管述縣)註 275, 저란현현(猪闌峴縣)註 276오생파의(烏生波衣)註 277라고도 하며 저수(猪守)註 278라고도 한다. , 천성군(淺城郡)註 279비열홀(比烈忽)註 280이라고도 한다. , 경곡현(𢈴谷縣)註 281수을탄(首乙呑)註 282이라고도 한다. , 청달현(菁達縣)註 283석달(昔達)註 284이라고도 한다. , 살한현(薩寒縣)註 285, 가지달현(加支達縣)註 286, 어지탄(於支呑)註 287익곡(翼谷)註 288이라고도 한다. , 매시달(買尸達)註 289, 천정군(泉井郡)註 290어을매(於乙買)註 291라고도 한다. , 부사달현(夫斯達縣)註 292, 동허현(東墟縣)註 293가지근(加知斤)註 294이라고도 한다. , 나생군(奈生郡)註 295, 을아단현(乙阿旦註 296縣)註 297, 우오현(于烏縣)註 298욱오(郁烏)註 299라고도 한다. , 주연현(酒淵縣)註 300.
우수주(牛首州) : 통일신라의 삭주(朔州)에 상응하는 고구려 지명이라고 한다. 우수주의 ‘수(首)’는 ‘두(頭)’로 쓰기도 하였고, 수차약(首次若)이나 오근내(烏根乃)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다만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신라가 선덕왕 6년(637)에 우수주를 설치하였고, 경덕왕 시기에 ‘삭주’로 이름을 고친 것으로 나온다. 이로 보아 이 기사의 ‘우수주’는 신라의 광역행정구역인 ‘우수주’를 염두에 둔 명칭으로 보인다. 본문의 고구려지 우수주의 저본 자료는 신문왕 9년 무렵의 지방제도 정비 자료를 바탕으로 신문왕 9년에서 성덕왕대 전반 사이에 찬술되었다고 파악된다(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194~1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의 ‘삭주’ 항목 참조.
벌력천현(伐力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녹효현(綠驍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일대로 비정된다. 통일신라 10정 군단 가운데 하나인 벌력천정(伐力川停)을 이곳에 두었다(본서 권40 직관지하 무관조).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녹효현’ 항목 참조.
횡천현(橫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황천현(潢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황천현’ 항목 참조.
지현현(砥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지평현(砥平懸)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지평면(砥平面) 일대로 비정된다. 지현(砥峴)의 ‘현(峴)’과 지평(砥平)의 ‘평(平)’이 상응한다고 보아 지평의 ‘평’을 현(峴) 즉 고개를 뜻하는 ‘평사(平史)’를 약칭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여호규, 2012, 「4세기 후반-5세기 초엽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 변천」, 『역사와 현실』 84, 181~182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지평현’ 항목 참조.
평원군(平原郡) :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을 두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일대로 비정된다. 평원군의 ‘원(原)’자가 평탄한 평야를 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고구려가 국원성처럼 평지거점을 축조하였을 가능성을 상정하기도 한다(여호규, 2020, 「고구려의 한반도 중부지역 지배와 한성 별도의 건설」, 『한국고대사연구』 99, 254~255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북원경’ 항목 참조.
나토군(奈吐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나제군(奈隄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대제(大堤)’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강원도 제천시 일대로 비정된다. 나토의 ‘토(吐)’는 나제의 ‘제(隄)’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현대 국어의 ‘둑’을 뜻하는 ‘도’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502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나제군’ 항목 참조.
사열이현(沙熱伊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淸風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일대로 비정된다. 사열이현의 ‘사열(沙熱)’은 청풍현의 ‘청(淸)’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중세 국어의 ‘서늘’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271~272쪽 및 515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청풍현’ 항목 참조.
적산현(赤山縣) : 고구려 시기의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단양읍(丹陽邑) 일대로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지명 개칭시에도 적산현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였다고 한다. 1978년에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에 ‘적성(赤城)’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적산현’ 항목 참조.
근평군(斤平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가평군(嘉平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병평(並平)으로 일컬었다.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가평군’ 항목 참조.
심천현(深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준수현(浚水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복사매(伏斯買)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加平郡) 하면(下面) 현리(縣里)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준수현’ 항목 참조.
양구군(楊口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양록군(楊麓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일대로 비정된다. 요은홀차(要隱忽次)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양록군’ 항목 참조.
저족현(猪足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희제현(狶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7 지리4 고구려조에서는 오사회(烏斯迴)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서에는 경덕왕대보다 늦은 시기인 진성왕 9년(895년) 8월조와 열전10 궁예전 등에 희제현으로 고치기 이전의 ‘저족(猪足)’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저족현’이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본서의 기사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희제현’ 항목 참조.
