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주의 주·군·현·성
하슬라주(何瑟羅州)註 301하서량(河西良)註 302이라고도 하고 하서(河西)라고도 한다. , 내매현(乃買縣)註 303, 동토현(東吐縣)註 304, 지산현(支山縣)註 305, 혈산현(穴山縣)註 306, 수성군(䢘城郡)註 307가아홀(加阿忽)註 308이라고도 한다. , 승산현(僧山縣)註 309소물달(所勿達)註 310이라고도 한다. , 익현현(翼峴縣)註 311이문현(伊文縣)註 312이라고도 한다. , 달홀(達忽)註 313, 저수혈현(猪䢘穴縣)註 314오사압(烏斯押)註 315이라고도 한다. , 평진현현(平珍峴縣)註 316평진파의(平珍波衣)註 317라고도 한다. , 도림현(道臨縣)註 318조을포(助乙浦)註 319라고도 한다. , 휴양군(休壤郡)註 320금뇌(金惱)註 321라고도 한다. , 습비곡(習比谷)註 322탄(呑)註 323이라고도 한다. , 토상현(吐上縣)註 324, 기연현(岐淵縣)註 325, 곡포현(鵠浦縣)註 326고의포(古衣浦)註 327라고도 한다. , 죽현현(竹峴縣)註 328나생어(奈註 329生於)註 330라고도 한다. , 만약현(滿若縣)註 331만혜(氵万註 332兮)註 333라고도 한다. , 파리현(波利縣)註 334, 우진야군(于珍也郡)註 335, 파단현(波旦註 336縣)註 337파풍(波豐)註 338이라고도 한다. , 야시홀군(也尸忽郡)註 339, 조람군(助攬郡)註 340재람(才攬)註 341이라고도 한다. , 청이현(靑已註 342縣)註 343, 굴화현(屈火縣)註 344, 이화혜현(伊火兮縣)註 345, 우시군(于尸郡)註 346, 아혜현(阿兮縣)註 347, 실직군(悉直郡)註 348사직(史直)註 349이라고도 한다. , 우곡현(羽谷縣)註 350.
하슬라주(何瑟羅州) : 통일신라의 명주(溟州)에 상응하는 고구려 지명이라고 한다. 하서량(河西良)이나 하서(河西)로도 일컬었고,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에는 하서아(河西阿)로 나온다. 다만 본서에는 하슬라(何瑟羅)가 4세기 말 나물왕 이래 신라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해 이사부(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고 나온다. 반면 고구려가 하슬라주의 치소가 두어진 강릉 지역을 영유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로 보아 이 기사의 ‘하슬라주’는 경덕왕 16년(757)에 ‘명주’로 고치기 이전의 신라 광역행정구역인 ‘하슬라주’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의 고구려지 하슬라주의 저본 자료는 신문왕 9년 무렵의 지방제도 정비 자료를 바탕으로 신문왕 9년에서 성덕왕대 전반 사이에 찬술되었다고 파악된다(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194~199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의 ‘명주’ 항목 참조.
하서량(河西良) : 지금의 경상북도와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 두어졌던 통일신라의 광역행정구역인 명주(溟州)의 고구려 시기 명칭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고구려가 명주의 치소인 지금의 강릉지역을 영유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명주의 다른 이름인 ‘하서(河西)’라는 명칭은 신라본기 권6-10의 문무왕-헌덕왕 시기 및 직관지에 많이 쓰였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의 ‘명주’ 항목 참조.
내매현(乃買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정선현(旌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잉매(仍買)’로 나온다. 지금의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정선읍 일대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정선현’ 항목 참조.
동토현(東吐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속제현(梀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용평면(龍坪面) 속사리(束沙里) 일대로 비정한다. 속토의 ‘토(吐)’는 속제의 ‘제(隄)’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현대 국어의 ‘둑’을 뜻하는 ‘도’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502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속제현’ 항목 참조.
지산현(支山縣) : 본래 고구려 시기의 지명이었고, 신라 경덕왕 16년(757) 지명을 바꿀 때도 그대로 사용핬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江陵市) 연곡면(連谷面) 일대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지산현’ 항목 참조.
혈산현(穴山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동산현(洞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현남면(縣南面) 동산리(銅山里) 일대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동산현’ 항목 참조.
