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韓信)의 자손 중 흉노(匈奴)에 남은 자들은
한신(韓信)註 001의 자손 중 흉노(匈奴)에 남은 자들은 군씨(軍氏)부터 여기까지는 예전에 착오로 뒤의 「헌씨(軒氏)」 아래에 들어가 있었는데, 송본(宋本)이 이와 같이 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기록한 위공(衛公)·정공(鄭公)의 족(族)에 대해 기재한 10개 기록은 왕왕 섞이곤 하였다고 하였다. 역시 항상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권력을 가져 지위가 높은 대신이 되었다. … 옛날 주 선왕(宣王) 때 역시 한후(韓侯)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연(燕)에 가까웠다. 이 부분은 ‘국(國)’이 아니라 ‘지(地)’로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 따라서 『시경(詩經)』에서 이르기를, “크구나, 저 한(韓)의 성이여! 예전 연의 백성들이 쌓은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한혁(韓奕)은 “‘보(普)’는 지금 ‘부(溥)’로 적는다.”고 하였다. 『정전(鄭箋)』註 002에는 “‘燕’은 ‘安’이다. 「크구나, 저 한의 성이여![大矣彼韓國之城]」라고 한 것은 옛 평안하던 때 여러 백성이 쌓아 완성한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석문(釋文)』에서 말하기를 “왕숙(王肅)·손육(孫毓)은 이것이 모두 연나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한서(韓西) 역시 한(韓)을 성으로 삼았으나, 위만에 공격당하여 바다 쪽으로 옮겨갔다. 생각건대 한서(韓西)는 즉 조선인 것 같다. 조(朝)를 실수로 한(韓)이라고 한 것이며 서(西)는 즉 선(鮮)이 전(轉)한 것이니, 따라서 『상서대전』에는 서방(西方)을 선방(鮮方)이라고 하였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말하기를 조선왕 만(滿)은 본래 연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전국시대〕 연나라 때부터 일찍이 진번·조선을 공략하여 복속시켰다고 한다. 『사기색은(史記索隱)』註 003이 말하기를 “『한서』에 따르면 〔조선왕〕만의 성은 위(衛)이고 조선왕을 격파하고 스스로 왕 노릇을 하였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註) 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