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맞은편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담을 따라 늘어선 목각 서예작품과 절반뿐인 오른팔로 어렵사리 나무를 쪼고 있는 중년 남성을 만날 수 있다. 14년째 이곳에서 나무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전시·판매를 하는 조규현(48·지체장애 3급·사진)씨다. 열 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팔 팔꿈치 아래를 잃은 그가 잘린 팔꿈치에 망치를 동여맨 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에서 작품을 만드는 모습은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때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지난 20일 오후 5시쯤이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돌담길 앞 버스정류장 부근 가로수마다 플래카드를 내거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현수막 밑으로 몸을 겨우 숙여 빠져 나오거나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조씨는 시위대들에게 "버스 이용객들이 너무 불편하니 떼거나 아니면 사람 키보다 높이 달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갑자기 조씨를 덕수궁 돌담 쪽으로 밀치고 겨드랑이 부위를 주먹으로 때렸다. 조씨를 둘러싼 10여명은 "네가 뭔데 그러느냐. 경찰에 신고할 테면 해봐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몸이 불편한 조씨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쌍방과실인데 저쪽(시위대)에서 고소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냥 넘어가는 게 좋겠다"고 거꾸로 조씨를 설득했다. 그는 "시위대에게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는데 왜 쌍방과실인지, 그리고 사람들 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게 현수막을 떼거나 옮겨달라고 한 게 도대체 무슨 잘못이냐"고 어이없어 했다.
작년 7월 대대적인 불법 현수막 퇴출을 선언했지만 정작 서울광장 주변을 온통 도배한 각종 현수막을 방치했던 서울시나, '바른 말'을 했다가 시위대에 얻어맞은 장애인을 애써 외면한 경찰이나, 모두 조규현씨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름뿐인' 공권력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