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쌓다
(
713년
12월
)
개성(開城)註 001을 쌓았다,
개성(開城): 본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한주조에 “개성군(開城郡)은 본래 고구려 동비홀(冬比忽)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고 전한다. 이에 따른다면, 성덕왕 12년(713) 12월에는 개성이 아니라 동비홀성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다. 후대에 동비홀성을 경덕왕대의 개정 지명을 활용하여 개성이라고 개서(改書)한 것으로 이해된다. 개성군은 경기도 개풍군 서면 개성리(북한의 황해북도 개풍군 개풍읍)로 비정된다. 종래에 성덕왕 12년(713) 12월에 동비홀성(개성)을 쌓으면서 비로소 개성지역을 군(郡)으로 편제하였다고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박성현, 2010, 205쪽). 이에 반해 신라는 문무왕 15년(675)에 이미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옛 고구려영역을 신라의 군·현으로 편제하였고, 성덕왕 12년 12월에 변방의 방어를 위해 개성을 쌓았다고 보는 견해도 제출되었다(전덕재, 2019, 184~186쪽).
〈참고문헌〉
박성현, 2010, 『신라의 거점성 축조와 지방제도의 정비과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전덕재, 2019,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역사비평』 128
〈참고문헌〉
박성현, 2010, 『신라의 거점성 축조와 지방제도의 정비과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전덕재, 2019,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역사비평』 128
註) 001
개성(開城): 본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한주조에 “개성군(開城郡)은 본래 고구려 동비홀(冬比忽)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고 전한다. 이에 따른다면, 성덕왕 12년(713) 12월에는 개성이 아니라 동비홀성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다. 후대에 동비홀성을 경덕왕대의 개정 지명을 활용하여 개성이라고 개서(改書)한 것으로 이해된다. 개성군은 경기도 개풍군 서면 개성리(북한의 황해북도 개풍군 개풍읍)로 비정된다. 종래에 성덕왕 12년(713) 12월에 동비홀성(개성)을 쌓으면서 비로소 개성지역을 군(郡)으로 편제하였다고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박성현, 2010, 205쪽). 이에 반해 신라는 문무왕 15년(675)에 이미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옛 고구려영역을 신라의 군·현으로 편제하였고, 성덕왕 12년 12월에 변방의 방어를 위해 개성을 쌓았다고 보는 견해도 제출되었다(전덕재, 2019, 184~186쪽).
〈참고문헌〉
박성현, 2010, 『신라의 거점성 축조와 지방제도의 정비과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전덕재, 2019,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역사비평』 128
〈참고문헌〉
박성현, 2010, 『신라의 거점성 축조와 지방제도의 정비과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전덕재, 2019,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역사비평』 128
주제분류
- 정치>군사>군사시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