옥기현(玉岐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치도현(馳道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서화면(瑞和面) 일대로 비정된다. 개차정(皆次丁)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옥기현의 옥(玉)자는 정덕본(正德本)에는 ‘王’으로 되어있으나, 일반적으로 『고려사』 지리지3 서화현(瑞禾縣)조에 근거하여 ‘옥(玉)’자로 교감하여 해석한다(이병도, 1977: 2012, 590쪽; 정구복 외, 1997d, 277쪽). 그런데 본서 지리2 한주조의 개백현(皆伯縣)이 지리4 고구려조에는 ‘왕봉현(王逢縣)’으로 나오는데, ‘개(皆)’가 ‘왕(王)’에 상응하는 고유어일 가능성을 시사한다(도수희, 2005, 506쪽). 이에 따르면 정덕본에 새겨진 것처럼 ‘왕기현’일 가능성도 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치도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병도, 1977, 『國譯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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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삼현현(三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삼령현(三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하고 하는데,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방산면(方山面) 일대로 비정된다. 밀파혜(密波兮)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삼령현’ 항목 참조.
성천군(狌川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낭천군(狼川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화천읍 일대로 비정된다. 야시매(也尸買)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서에는 경덕왕대보다 늦은 시기인 진성왕 9년(895년) 8월조와 열전10 궁예전 등에 낭천군으로 고치기 이전의 ‘성천(狌川)’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성천군’이 고구려 시기의 지명이라는 본서의 기사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낭천군’ 항목 참조.
대양관군(大楊管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대양군(大楊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마근압(馬斤押)으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내금강면(內金剛面) 하현리(下縣里: 북한의 강원도 금강군 현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매곡현(買谷縣)과 고사마현(古斯馬縣)을 고구려 시기 대양관군의 영현으로 기재하였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조에는 삭주 나령군(奈靈郡: 경북 영주시)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한편 본서 신라본기10 헌덕왕 17년(825) 가을조에는 우두주 대양관군(大楊管郡)의 황지(黃知) 나마(奈麻)의 처가 한 번에 2남 2녀를 출산하여 조(租) 100석을 하사하였다고 나오는데, 경덕왕 이후에도 종전 지명인 ‘대양관군’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대양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매곡현(買谷縣) : 신라 선곡현(善谷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동부리(東部里) 및 예안면(禮安面) 일대로 비정된다. 상기한 본문에는 대양관군(大楊管郡: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의 영현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조에는 삭주 나령군(奈靈郡: 경북 영주시)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전덕재, 2021, 196~197쪽). 한편 6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 ‘매곡촌(買谷村)이라는 지명이 나온다(윤재석 편, 2022, 277~353쪽). 이로 보아 ‘매곡현’이라는 지명은 고구려가 처음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라가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일대를 장악한 다음 경덕왕 시기에 지명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계속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선곡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고사마현(古斯馬縣) : 신라 옥마현(玉馬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봉화읍 일대로 비정된다. 상기한 본문에는 대양관군(大楊管郡: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의 영현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조에는 삭주 나령군(奈靈郡: 경북 영주시)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옥마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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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급벌산군(及伐山郡) : 신라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順興面) 일대로 비정된다. 〈경주 남산신성비 제9비〉(진평왕 13년, 591년)에 ‘급벌군(伋伐郡)’이라는 지명이 나오며, 예하의 성·촌으로 이동성(伊同城), 생벌(生伐), 동촌(同村), ▨곡촌(▨谷村), 지대▨촌(指大▨村), 백간지촌(伯干支村) 등이 나온다(박방룡, 1994; 김창호, 1996; 주보돈, 2002). 또 6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도 ‘급벌성(及伐城)’이라는 지명이 다수 확인된다(윤재석 편, 2022, 277~353쪽). 이로 보아 고구려가 ‘급벌산군’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신라가 영주 일대를 장악한 다음 경덕왕 시기에 지명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급산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朴方龍, 1994, 「南山新城碑 第9碑에 대한 檢討」, 『美術資料』 53
金昌鎬, 1996, 「南山新城碑 第9碑의 재검토」, 『釜山史學』 30
주보돈, 2002, 「南山新城의 축조와 南山新城碑 제9비」, 『금석문과 신라사』,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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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 2002, 「南山新城의 축조와 南山新城碑 제9비」, 『금석문과 신라사』, 지식산업사
이벌지현(伊伐支縣) : 신라 인풍현(鄰豐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자벌지(自伐支)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順興面)이나 부석면(浮石面) 일대로 비정하는데, 풍기읍 일대일 가능성도 있다. 6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 ‘이벌지촌(伊伐支村)’, ‘이벌지(伊伐支)’, ‘소이벌지(小伊伐支)’ 등의 지명이 다수 확인된다(윤재석 편, 2022, 277~353쪽). 이로 보아 고구려가 ‘이벌지현’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신라가 지금의 영주 일대를 장악한 다음 경덕왕 시기에 지명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충주고구려비〉에 나오는 우벌성(于伐城)을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하여 ‘이벌지현’으로 비정하기도 하는데(손영종, 1985, 30쪽), 많은 연구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임기환, 2000, 424쪽; 김현숙, 2002, 95쪽; 여호규, 2020, 123쪽). 이벌지의 ‘이벌(伊伐)’을 인풍의 ‘인(隣): 이웃’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이블 > 이울 > 이웃’을 변하였다고 파악하기도 한다(도수희, 2005, 511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인풍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손영종, 1985, 「중원고구려비에 대하여」, 『력사과학』 1985-2
임기환, 2000, 「中原高句麗碑를 통해 본 高句麗와 新羅의 關係」, 『高句麗渤海硏究』 10
김현숙, 2002, 「4-6세기경 소백산맥 이동지역의 영역향방」, 『한국고대사연구』 26
여호규, 2020, 「충주고구려비의 단락구성과 건립시기」, 『한국고대사연구』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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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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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규, 2020, 「충주고구려비의 단락구성과 건립시기」, 『한국고대사연구』 98
수성천현(藪狌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수천현(藪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수천(藪川)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안풍현(安豊面) 화천리(化川里: 북한의 강원도 금강군 화천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고구려 시기에 급벌산군(及伐山郡: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의 영현이라고 하지만,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대양군(大楊郡: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일대)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수천현’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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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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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문현현(文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문등현(文登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근시파혜(斤尸波兮)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수입면(水入面) 문등리(文登里: 북한의 강원도 창도군 문등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고구려 시기에 급벌산군(及伐山郡: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의 영현이라고 하지만,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대양군(大楊郡: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일대)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문등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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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모성군(母城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익성군(益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락도 하는데, 야차홀(也次忽)로도 일컬었다고 나온다. 지금의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금성면(金城面: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 김화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익성군’ 항목 참조.