수성군(䢘城郡)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간성읍(杆城邑) 일대로 비정된다. 가아홀(加阿忽)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수성군’ 항목 참조.
가아홀(加阿忽) : 신라 명주 소속 수성군(守城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수성군(䢘城郡)의 다른 이름이다. 『고려사』 지리지3 간성현(杆城縣)조에는 가라홀(加羅忽)로 나온다. 가아홀이나 가라홀의 ‘홀(忽)’은 수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승산현(僧山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동산현(童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인데, 소물달(所勿達)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현내면(縣內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동산현’ 항목 참조.
익현현(翼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익령현(翼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이문현(伊文縣)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양양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익령현’ 항목 참조.
달홀(達忽)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고성군(高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고성읍(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구읍리) 일대로 비정된다. 달홀의 ‘달(達)’은 고성의 ‘고(高)’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하며, ‘홀(忽)’은 ‘성(城)’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본서 신라본기4 진흥왕 29년(568)조에는 비열홀주(比列忽州)를 폐지하고 달홀주(達忽州: 강원도 고성)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신라본기7 문무왕 13년(673) 9월조에는 신라가 당군의 남하에 대비하여 국원성(國原城: 충북 충주), 북형산성(北兄山城: 경주), 달함군(達含郡) 주잠성(主岑城) 등을 축조하였다고 하는데, ‘달함군’은 달홀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구려 계통의 지명인 달홀이 신라에서 널리 사용된 것이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고성군’ 항목 참조.
저수혈현(猪䢘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환가현(豢猳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外金剛面) 양진리(養珍里: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종곡리) 일대로 비정된다. 오사압(烏斯押)으로도 일컬었다고 하는데, 『삼국사절요』에는 ‘조사압(鳥斯押)’으로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환가현’ 항목 참조.
평진현현(平珍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편험현(偏嶮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평진파의(平珍波衣)로도 일컬었고, 『고려사』 지리지 권3 운암현(雲岩縣)조에는 ‘천현(遷峴)’으로도 일컬었다고 나온다.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임남면(臨南面) 운암리(雲岩里: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운전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편험현’ 항목 참조.
도림현(道臨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임도현(臨道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조을포(助乙浦)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임남면(臨南面) 외염성리(外濂城: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염성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도림현이 고구려조에는 달홀(고성군)의 영현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금양군(金壤郡: 休壤郡)의 영현으로 나온다. 이에 도림현이 휴양군과 달홀 사이에 위치한 점에 주목해 통일신라 초까지는 달홀의 영현이었다가, 경덕왕 시기에 휴양군 곧 금양군의 영현으로 조정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김태식, 1997, 52~53쪽; 전덕재, 2021, 198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임도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휴양군(休壤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금양군(金壤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금뇌(金惱)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통천면(通川面: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구읍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금양군’ 항목 참조.
습비곡(習比谷)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습계현(習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탄(呑)’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송전면(松田面: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장대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습계현’ 항목 참조.
토상현(吐上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제상현(隄上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벽양면(碧養面: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장대리) 일대로 비정된다. 토상의 ‘토(吐)’는 제상의 ‘제(隄)’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현대 국어의 ‘둑’을 뜻하는 ‘도’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502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제상현’ 항목 참조.
기연현(岐淵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파천현(派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학일면(鶴一面) 패천리(沛川里: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패천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개연현(改淵縣)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고려사』 지리지3 파천현(派川縣)조나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9 함경도 안변도호부 고적 파천폐현(派川廢縣)조에도 ‘기연현(岐淵縣)’으로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파천현’ 항목 참조.
곡포현(鵠浦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학포현(䳽浦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고의포(古衣浦)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흡곡면(歙谷面) 학고리(鶴皐里: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군산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학포현’ 항목 참조.
