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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가 調賦를 바쳤으나 부족한 예우로 분하게 여김
22년(561) 신라가 久禮叱 及伐干 註 001을 보내어 調賦를 바쳤다. 司賓註 002이 연회를 베풀었는데 예우가 평상시보다 덜하였다. 及伐干이 분하고 한스럽게 여기며 돌아갔다.
註) 001
신라 17관등 중 9위인 級湌의 이칭이다. 이는 及伐干 외에도 居伐干支, 及干支, 及尺干, 及干, 及餐 등으로도 표기된다.바로가기
註) 002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직함이다. 외국사신 업무를 전담하는 관서인 司賓寺는 唐代에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는 이러한 상설 관청이 없었으므로 여기서의 司賓은 임시직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바로가기
국가명
  • 신라(新羅)
주제분류
  • 정치>외교>사신>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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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 URL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http://db.history.go.kr/id/sa_001_0030_0020 (accessed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http://db.history.go.kr/id/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2안
저자, 기사명, 자료명.(사이트명, URL, ID, 검색날짜)
주)1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주)2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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