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헌안왕이라고도 하고 경문왕이라고도 하는데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궁예의 어머니는 이름 모를 궁녀였는데 궁예는 단오 날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날 때부터 이가 나고 이상한 빛까지 나타났으므로 왕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라 명했다. 그러나 바닥에 던져진 그를 마침 밑에 있던 유모가 받아내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애꾸가 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유모에 의해 길러지다 세달사라는 절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892년 궁예는 신라에 반란을 일으킨 양길의 부하가 되더니 강원도와 경기도 지방을 휩쓸며 큰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다 901년 마침내 고려를 세워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고려를 세우기 전까지 궁예는 고려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북쪽에는 이미 고려계승을 표방하는 발해가 있었다. 그러나 신라가 민심을 잃고 있었고 서남쪽 지방에서는 견훤이 백제를 건국한 상태였으므로 궁예가 그들과 차별되는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고려계승만한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이후 궁예는 고려계승보다는 불교이상사회의 건설을 앞세우게 되는데, 이내 왕건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쫓겨나고 만다. 이것은 고려계승이라는 패권주의적인 정치구호가 불교이상사회의 건설이라는 종교적인 정치구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