죽현현(竹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죽령현(竹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나생어(奈生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위의 본문에는 휴양군(休壤郡)의 영현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서 보듯이 실직군(悉直郡: 三陟郡)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성된 본서 지리지 고구려조의 저본 자료에 휴양군의 영현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본서 지리지 찬자가 이를 그대로 옮겨적은 결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3~54쪽; 전덕재, 2021, 198~199쪽). 지금의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임계면(臨溪面) 송계리나 삼척시 하장면 숙암리 일대 등으로 비정하지만, 명확한 논거가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죽령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만약현(滿若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만경현(滿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만혜(澫兮: ‘萬 → 万)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위의 본문에는 휴양군(休壤郡)의 영현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서 보듯이 실직군(悉直郡: 三陟郡)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성된 본서 지리지 고구려조의 저본 자료에 휴양군의 영현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본서 지리지 찬자가 이를 그대로 옮겨적은 결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3~54쪽; 전덕재, 2021, 198~199쪽).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三陟市) 근덕면(近德面) 교가리(交柯里) 일대로 비정하지만, 명확한 논거가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만경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파리현(波利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해리현(海利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파리현의 ‘파리(波利)’는 해곡현의 ‘해(海)’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바다를 뜻한다(도수희, 2005, 404~406쪽). 위의 본문에는 휴양군(休壤郡)의 영현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서 보듯이 실직군(悉直郡: 三陟郡)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성된 본서 지리지 고구려조의 저본 자료에 휴양군의 영현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본서 지리지 찬자가 이를 그대로 옮겨적은 결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3~54쪽; 전덕재, 2021, 198~199쪽). 지금의 삼척시(三陟市) 원덕읍(遠德邑) 옥원리(沃原里) 일대로 비정하지만, 명확한 논거가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해리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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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우진야군(于珍也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울진군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우진야현’으로 나와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본래 우시군(于尸郡: 경북 영덕)의 영현이었는데, 경덕왕대에 읍격을 군(郡)으로 승격시키며 울진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파단현을 그 영현으로 편제하였다고 보기도 한다(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197쪽). 『고려사』 지리지 권3 울진현(蔚珍縣)조에서는 ‘고울이군(古亐伊郡)’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2 제사지에는 통일신라 시기 소사의 제상인 악발(岳髮: 일명 髮岳)이 ‘우진야군(于珍也郡)’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또 우진야와 관련한 지명으로는 본서 권45 석우로전(昔于老傳)의 ‘우유촌(于柚村)’, 권50 궁예전의 어진(御珍),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의 ‘우추군(于抽郡)’ 등이 확인된다. ‘우진야’라는 명칭은 본래 신라의 지명인 ‘우추(于抽)’에서 유래하였고, 통일신라 시기에도 널리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울진군’ 항목 참조.
파단현(波旦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해곡현(海曲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파풍(波豐)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덕신리(德新里) 일대로 비정된다. 파단현의 ‘파단(波旦)’은 해곡현의 ‘해(海)’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바다를 뜻하는 중세 국어 ‘patal’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404~406쪽).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 지방민에게 수여한 외위 관등인 파단(波旦)이 나온다(이명식, 1992, 14~23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해곡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참고문헌〉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야시홀군(也尸忽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야성군(野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읍 일대로 비정된다. 야시홀의 ‘홀(忽)’은 야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499~500쪽). 본서 신라본기3 소지왕 3년(481)조에 따르면 고구려가 신라의 호명성(狐鳴城) 등 7개 성을 점령하고, 신라 도성 북쪽의 미질부(彌秩夫: 포항시 흥해읍)까지 진격하였다고 한다. 이 기사의 호명성을 야시홀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야시홀의 ‘야시(也尸)’는 호명성의 ‘호(狐)’, ‘홀(忽)’은 ‘성(城)’에 상응하는 고유어라는 것이다(손영종, 1990, 362쪽; 장창은, 2008, 162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야성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손영종, 1990, 『고구려사(1)』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장창은, 2008,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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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종, 1990, 『고구려사(1)』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장창은, 2008,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조람군(助攬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진안현(眞安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재람(才攬)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조람현’으로 나와 차이가 있다. 조람군이 잘못 새겨진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읍격이 본래 군이었다가 경덕왕 지명 개정 시에 현(縣)으로 강등되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른다면 본문에서 보듯이 조람군이 경덕왕 이전에는 청이현(靑已縣), 굴화현(屈火縣), 이화혜현(伊火兮縣) 등을 영현으로 거느렸다고 보아야 한다(김태식, 1997, 53~55쪽; 전덕재, 2021, 198쪽).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진보면(眞寶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진안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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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청이현(靑已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적선현(積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청송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적선현’ 항목 참조.