동사홀(冬斯忽)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기성군(岐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창도면(昌道面) 기성리(岐城里: 북한의 강원도 창도군 기성리) 일대로 비정된다. 동사홀의 ‘홀(忽)’은 기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기성군’ 항목 참조.
수입현(水入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통구현(通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매이현(買伊縣)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통구면(通口面) 현리(縣里: 북한의 강원도 창도군 창도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통구현’ 항목 참조.
객련군(客連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연성군(連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각련성군(各連城郡)으로 나온다. 가혜아(加兮牙)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회양면(淮陽面) 읍내리(邑內里: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 회양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연성군’ 항목 참조.
적목현(赤木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단송현(丹松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사비근을(沙非斤乙)로도 일컬었다고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적목진(赤木鎭)으로 나온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난곡면(蘭谷面) 현리(縣里: 북한의 강원도 세포군 현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신라본기7 문무왕 15년(675) 9월조에 따르면 말갈군이 적목성(赤木城)을 포위하여 함락시켰다고 한다. 적목성 전투에 대해 당군이 매소성을 거점으로 주변 지역을 공략한 전투로 이해하기도 하지만(이상훈, 2012, 223~224쪽), 매소성 전투에 패배한 당군이 추가령구조곡 방면으로 퇴각하며 군량 확보나 임시진지 마련을 위하여 추가령 직전에 위치한 적목성 일대를 공격한 전투라고 생각된다(여호규, 2022; 이영수, 2023, 244~247쪽). 적목성 전투는 적목현 곧 단송현이 추가령구조곡 일대의 전략적 요충지임을 잘 보여준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단송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상훈, 2012, 『나당전쟁 연구』, 주류성
여호규, 2022, 「제2장 고대의 연천」, 『연천군지 제2권 연천의 역사』, 연천군
이영수, 2023, 「나당전쟁기 신라 우수주의 군사조직 강화와 운용」, 『한국고대사연구』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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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2023, 「나당전쟁기 신라 우수주의 군사조직 강화와 운용」, 『한국고대사연구』 110
관술현(管述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질운현(軼雲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회양면(淮陽面) 신안중리(新安中里: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 신안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질운현’ 항목 참조.
저란현현(猪闌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희령현(狶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저수현현(猪守峴縣)으로 나오며, 오생파의(烏生波衣)나 저수(猪守)로도 일컬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희령현’ 항목 참조.
천성군(淺城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삭정군(朔庭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안변면(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안변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비열홀군’이 본명으로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삭정군’ 항목 참조.
비열홀(比烈忽) : 신라 삭주 소속 삭정군(朔庭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천성군(淺城郡)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는데,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비열홀군’이 본명으로 나온다. 〈광개토왕릉비〉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비리성(碑利城)으로 일컬었다. 6세기 중반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는데, 진흥왕 17년(556)에 비열주(比列州)를 설치하였고, 561년에 건립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에 ‘비리성(碑利城) 군주(軍主)’가 나온다. 그 뒤 630년대에 고구려가 원산만 일대를 되찾았다가, 666년 연정토(淵淨土)의 투항으로 다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이에 신라가 비열홀정(比列忽停)을 두었다가 673년(문무왕 13)에 파하고 우수정(牛首停)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비열홀’이라는 지명은 주로 신라에서 사용하였다. 비열홀의 ‘홀(忽)’은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삭정군’ 항목 참조.
경곡현(𢈴谷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서곡현(瑞谷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수을탄(首乙呑)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서곡면(瑞谷面: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칠봉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서곡현’ 항목 참조.
청달현(菁達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난산현(蘭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신고산면(新高山面) 용지원리(龍池院里; 북한의 강원도 고산군 룡지원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석달현(昔達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석달이나 청달의 ‘달(達)’은 난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청달현’ 항목 참조.
