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by Silla on 2021-11-03
ᐥ❸ 신라에 黃倡이라는 7세된 소년이 있었는데 백제에 들어가 거리에서 칼춤을 췄다. 사람들이 이를 구경하자 백제왕이 黃昌을 불러 마루에 올라와 칼춤을 추게 하였다. 그러자 黃昌은 백제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 신라 사람들이 그를 기려 칼춤을 추게 되었다.ᐥ

<칼춤의 유희>
黃倡郞은 신라 사람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나이 일곱 살 때에 백제의 시가에 들어가서 칼춤을 추니, 구경꾼들이 담처럼 둘러섰다. 백제의 임금이 듣고 그를 불러다 보고는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라고 명령하였다. 창랑은 기회를 타서 백제왕을 칼로 찔렀다. 백제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겨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탈을 만들어서 칼춤 추는 형상을 하였는데, 지금도 그 탈춤이 전하고 있다.” 한다.

<官昌>
장군 품일의 아들로 어려서 花郞이 되어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태종왕 때에 군사를 출동시켜 당 나라 군사와 함께 백제를 공격할 때, 관창이 부장이 되었다. 황산 들녘에 이르자 품일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비록 어리나 뜻과 기개가 있으니, 오늘이야말로 공명을 세울 때이다.” 하였다. 관창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는, 즉시 말에 올라 창을 비껴 들고 곧장 적진에 돌격하여 몇 명을 죽이다가, 백제 사람에게 포로가 되어 산 채로 백제의 원수 계백에 보내지니, 계백이 투구를 벗기게 하였다. 그의 어리고 용감함을 아껴서 차마 죽이지 못하고, 탄식하기를, “신라에는 기특한 무사가 많다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고 놓아주었다. 관창이 말하기를, “아까 내가 적진에 들어가서 장수를 베고 기를 꺾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다.” 하고, 우물물을 움켜 마신 다음, 다시 적진으로 돌격하니 계백이 사로잡아 그를 베어 죽이고 그의 머리를 말안장에 달아서 보내니, 품일이 소매로 피를 닦아주며, “우리 아이의 얼굴이 살아 있는 것 같구나. 능히 국사를 위해서 죽었도다.” 하였다. 삼군이 그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북을 치며 고함을 지르면서 나아가 백제 군사를 공격하여 크게 패배시켰다. 임금이 급찬을 추증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