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5 三國史記
▐ 일본서기(720)는 6세기 신라의 금석문에 나오는 沙喙部를 沙㖨部로 표기하고 喙己呑을 㖨己呑으로도 쓰는 것으로 보아, 喙과 㖨을 구별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일본서기에 별개로 나오는 㖨國과 喙地가 같은 곳일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제로 두 지역을 같은 곳으로 간주해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다.
또 㖨國과 喙地는 삼국사기의 達伐과도 잘 어울린다. 만약 喙地가 達伐이라면 喙는 '달'로 발음되었을 듯하다. 喙는 '부리 달'이란 뜻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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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6~1861 東輿圖 @大塚
▐ 이 대총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江東縣의 북쪽으로 30리에 있으며 刀亇山에 있는데 속담에 옛 황제의 무덤(古皇帝墓)이라 전한다'고 되어 있다.
용비어천가(1447)에서 국내성을 大金皇帝城으로 인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려가 망하면서 발해와 요나라를 거쳐 금나라에 점유되었던 지역의 고려 유적을 왕고인들은 금나라의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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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7 三國史記(1145) ❽平壤
移都平壤²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
▐ 고려는 342년에 모용선비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丸都城이 파괴되자 이듬해에 도읍을 平壤²東 黄城으로 옮긴 바 있다. 그러나 371년에 백제가 平壤²城에 침공해오고 이를 막다 고구원왕이 죽자 도읍을 다시 國內로 옮겼다. 399년에는 광개토왕이 平穰²에 행차해 내려갔다가 신라가 보낸 사신을 만나기도 했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平壤은 그러한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대동강 유역에 있는 平穰²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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