석달(昔達) : 신라 삭주 삭정군(朔庭郡) 소속 난산현(蘭山縣)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청달현(菁達縣)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석달현(昔達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석달이나 청달의 ‘달(達)’은 난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살한현(薩寒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상음현(霜陰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흡곡면(歙谷面) 상음리(桑陰里: 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상음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상음현’ 항목 참조.
가지달현(加支達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청산현(菁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신모면(新茅面) 문곡리(文谷里: 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문수리) 일대로 비정된다. 가지달의 ‘달(達)’은 청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청산현’ 항목 참조.
어지탄(於支呑)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익계현(翊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신고산면(新高山面) 창평리(昌坪里: 북한의 강원도 고산군 혁창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익곡현(翼谷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수을탄의 ‘탄(呑)’은 경곡의 ‘곡(谷)’에 각각 상응하는 고유어로 ‘두메’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370~388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익계현’ 항목 참조.
익곡(翼谷) : 신라 삭주 삭정군(朔庭郡) 소속 익계현(翊谿縣)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어지탄(於支呑)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익곡현’이 본명으로 나온다.
매시달(買尸達)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산산현(蒜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지금의 함경남도 원산시(元山市) 두산동(斗山洞: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내원산동)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는 천성군(淺城郡: 比列忽郡)의 영현으로 기재되어 있는 반면,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천정군(泉井郡)의 영현으로 나온다. 매시달현이 천정군과 천성군 사이에 위치하였다는 점에서 신라 신문왕 9년 이후에 영속 관계의 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7쪽). 매사달의 ‘달(達)’은 산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산산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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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군(泉井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정천군(井泉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어을매(於乙買)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 덕원면(德源面: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덕원동) 일대로 비정된다. 천정군 일대는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는데, 6세기 중반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630년대에 고구려가 되찾았다. 666년 연정토(淵淨土)가 투항하면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나당전쟁 와중에 다시 당이 차지하였다. 신라가 원산만 일대를 수복한 것은 681년이고, 이때 천정군 지역도 신라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801년에 편찬된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 古今郡國縣道四夷述』의 사례로 보아 경덕왕의 지명 개칭 이후에도 천정군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정천군’ 항목 참조.
부사달현(夫斯達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송산현(松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 북성면(北城面) 송탄리(松灘里: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용탄동) 일대로 비정된다. 부사달의 ‘부사(夫斯)’는 송악의 ‘송(松)’에 상응하는 고유어이며, ‘달(達)’은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334~343쪽 및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송산현’ 항목 참조.
동허현(東墟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유거현(幽居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가지근(可知斤)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함경남도 함경남도 덕원군 부내면 또는 문천군(文川郡) 문천면 부거리(富居里: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부방리) 등으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유거현’ 항목 참조.
나생군(奈生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나성군(奈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영월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나생군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나성군’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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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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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을아단현(乙阿旦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자춘현(子春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영춘면(永春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45 온달전에 나오는 아단성(阿旦城)을 ‘을아단성’으로 보아 온달이 단양 영춘의 온달산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보기도 한다(『여지도서(輿地圖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이도학, 1988: 2006, 371~374쪽; 정구복 외, 1997d, 292쪽). 그렇지만 온달이 전사하였다는 아단성은 백제 이래 서울 동쪽의 아차산에 있었던 성곽으로 온달이 활동하던 6세기 말~7세기 초에는 신라의 북한산성에 해당한다(이병도, 1977: 2012, 736쪽). 실제 본서 권20 고구려본기8 영양왕 14년(603)조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나생군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자춘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병도, 1977, 『國譯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도학, 2006, 『고구려 광개토왕릉비문 연구』, 서경
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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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학, 1988, 「영락6년 광개토왕의 남정과 국원성」, 『손보기박사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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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우오현(于烏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백오현(白烏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욱오(郁烏)’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욱오현(郁烏縣)이 고구려시기의 본래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다.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일대로 비정된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우오현=욱오현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백오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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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오(郁烏) : 신라 명주 나성군(奈城郡) 소속 백오현(白烏縣)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우오현(于烏縣)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욱오현(郁烏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본서 권50 궁예전에는 궁예가 892년(진성왕 6)에 북원의 도적 양길(梁吉)에게 의탁한 다음, 주천(酒泉: 영월군 주천면), 나성(奈城: 영월군 영월읍), 어진(御珍: 울진군 울진읍) 등과 울오(鬱烏)를 항복시킨 다음 명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울오는 ‘욱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욱오라는 명칭이 통일신라 말기까지도 널리 사용된 것이다.
주연현(酒淵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백오현(白烏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주천면(酒泉面) 일대로 비정된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주연현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주천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27
우수주(牛首州) : 통일신라의 삭주(朔州)에 상응하는 고구려 지명이라고 한다. 우수주의 ‘수(首)’는 ‘두(頭)’로 쓰기도 하였고, 수차약(首次若)이나 오근내(烏根乃)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다만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신라가 선덕왕 6년(637)에 우수주를 설치하였고, 경덕왕 시기에 ‘삭주’로 이름을 고친 것으로 나온다. 이로 보아 이 기사의 ‘우수주’는 신라의 광역행정구역인 ‘우수주’를 염두에 둔 명칭으로 보인다. 본문의 고구려지 우수주의 저본 자료는 신문왕 9년 무렵의 지방제도 정비 자료를 바탕으로 신문왕 9년에서 성덕왕대 전반 사이에 찬술되었다고 파악된다(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194~1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의 ‘삭주’ 항목 참조.