굴화현(屈火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곡성군(曲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임하면(臨河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굴화군(屈火郡)’으로 나온다. 굴화현은 굴화군을 잘못 새겼을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굴화현이 맞다면 조람군(경북 청송군 진보면: (김태식, 1997, 40쪽; 전덕재, 2021, 198쪽)이나 야시홀군(영덕군)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2년(655) 10월조에 굴불군(屈弗郡)이 흰돼지(白猪)를 바쳤다는 기사가 있는데, 굴불군은 굴화군의 이칭으로 추정된다(정구복 외, 1997d, 287~288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곡성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이화혜현(伊火兮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연무현(緣武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연무현’ 항목 참조.
우시군(于尸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유린군(有鄰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유린군’ 항목 참조.
아혜현(阿兮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해아현(海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淸河面) 고현리(古縣里)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2 제사지에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파지곡(波只谷) 원악(原岳)이 나오는데, 파지곡이 위치하였다는 아지현(阿支縣)을 아혜현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정구복 외, 1997d, 290쪽). 한편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도 아혜현과 유사한 ‘아대혜촌(阿大兮村)’이라는 지명이 나온다(이명식, 1992, 14-23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해아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90쪽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90쪽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실직군(悉直郡) : 상기 기사에는 고구려 하슬라주 소속의 군명(郡名)으로 나오는데, 사직(史直)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일대로 비정된다. 다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고구려의 군이 아니라, 독립 소국인 실직국(悉直國)으로 나온다. 본서 신라본기2 파사왕 23년 8월조에 따르면 읍즙벌국(音汁伐國: 경주 안강)과 다투었는데, 신라가 병력을 동원해 읍즙벌국을 정복하려 하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실직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는데, 본서 신라본기에는 4-5세기에 신라가 실직에서 말갈이나 고구려와 각축전을 벌이는 기사가 다수 확인된다. 특히 450년(장수왕 38, 눌지왕 34년)에는 고구려 장수가 실직 들판에서 사냥하다가 신라의 하슬라성주(何瑟羅城主) 삼직(三直)에게 살해당하였고, 468년(장수왕 56, 자비왕 11)에는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실직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고 한다. 지증왕 6년(505)에 신라가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여 이사부(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고 하는데, 실제 524년(법흥왕)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는 실지군주(悉支軍主)와 실지도사(悉支道使) 등의 관직이 보인다. 제반 상황으로 보아 고구려가 실직군을 설치하였다면 5세기 후반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삼척군’ 항목 참조.
우곡현(羽谷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우계현(羽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江陵市) 옥계면(玉溪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우계현’ 항목 참조.
註) 301
하슬라주(何瑟羅州) : 통일신라의 명주(溟州)에 상응하는 고구려 지명이라고 한다. 하서량(河西良)이나 하서(河西)로도 일컬었고,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에는 하서아(河西阿)로 나온다. 다만 본서에는 하슬라(何瑟羅)가 4세기 말 나물왕 이래 신라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해 이사부(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고 나온다. 반면 고구려가 하슬라주의 치소가 두어진 강릉 지역을 영유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로 보아 이 기사의 ‘하슬라주’는 경덕왕 16년(757)에 ‘명주’로 고치기 이전의 신라 광역행정구역인 ‘하슬라주’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의 고구려지 하슬라주의 저본 자료는 신문왕 9년 무렵의 지방제도 정비 자료를 바탕으로 신문왕 9년에서 성덕왕대 전반 사이에 찬술되었다고 파악된다(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194~199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의 ‘명주’ 항목 참조.
註) 302
하서량(河西良) : 지금의 경상북도와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 두어졌던 통일신라의 광역행정구역인 명주(溟州)의 고구려 시기 명칭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고구려가 명주의 치소인 지금의 강릉지역을 영유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명주의 다른 이름인 ‘하서(河西)’라는 명칭은 신라본기 권6-10의 문무왕-헌덕왕 시기 및 직관지에 많이 쓰였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의 ‘명주’ 항목 참조.
註) 303
내매현(乃買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정선현(旌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잉매(仍買)’로 나온다. 지금의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정선읍 일대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정선현’ 항목 참조.
