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성계
全州의 李安社는 170여 집을 이끌고 三陟을 거쳐 宜州로 가 살았는데 왕고는 그를 宜州兵馬使로 삼아 高原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散吉大王이 雙城에 주둔하자 그는 1천여 집과 함께 항복하고 종친의 딸을 散吉에게 시집보낸 뒤, 時利를 거쳐 斡東으로 옮겨갔다. 이때가 1254년이었다. 1255년에 원나라는 斡東千戶所를 세우고 그를 南京 등처 五千戶所의 首千戶로 삼고 達魯花赤을 겸하게 하였다. 1274년에 李安社가 죽자 이듬해에 아들 李行里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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