註) 230
벌력천현(伐力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녹효현(綠驍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일대로 비정된다. 통일신라 10정 군단 가운데 하나인 벌력천정(伐力川停)을 이곳에 두었다(본서 권40 직관지하 무관조).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녹효현’ 항목 참조.
註) 231
횡천현(橫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황천현(潢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황천현’ 항목 참조.
註) 232
註) 233
註) 234
지현현(砥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지평현(砥平懸)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지평면(砥平面) 일대로 비정된다. 지현(砥峴)의 ‘현(峴)’과 지평(砥平)의 ‘평(平)’이 상응한다고 보아 지평의 ‘평’을 현(峴) 즉 고개를 뜻하는 ‘평사(平史)’를 약칭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여호규, 2012, 「4세기 후반-5세기 초엽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 변천」, 『역사와 현실』 84, 181~182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지평현’ 항목 참조.
註) 236
평원군(平原郡) :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을 두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일대로 비정된다. 평원군의 ‘원(原)’자가 평탄한 평야를 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고구려가 국원성처럼 평지거점을 축조하였을 가능성을 상정하기도 한다(여호규, 2020, 「고구려의 한반도 중부지역 지배와 한성 별도의 건설」, 『한국고대사연구』 99, 254~255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북원경’ 항목 참조.
註) 237
나토군(奈吐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나제군(奈隄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대제(大堤)’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강원도 제천시 일대로 비정된다. 나토의 ‘토(吐)’는 나제의 ‘제(隄)’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현대 국어의 ‘둑’을 뜻하는 ‘도’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502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나제군’ 항목 참조.
註) 238
註) 239
사열이현(沙熱伊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淸風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일대로 비정된다. 사열이현의 ‘사열(沙熱)’은 청풍현의 ‘청(淸)’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중세 국어의 ‘서늘’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271~272쪽 및 515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청풍현’ 항목 참조.
註) 240
적산현(赤山縣) : 고구려 시기의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단양읍(丹陽邑) 일대로 비정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지명 개칭시에도 적산현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였다고 한다. 1978년에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에 ‘적성(赤城)’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적산현’ 항목 참조.
註) 241
근평군(斤平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가평군(嘉平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병평(並平)으로 일컬었다.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가평군’ 항목 참조.
註) 243
심천현(深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준수현(浚水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복사매(伏斯買)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加平郡) 하면(下面) 현리(縣里)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준수현’ 항목 참조.
註) 244
註) 245
양구군(楊口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양록군(楊麓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일대로 비정된다. 요은홀차(要隱忽次)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양록군’ 항목 참조.
註) 246
註) 247
저족현(猪足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희제현(狶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7 지리4 고구려조에서는 오사회(烏斯迴)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서에는 경덕왕대보다 늦은 시기인 진성왕 9년(895년) 8월조와 열전10 궁예전 등에 희제현으로 고치기 이전의 ‘저족(猪足)’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저족현’이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본서의 기사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희제현’ 항목 참조.
註) 248
註) 250
옥기현(玉岐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치도현(馳道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서화면(瑞和面) 일대로 비정된다. 개차정(皆次丁)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옥기현의 옥(玉)자는 정덕본(正德本)에는 ‘王’으로 되어있으나, 일반적으로 『고려사』 지리지3 서화현(瑞禾縣)조에 근거하여 ‘옥(玉)’자로 교감하여 해석한다(이병도, 1977: 2012, 590쪽; 정구복 외, 1997d, 277쪽). 그런데 본서 지리2 한주조의 개백현(皆伯縣)이 지리4 고구려조에는 ‘왕봉현(王逢縣)’으로 나오는데, ‘개(皆)’가 ‘왕(王)’에 상응하는 고유어일 가능성을 시사한다(도수희, 2005, 506쪽). 이에 따르면 정덕본에 새겨진 것처럼 ‘왕기현’일 가능성도 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치도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병도, 1977, 『國譯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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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註) 252
삼현현(三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삼령현(三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하고 하는데,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방산면(方山面) 일대로 비정된다. 밀파혜(密波兮)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삼령현’ 항목 참조.
註) 253
註) 254
성천군(狌川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낭천군(狼川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화천읍 일대로 비정된다. 야시매(也尸買)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서에는 경덕왕대보다 늦은 시기인 진성왕 9년(895년) 8월조와 열전10 궁예전 등에 낭천군으로 고치기 이전의 ‘성천(狌川)’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성천군’이 고구려 시기의 지명이라는 본서의 기사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낭천군’ 항목 참조.