註) 304
동토현(東吐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속제현(梀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용평면(龍坪面) 속사리(束沙里) 일대로 비정한다. 속토의 ‘토(吐)’는 속제의 ‘제(隄)’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현대 국어의 ‘둑’을 뜻하는 ‘도’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502쪽). 본서 권35 지리2 삭주조 ‘속제현’ 항목 참조.
註) 305
지산현(支山縣) : 본래 고구려 시기의 지명이었고, 신라 경덕왕 16년(757) 지명을 바꿀 때도 그대로 사용핬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江陵市) 연곡면(連谷面) 일대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지산현’ 항목 참조.
註) 306
혈산현(穴山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동산현(洞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현남면(縣南面) 동산리(銅山里) 일대로 비정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동산현’ 항목 참조.
註) 307
수성군(䢘城郡)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간성읍(杆城邑) 일대로 비정된다. 가아홀(加阿忽)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수성군’ 항목 참조.
註) 308
가아홀(加阿忽) : 신라 명주 소속 수성군(守城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수성군(䢘城郡)의 다른 이름이다. 『고려사』 지리지3 간성현(杆城縣)조에는 가라홀(加羅忽)로 나온다. 가아홀이나 가라홀의 ‘홀(忽)’은 수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註) 309
승산현(僧山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동산현(童山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인데, 소물달(所勿達)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현내면(縣內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동산현’ 항목 참조.
註) 310
註) 311
익현현(翼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익령현(翼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이문현(伊文縣)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양양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익령현’ 항목 참조.
註) 313
달홀(達忽)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고성군(高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고성읍(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구읍리) 일대로 비정된다. 달홀의 ‘달(達)’은 고성의 ‘고(高)’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뫼[山]나 높다(高)를 뜻하며, ‘홀(忽)’은 ‘성(城)’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8~499쪽). 본서 신라본기4 진흥왕 29년(568)조에는 비열홀주(比列忽州)를 폐지하고 달홀주(達忽州: 강원도 고성)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신라본기7 문무왕 13년(673) 9월조에는 신라가 당군의 남하에 대비하여 국원성(國原城: 충북 충주), 북형산성(北兄山城: 경주), 달함군(達含郡) 주잠성(主岑城) 등을 축조하였다고 하는데, ‘달함군’은 달홀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구려 계통의 지명인 달홀이 신라에서 널리 사용된 것이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고성군’ 항목 참조.
註) 314
저수혈현(猪䢘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환가현(豢猳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外金剛面) 양진리(養珍里: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종곡리) 일대로 비정된다. 오사압(烏斯押)으로도 일컬었다고 하는데, 『삼국사절요』에는 ‘조사압(鳥斯押)’으로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환가현’ 항목 참조.
註) 315
註) 316
평진현현(平珍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편험현(偏嶮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평진파의(平珍波衣)로도 일컬었고, 『고려사』 지리지 권3 운암현(雲岩縣)조에는 ‘천현(遷峴)’으로도 일컬었다고 나온다.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임남면(臨南面) 운암리(雲岩里: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운전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편험현’ 항목 참조.
註) 317
註) 318
도림현(道臨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임도현(臨道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조을포(助乙浦)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임남면(臨南面) 외염성리(外濂城: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염성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문에서 보듯이 도림현이 고구려조에는 달홀(고성군)의 영현으로 나오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금양군(金壤郡: 休壤郡)의 영현으로 나온다. 이에 도림현이 휴양군과 달홀 사이에 위치한 점에 주목해 통일신라 초까지는 달홀의 영현이었다가, 경덕왕 시기에 휴양군 곧 금양군의 영현으로 조정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김태식, 1997, 52~53쪽; 전덕재, 2021, 198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임도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320
휴양군(休壤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금양군(金壤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금뇌(金惱)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통천면(通川面: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구읍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금양군’ 항목 참조.
註) 322
습비곡(習比谷)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습계현(習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탄(呑)’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송전면(松田面: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장대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습계현’ 항목 참조.
註) 323
註) 324
토상현(吐上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제상현(隄上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벽양면(碧養面: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장대리) 일대로 비정된다. 토상의 ‘토(吐)’는 제상의 ‘제(隄)’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현대 국어의 ‘둑’을 뜻하는 ‘도’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502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제상현’ 항목 참조.
