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의 기존 위치 비판 - 不耐縣
245년 유주자사 관구검은 고구려를 침공하여 도읍을 점령하고 현도태수 왕기로 하여금 도주하는 동천왕을 쯫게 하였는데, 왕기는 옥저를 파괴하고 숙신까지 쫓다가 돌아갔다. 같은 해에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은 군대를 일으켜 단단대령 동쪽의 예를 정벌하였는데 불내후 등이 고을을 들어 항복하였다. 만약, 옥저와 예가 모두 영흥만에 있었다면 왕기는 옥저를 정벌하고 인접한 예는 먼 낙랑과 대방에서 군대를 보내 정벌한다는 이야기가 되어 매우 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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