註) 255
註) 256
대양관군(大楊管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대양군(大楊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마근압(馬斤押)으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내금강면(內金剛面) 하현리(下縣里: 북한의 강원도 금강군 현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매곡현(買谷縣)과 고사마현(古斯馬縣)을 고구려 시기 대양관군의 영현으로 기재하였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조에는 삭주 나령군(奈靈郡: 경북 영주시)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한편 본서 신라본기10 헌덕왕 17년(825) 가을조에는 우두주 대양관군(大楊管郡)의 황지(黃知) 나마(奈麻)의 처가 한 번에 2남 2녀를 출산하여 조(租) 100석을 하사하였다고 나오는데, 경덕왕 이후에도 종전 지명인 ‘대양관군’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대양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58
매곡현(買谷縣) : 신라 선곡현(善谷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동부리(東部里) 및 예안면(禮安面) 일대로 비정된다. 상기한 본문에는 대양관군(大楊管郡: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의 영현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조에는 삭주 나령군(奈靈郡: 경북 영주시)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전덕재, 2021, 196~197쪽). 한편 6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 ‘매곡촌(買谷村)이라는 지명이 나온다(윤재석 편, 2022, 277~353쪽). 이로 보아 ‘매곡현’이라는 지명은 고구려가 처음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라가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일대를 장악한 다음 경덕왕 시기에 지명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계속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선곡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註) 259
고사마현(古斯馬縣) : 신라 옥마현(玉馬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봉화읍 일대로 비정된다. 상기한 본문에는 대양관군(大楊管郡: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의 영현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조에는 삭주 나령군(奈靈郡: 경북 영주시)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옥마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60
급벌산군(及伐山郡) : 신라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順興面) 일대로 비정된다. 〈경주 남산신성비 제9비〉(진평왕 13년, 591년)에 ‘급벌군(伋伐郡)’이라는 지명이 나오며, 예하의 성·촌으로 이동성(伊同城), 생벌(生伐), 동촌(同村), ▨곡촌(▨谷村), 지대▨촌(指大▨村), 백간지촌(伯干支村) 등이 나온다(박방룡, 1994; 김창호, 1996; 주보돈, 2002). 또 6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도 ‘급벌성(及伐城)’이라는 지명이 다수 확인된다(윤재석 편, 2022, 277~353쪽). 이로 보아 고구려가 ‘급벌산군’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신라가 영주 일대를 장악한 다음 경덕왕 시기에 지명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급산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朴方龍, 1994, 「南山新城碑 第9碑에 대한 檢討」, 『美術資料』 53
金昌鎬, 1996, 「南山新城碑 第9碑의 재검토」, 『釜山史學』 30
주보돈, 2002, 「南山新城의 축조와 南山新城碑 제9비」, 『금석문과 신라사』, 지식산업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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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鎬, 1996, 「南山新城碑 第9碑의 재검토」, 『釜山史學』 30
주보돈, 2002, 「南山新城의 축조와 南山新城碑 제9비」, 『금석문과 신라사』, 지식산업사
註) 261
이벌지현(伊伐支縣) : 신라 인풍현(鄰豐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자벌지(自伐支)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順興面)이나 부석면(浮石面) 일대로 비정하는데, 풍기읍 일대일 가능성도 있다. 6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 ‘이벌지촌(伊伐支村)’, ‘이벌지(伊伐支)’, ‘소이벌지(小伊伐支)’ 등의 지명이 다수 확인된다(윤재석 편, 2022, 277~353쪽). 이로 보아 고구려가 ‘이벌지현’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신라가 지금의 영주 일대를 장악한 다음 경덕왕 시기에 지명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충주고구려비〉에 나오는 우벌성(于伐城)을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하여 ‘이벌지현’으로 비정하기도 하는데(손영종, 1985, 30쪽), 많은 연구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임기환, 2000, 424쪽; 김현숙, 2002, 95쪽; 여호규, 2020, 123쪽). 이벌지의 ‘이벌(伊伐)’을 인풍의 ‘인(隣): 이웃’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이블 > 이울 > 이웃’을 변하였다고 파악하기도 한다(도수희, 2005, 511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인풍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윤재석 편, 2022, 『한국목간총람』, 주류성
손영종, 1985, 「중원고구려비에 대하여」, 『력사과학』 1985-2
임기환, 2000, 「中原高句麗碑를 통해 본 高句麗와 新羅의 關係」, 『高句麗渤海硏究』 10
김현숙, 2002, 「4-6세기경 소백산맥 이동지역의 영역향방」, 『한국고대사연구』 26
여호규, 2020, 「충주고구려비의 단락구성과 건립시기」, 『한국고대사연구』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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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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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환, 2000, 「中原高句麗碑를 통해 본 高句麗와 新羅의 關係」, 『高句麗渤海硏究』 10
김현숙, 2002, 「4-6세기경 소백산맥 이동지역의 영역향방」, 『한국고대사연구』 26
여호규, 2020, 「충주고구려비의 단락구성과 건립시기」, 『한국고대사연구』 98
註) 263
수성천현(藪狌川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수천현(藪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수천(藪川)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안풍현(安豊面) 화천리(化川里: 북한의 강원도 금강군 화천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고구려 시기에 급벌산군(及伐山郡: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의 영현이라고 하지만,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대양군(大楊郡: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일대)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수천현’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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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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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64
문현현(文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문등현(文登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근시파혜(斤尸波兮)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수입면(水入面) 문등리(文登里: 북한의 강원도 창도군 문등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고구려 시기에 급벌산군(及伐山郡: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의 영현이라고 하지만,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대양군(大楊郡: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일대)의 영현으로 나온다. 지리 위치상 본서 지리4 고구려조 찬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1~52쪽; 전덕재, 2021, 196~197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문등현’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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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265
註) 266
모성군(母城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익성군(益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락도 하는데, 야차홀(也次忽)로도 일컬었다고 나온다. 지금의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금성면(金城面: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 김화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익성군’ 항목 참조.