註) 325
기연현(岐淵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파천현(派川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학일면(鶴一面) 패천리(沛川里: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패천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개연현(改淵縣)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고려사』 지리지3 파천현(派川縣)조나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9 함경도 안변도호부 고적 파천폐현(派川廢縣)조에도 ‘기연현(岐淵縣)’으로 나온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파천현’ 항목 참조.
註) 326
곡포현(鵠浦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학포현(䳽浦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고의포(古衣浦)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흡곡면(歙谷面) 학고리(鶴皐里: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군산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학포현’ 항목 참조.
註) 328
죽현현(竹峴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죽령현(竹嶺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나생어(奈生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위의 본문에는 휴양군(休壤郡)의 영현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서 보듯이 실직군(悉直郡: 三陟郡)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성된 본서 지리지 고구려조의 저본 자료에 휴양군의 영현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본서 지리지 찬자가 이를 그대로 옮겨적은 결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3~54쪽; 전덕재, 2021, 198~199쪽). 지금의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임계면(臨溪面) 송계리나 삼척시 하장면 숙암리 일대 등으로 비정하지만, 명확한 논거가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죽령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331
만약현(滿若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만경현(滿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만혜(澫兮: ‘萬 → 万)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위의 본문에는 휴양군(休壤郡)의 영현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서 보듯이 실직군(悉直郡: 三陟郡)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성된 본서 지리지 고구려조의 저본 자료에 휴양군의 영현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본서 지리지 찬자가 이를 그대로 옮겨적은 결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3~54쪽; 전덕재, 2021, 198~199쪽).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三陟市) 근덕면(近德面) 교가리(交柯里) 일대로 비정하지만, 명확한 논거가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만경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334
파리현(波利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해리현(海利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파리현의 ‘파리(波利)’는 해곡현의 ‘해(海)’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바다를 뜻한다(도수희, 2005, 404~406쪽). 위의 본문에는 휴양군(休壤郡)의 영현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지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서 보듯이 실직군(悉直郡: 三陟郡)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성된 본서 지리지 고구려조의 저본 자료에 휴양군의 영현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본서 지리지 찬자가 이를 그대로 옮겨적은 결과로 파악된다(김태식, 1997, 53~54쪽; 전덕재, 2021, 198~199쪽). 지금의 삼척시(三陟市) 원덕읍(遠德邑) 옥원리(沃原里) 일대로 비정하지만, 명확한 논거가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해리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335
우진야군(于珍也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울진군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우진야현’으로 나와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본래 우시군(于尸郡: 경북 영덕)의 영현이었는데, 경덕왕대에 읍격을 군(郡)으로 승격시키며 울진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파단현을 그 영현으로 편제하였다고 보기도 한다(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197쪽). 『고려사』 지리지 권3 울진현(蔚珍縣)조에서는 ‘고울이군(古亐伊郡)’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2 제사지에는 통일신라 시기 소사의 제상인 악발(岳髮: 일명 髮岳)이 ‘우진야군(于珍也郡)’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또 우진야와 관련한 지명으로는 본서 권45 석우로전(昔于老傳)의 ‘우유촌(于柚村)’, 권50 궁예전의 어진(御珍),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의 ‘우추군(于抽郡)’ 등이 확인된다. ‘우진야’라는 명칭은 본래 신라의 지명인 ‘우추(于抽)’에서 유래하였고, 통일신라 시기에도 널리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울진군’ 항목 참조.