註) 267
註) 268
동사홀(冬斯忽)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기성군(岐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창도면(昌道面) 기성리(岐城里: 북한의 강원도 창도군 기성리) 일대로 비정된다. 동사홀의 ‘홀(忽)’은 기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기성군’ 항목 참조.
註) 269
수입현(水入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통구현(通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매이현(買伊縣)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통구면(通口面) 현리(縣里: 북한의 강원도 창도군 창도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통구현’ 항목 참조.
註) 270
註) 271
객련군(客連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연성군(連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각련성군(各連城郡)으로 나온다. 가혜아(加兮牙)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회양면(淮陽面) 읍내리(邑內里: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 회양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연성군’ 항목 참조.
註) 273
적목현(赤木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단송현(丹松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사비근을(沙非斤乙)로도 일컬었다고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적목진(赤木鎭)으로 나온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난곡면(蘭谷面) 현리(縣里: 북한의 강원도 세포군 현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신라본기7 문무왕 15년(675) 9월조에 따르면 말갈군이 적목성(赤木城)을 포위하여 함락시켰다고 한다. 적목성 전투에 대해 당군이 매소성을 거점으로 주변 지역을 공략한 전투로 이해하기도 하지만(이상훈, 2012, 223~224쪽), 매소성 전투에 패배한 당군이 추가령구조곡 방면으로 퇴각하며 군량 확보나 임시진지 마련을 위하여 추가령 직전에 위치한 적목성 일대를 공격한 전투라고 생각된다(여호규, 2022; 이영수, 2023, 244~247쪽). 적목성 전투는 적목현 곧 단송현이 추가령구조곡 일대의 전략적 요충지임을 잘 보여준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단송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상훈, 2012, 『나당전쟁 연구』, 주류성
여호규, 2022, 「제2장 고대의 연천」, 『연천군지 제2권 연천의 역사』, 연천군
이영수, 2023, 「나당전쟁기 신라 우수주의 군사조직 강화와 운용」, 『한국고대사연구』 110
〈참고문헌〉
이상훈, 2012, 『나당전쟁 연구』, 주류성
여호규, 2022, 「제2장 고대의 연천」, 『연천군지 제2권 연천의 역사』, 연천군
이영수, 2023, 「나당전쟁기 신라 우수주의 군사조직 강화와 운용」, 『한국고대사연구』 110
註) 274
註) 275
관술현(管述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질운현(軼雲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회양면(淮陽面) 신안중리(新安中里: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 신안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질운현’ 항목 참조.
註) 276
저란현현(猪闌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희령현(狶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저수현현(猪守峴縣)으로 나오며, 오생파의(烏生波衣)나 저수(猪守)로도 일컬었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희령현’ 항목 참조.
註) 277
註) 279
천성군(淺城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삭정군(朔庭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안변면(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안변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비열홀군’이 본명으로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삭정군’ 항목 참조.
註) 280
비열홀(比烈忽) : 신라 삭주 소속 삭정군(朔庭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천성군(淺城郡)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는데,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비열홀군’이 본명으로 나온다. 〈광개토왕릉비〉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비리성(碑利城)으로 일컬었다. 6세기 중반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는데, 진흥왕 17년(556)에 비열주(比列州)를 설치하였고, 561년에 건립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에 ‘비리성(碑利城) 군주(軍主)’가 나온다. 그 뒤 630년대에 고구려가 원산만 일대를 되찾았다가, 666년 연정토(淵淨土)의 투항으로 다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이에 신라가 비열홀정(比列忽停)을 두었다가 673년(문무왕 13)에 파하고 우수정(牛首停)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비열홀’이라는 지명은 주로 신라에서 사용하였다. 비열홀의 ‘홀(忽)’은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삭정군’ 항목 참조.
註) 281
경곡현(𢈴谷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서곡현(瑞谷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수을탄(首乙呑)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서곡면(瑞谷面: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칠봉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서곡현’ 항목 참조.
註) 282
註) 283
청달현(菁達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난산현(蘭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신고산면(新高山面) 용지원리(龍池院里; 북한의 강원도 고산군 룡지원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석달현(昔達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석달이나 청달의 ‘달(達)’은 난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청달현’ 항목 참조.
註) 284
석달(昔達) : 신라 삭주 삭정군(朔庭郡) 소속 난산현(蘭山縣)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청달현(菁達縣)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석달현(昔達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석달이나 청달의 ‘달(達)’은 난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註) 285
살한현(薩寒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상음현(霜陰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흡곡면(歙谷面) 상음리(桑陰里: 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상음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상음현’ 항목 참조.