註) 336
註) 337
파단현(波旦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해곡현(海曲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인데, 파풍(波豐)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덕신리(德新里) 일대로 비정된다. 파단현의 ‘파단(波旦)’은 해곡현의 ‘해(海)’에 상응하는 고유어로 바다를 뜻하는 중세 국어 ‘patal’에 해당한다(도수희, 2005, 404~406쪽).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 지방민에게 수여한 외위 관등인 파단(波旦)이 나온다(이명식, 1992, 14~23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해곡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참고문헌〉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註) 339
야시홀군(也尸忽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야성군(野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읍 일대로 비정된다. 야시홀의 ‘홀(忽)’은 야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로 성곽이나 고을을 뜻한다(도수희, 2005, 499~500쪽). 본서 신라본기3 소지왕 3년(481)조에 따르면 고구려가 신라의 호명성(狐鳴城) 등 7개 성을 점령하고, 신라 도성 북쪽의 미질부(彌秩夫: 포항시 흥해읍)까지 진격하였다고 한다. 이 기사의 호명성을 야시홀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야시홀의 ‘야시(也尸)’는 호명성의 ‘호(狐)’, ‘홀(忽)’은 ‘성(城)’에 상응하는 고유어라는 것이다(손영종, 1990, 362쪽; 장창은, 2008, 162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야성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손영종, 1990, 『고구려사(1)』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장창은, 2008,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참고문헌〉
손영종, 1990, 『고구려사(1)』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장창은, 2008,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註) 340
조람군(助攬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진안현(眞安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재람(才攬)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조람현’으로 나와 차이가 있다. 조람군이 잘못 새겨진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읍격이 본래 군이었다가 경덕왕 지명 개정 시에 현(縣)으로 강등되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른다면 본문에서 보듯이 조람군이 경덕왕 이전에는 청이현(靑已縣), 굴화현(屈火縣), 이화혜현(伊火兮縣) 등을 영현으로 거느렸다고 보아야 한다(김태식, 1997, 53~55쪽; 전덕재, 2021, 198쪽).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진보면(眞寶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진안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343
청이현(靑已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적선현(積善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청송읍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적선현’ 항목 참조.
註) 344
굴화현(屈火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곡성군(曲城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임하면(臨河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굴화군(屈火郡)’으로 나온다. 굴화현은 굴화군을 잘못 새겼을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굴화현이 맞다면 조람군(경북 청송군 진보면: (김태식, 1997, 40쪽; 전덕재, 2021, 198쪽)이나 야시홀군(영덕군)의 영현으로 보아야 한다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2년(655) 10월조에 굴불군(屈弗郡)이 흰돼지(白猪)를 바쳤다는 기사가 있는데, 굴불군은 굴화군의 이칭으로 추정된다(정구복 외, 1997d, 287~288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곡성군’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덕재, 2021, 『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註) 345
이화혜현(伊火兮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연무현(緣武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연무현’ 항목 참조.
註) 346
우시군(于尸郡)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유린군(有鄰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유린군’ 항목 참조.
註) 347
아혜현(阿兮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해아현(海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淸河面) 고현리(古縣里)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2 제사지에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파지곡(波只谷) 원악(原岳)이 나오는데, 파지곡이 위치하였다는 아지현(阿支縣)을 아혜현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정구복 외, 1997d, 290쪽). 한편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도 아혜현과 유사한 ‘아대혜촌(阿大兮村)’이라는 지명이 나온다(이명식, 1992, 14-23쪽).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해아현’ 항목 참조.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90쪽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참고문헌〉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90쪽
이명식, 1992, 「울진 봉평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신라1·가야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註) 348
실직군(悉直郡) : 상기 기사에는 고구려 하슬라주 소속의 군명(郡名)으로 나오는데, 사직(史直)으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일대로 비정된다. 다만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에는 고구려의 군이 아니라, 독립 소국인 실직국(悉直國)으로 나온다. 본서 신라본기2 파사왕 23년 8월조에 따르면 읍즙벌국(音汁伐國: 경주 안강)과 다투었는데, 신라가 병력을 동원해 읍즙벌국을 정복하려 하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실직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는데, 본서 신라본기에는 4-5세기에 신라가 실직에서 말갈이나 고구려와 각축전을 벌이는 기사가 다수 확인된다. 특히 450년(장수왕 38, 눌지왕 34년)에는 고구려 장수가 실직 들판에서 사냥하다가 신라의 하슬라성주(何瑟羅城主) 삼직(三直)에게 살해당하였고, 468년(장수왕 56, 자비왕 11)에는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실직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고 한다. 지증왕 6년(505)에 신라가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여 이사부(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고 하는데, 실제 524년(법흥왕)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는 실지군주(悉支軍主)와 실지도사(悉支道使) 등의 관직이 보인다. 제반 상황으로 보아 고구려가 실직군을 설치하였다면 5세기 후반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삼척군’ 항목 참조.
註) 350
우곡현(羽谷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우계현(羽谿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江陵市) 옥계면(玉溪面)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명주조 ‘우계현’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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