註) 286
가지달현(加支達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청산현(菁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신모면(新茅面) 문곡리(文谷里: 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문수리) 일대로 비정된다. 가지달의 ‘달(達)’은 청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청산현’ 항목 참조.
註) 287
어지탄(於支呑)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익계현(翊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신고산면(新高山面) 창평리(昌坪里: 북한의 강원도 고산군 혁창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익곡현(翼谷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수을탄의 ‘탄(呑)’은 경곡의 ‘곡(谷)’에 각각 상응하는 고유어로 ‘두메’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370~388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익계현’ 항목 참조.
註) 288
익곡(翼谷) : 신라 삭주 삭정군(朔庭郡) 소속 익계현(翊谿縣)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어지탄(於支呑)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익곡현’이 본명으로 나온다.
註) 289
매시달(買尸達)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산산현(蒜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지금의 함경남도 원산시(元山市) 두산동(斗山洞: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내원산동)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는 천성군(淺城郡: 比列忽郡)의 영현으로 기재되어 있는 반면,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천정군(泉井郡)의 영현으로 나온다. 매시달현이 천정군과 천성군 사이에 위치하였다는 점에서 신라 신문왕 9년 이후에 영속 관계의 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7쪽). 매사달의 ‘달(達)’은 산산의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산산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90
천정군(泉井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정천군(井泉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어을매(於乙買)로도 일컬었다. 지금의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 덕원면(德源面: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덕원동) 일대로 비정된다. 천정군 일대는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는데, 6세기 중반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630년대에 고구려가 되찾았다. 666년 연정토(淵淨土)가 투항하면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나당전쟁 와중에 다시 당이 차지하였다. 신라가 원산만 일대를 수복한 것은 681년이고, 이때 천정군 지역도 신라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801년에 편찬된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 古今郡國縣道四夷述』의 사례로 보아 경덕왕의 지명 개칭 이후에도 천정군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정천군’ 항목 참조.
註) 291
註) 292
부사달현(夫斯達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송산현(松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 북성면(北城面) 송탄리(松灘里: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용탄동) 일대로 비정된다. 부사달의 ‘부사(夫斯)’는 송악의 ‘송(松)’에 상응하는 고유어이며, ‘달(達)’은 ‘산(山)’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334~343쪽 및 498~499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송산현’ 항목 참조.
註) 293
동허현(東墟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유거현(幽居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가지근(可知斤)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함경남도 함경남도 덕원군 부내면 또는 문천군(文川郡) 문천면 부거리(富居里: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부방리) 등으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유거현’ 항목 참조.
註) 295
나생군(奈生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나성군(奈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영월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나생군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나성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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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97
을아단현(乙阿旦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자춘현(子春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영춘면(永春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45 온달전에 나오는 아단성(阿旦城)을 ‘을아단성’으로 보아 온달이 단양 영춘의 온달산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보기도 한다(『여지도서(輿地圖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이도학, 1988: 2006, 371~374쪽; 정구복 외, 1997d, 292쪽). 그렇지만 온달이 전사하였다는 아단성은 백제 이래 서울 동쪽의 아차산에 있었던 성곽으로 온달이 활동하던 6세기 말~7세기 초에는 신라의 북한산성에 해당한다(이병도, 1977: 2012, 736쪽). 실제 본서 권20 고구려본기8 영양왕 14년(603)조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나생군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자춘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병도, 1977, 『國譯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도학, 2006, 『고구려 광개토왕릉비문 연구』, 서경
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이도학, 1988, 「영락6년 광개토왕의 남정과 국원성」, 『손보기박사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지식산업사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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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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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이도학, 1988, 「영락6년 광개토왕의 남정과 국원성」, 『손보기박사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지식산업사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98
우오현(于烏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백오현(白烏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욱오(郁烏)’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욱오현(郁烏縣)이 고구려시기의 본래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다.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일대로 비정된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우오현=욱오현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백오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299
욱오(郁烏) : 신라 명주 나성군(奈城郡) 소속 백오현(白烏縣)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 우오현(于烏縣)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에는 ‘욱오현(郁烏縣)’이 본명으로 나온다. 본서 권50 궁예전에는 궁예가 892년(진성왕 6)에 북원의 도적 양길(梁吉)에게 의탁한 다음, 주천(酒泉: 영월군 주천면), 나성(奈城: 영월군 영월읍), 어진(御珍: 울진군 울진읍) 등과 울오(鬱烏)를 항복시킨 다음 명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울오는 ‘욱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욱오라는 명칭이 통일신라 말기까지도 널리 사용된 것이다.
註) 300
주연현(酒淵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백오현(白烏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주천면(酒泉面) 일대로 비정된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우수주(삭주) 소속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신라 명주조에는 명주의 소속으로 나온다. 이에 주연현이 고구려조의 원전을 정리하던 통일신라 초기에는 우수주에 속하였다가 그 이후 하슬라주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한다(김태식, 1997, 52쪽; 전덕재, 2021, 194~195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주천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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